이번 물리학회에서 새로 알게 된 내용 중 하나는 무한히 큰 케일리 나무와 베테 격자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lshlj 블로그에서 똑같은 내용을 본 것 같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이 둘이 같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유한과 무한의 차이라는 면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차이다.

케일리 나무는 한 점에서 일정한 개수의 가지가 뻗어나오고 그 각각의 가지에서 같은 수의 가지가 뻗어나오는 나무를 가리킨다. 첫번째 점을 뿌리(root)라고 하고 처음 뻗어나온 가지의 끝점들을 1세대, 그 다음에 여기서 또 뻗어나온 가지의 끝점들을 2세대로 부른다. 한 번 가지치기를 할 때 z개의 가지가 생기고, n세대까지 가지를 친다면 1 + z + z^2 + z^3 + ... + z^n = (z^(n+1) - 1) / (z - 1) 개의 점이 생길 것이다. z와 n이 매우 크다면 시스템 크기, 즉 점들의 총개수는 대략 z^n이다. 이중 n세대는 이 시스템의 경계에 해당하며 경계 점들(boundary nodes)의 개수는 z^n이다. 즉 z와 n이 매우 큰 경우에는 시스템을 이루는 거의 대부분의 점들이 경계 점들이 된다. 그러므로 '무한히 큰 케일리 나무'에서 경계는 시스템을 이해하는데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반면에 베테 격자는 뿌리와 1세대, 2세대 등이 있다는 면에서 케일리 나무와 동일하지만 애초에 이 가지치기가 무한히 되풀이되어 만들어졌다는 면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경계가 처음부터 정의되지 않으므로 시스템의 모든 점들은 경계가 아닌 '내부'의 점들이다. 무한히 큰 케일리 나무에서 거의 대부분의 점들이 경계 점들이므로 결과적으로 엄청난 차이다.

얼핏 케일리 나무의 크기를 무한히 키우면 베테 격자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 둘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 차이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조금 소설 같은 얘기를 해보겠다. 베테 격자의 각 점을 어떤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해보자. 모든 점은 언제나 세상의 중심이며 또한 평등하다. 위치에 따른 대칭성(translational symmetry)이 완벽하게 보존된다. 무한히 큰 케일리 나무에서도 내부의 점들은 평등해보이지만 실제로 거의 모든 점들이 경계에 있으므로 언제나 경계 효과(boundary effect)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만일 우리가 사는 세계가 케일리 나무인지 베테 격자인지 확인하고자 한다면 경계가 존재하느냐 아니냐를 판단해야 하는데 무한히 큰 케일리 나무의 경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무한히 긴 시간이 필요하므로 사실상 무한히 큰 케일리 나무와 베테 격자를 구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다만 그 위에서 벌어지는 동역학적 현상들의 속성에 비추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어느쪽인지를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방법은 가능하다.

하여간 참으로 미묘하다. 하나의 극한이 다른 것일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대상이 된다. 모든 점들이 세상의 중심이며 평등한 베테 격자와 거의 모든 점들이 경계에 있으며 극소수만 중심인 케일리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