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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이타적 인간의 출현

Seldon 2010. 5. 11. 01:56

[사진출처: 교보문고]

최정규 교수님의 책 <이타적 인간의 출현> 개정판을 읽었습니다. 사실 초판이 나올 때도 사서 읽어봤는데 그때는 처음 접하는 개념들이 많아서 쉽게 읽히지만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술술 읽히네요. 두번째라 그런지, 그동안 제가 좀 알게 되어서 그런지, 개정판을 내면서 글쓴이가 내용을 좀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죄수의 딜레마는 두 행위자가 협조/배반이라는 두 전략 중 하나를 선택할 때, 상대가 무엇을 선택하든 자신은 배반함으로써 더 높은 보수를 얻지만, 어떤 경우든 두 행위자가 모두 협조할 때보다 총 보수는 낮은 상황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협조'는 상대방에게 이득을 주지만 자신은 비용이 드는 이타적 행위입니다. '배반'은 자신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상대방의 이타적 행위로 인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이기적 행위이며 '무임승차'라고도 합니다.

원래 보수행렬을 표로 그려넣고 잘 하고 싶지만 귀찮아서;;; 말로만 때웠습니다. (표를 그리고 수정하는 게 티스토리나 스프링노트나 불편하네요.)

행위자 개인에겐 배반이 최선이지만 사회적으로 서로 협조하는 게 최선인 상황이라 '딜레마'입니다. 이런 경우가 실제도로 많이 있고, 책 전체에 걸쳐서 다양하고 재미있는 실제 예들이 많이 제시됩니다. 이런 딜레마 상황에서 모두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세상에는 이타적 행위가 사라지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타적 행위(자)들을 많이 발견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 탐구할 수 있습니다.

1) 혈연선택 가설
행위자들은 유전자를 많이 공유할수록 서로 더 도우려 한다는 가설입니다. (문득 제 피를 빨아먹은 모기를 돕고 싶어지;;;) 유전자를 나눈 가족이나 공동체의 구성원끼리 서로 도와준다는 거죠. 이게 맞다고 해도 유전자를 나누지 않은 타인에 대한 이타적 행위를 설명해주지는 못합니다.

2) 반복-상호성 가설
1회성 관계에서는 배반해도 보복당할 위험이 없지만 관계가 지속되고 딜레마(즉 게임)가 되풀이될수록 보복이 가능해지므로 장기적으로는 협조가 서로에게 이득인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서, 게임이 반복되어야 배반에 대한 보복이 가능해지고 그럴 때에만 '서로 협조'하는 상황이 많아집니다. '배반에 대한 보복'은 조건부 협조전략(눈에는 눈, 이에는 이)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무조건 협조전략은 무조건 배반전략에게 착취당하지만 조건부 협조전략은 무조건 배반전략을 응징함으로써 협조의 가능성을 높여줍니다.

이게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가설이지만, 이 가설로도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반복되지 않을 상황(즉 다시 만나지 않을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서로 협조하거나 자신의 비용을 들여서라도 배반자에게 보복하거든요. 이런 사람들을 상호적 인간(Homo reciprocan)이라 부릅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할거냐... 그래서 다음 가설들이 더 제시됩니다.

3) 유유상종 가설
말 그대로 이타적인 사람들은 이타적인 사람들끼리, 이기적인 사람들은 이기적인 사람들끼리 산다는 겁니다. 이타적인 사람이 이기적인 사람한테 착취당할 기회를 줄임으로써 이타적인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너무 똑같은 사람들하고만 살면 다양성으로부터 얻는 이득을 포기해야 하므로 끼리끼리에도 비용이 따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4) 값비싼 신호 보내기 가설
자신이 능력이 있다는 걸 믿게 하려면 능력이 없는 사람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을 보여주면 됩니다. 즉 그만큼의 비용이 들고, 그럴 때에만 사람들이 믿어주겠죠. 그렇게 함으로써 배우자를 선택할 때 유리해지겠죠. 그럼 그 능력을 어떻게 보여줄까. 용맹하게 사냥을 하여 사람들에게 베풀면 됩니다. 사실 '능력 과시'는 협조가 아니라 배반을 통해서도 할 수 있으므로 이 가설이 '이타적 행위'에만 적용된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다만 협조할 때 사람들이 더 그 신호를 믿어주겠죠. (이것도 또다른 게임인가?)

5) 의사소통 가설
게임 참가자들이 의사소통을 함으로써 서로 더 잘 도와주게 된다는 실험 결과가 있습니다. 협조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든지, 협조에 대한 의무감이 생긴다든지, 참가자 사이의 신뢰가 쌓인다든지, 집단의식이 생긴다든지, 배반에 대한 죄의식이 생긴다든지 한다네요.

6) 집단선택 가설
이타적인 사람들이 많은 집단과 이기적인 사람들이 많은 집단 사이에서도 선택(즉 집단선택)이 일어난다면 게임 구조에 의해 전자가 선택되고 후자가 도태됩니다. 개인선택은 이기적 행위를 선호하지만 집단선택은 이타적 행위를 선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용맹하고 이타적인 전사가 많은 집단이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겠죠.

그런데 집단선택의 속도는 개인선택의 속도보다 느리다고 많은 학자들이 주장한답니다. 하지만 인간 사회에는 개인선택의 속도를 낮추고 집단선택의 효과를 크게 해주는 '제도'가 존재하여 집단선택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글쓴이는 강조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글쓴이는 자신의 모형연구를 소개합니다. 각 개인은 이타적(A)이거나 이기적(N)이며, 또한 외부인(다른 집단의 구성원)에 대해 적대적(P)이거나 관용적(T)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두 네 가지 조합(AP, AT, NP, NT)이 가능합니다. N이 A보다 우세하고 T가 P보다 우세합니다. 그런데 AP가 많은 집단일수록 집단 사이의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전쟁에서 진 집단의 AP는 모두 사라지고 그만큼 이긴 집단의 AP 비율로 보충됩니다. 시늉내기 결과 전체적으로 AP 비중이 높은 상태와 NT 비중이 높은 상태가 번갈아가며 나타난다고 합니다. NT가 많은 건 N과 T가 우세하므로 자연스러운데, AP가 많은 상태는 "이타성과 외부인에 대한 적대가 공진화"한 결과입니다.

7) 공간구조 효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보수와 자신의 보수를 비교하여 보수가 높은 쪽의 전략을 따라갑니다(전수받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사회 전체에서 랜덤하게 고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이웃들 중에서 고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웃'의 효과를 고려하는 걸 일반적으로 공간구조 효과라 부를 수 있습니다. 특히 2차원 격자 위에 각 행위자들이 있다고 하고 동서남북의 이웃들하고만 게임하고 또 보수를 비교하여 전수받는다고 하면 처음에는 이타적인 전략이 급격히 줄어들지만 우연히 이타적인 전략들이 이웃한 경우 이들은 세를 확장하여 이기적인 전략보다 더 우세해지기도 합니다. 사실 공간구조 효과보다는 그냥 '국소성 효과'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해 보이는데(책에서도 국소성으로 설명합니다), 여튼 이건 끼리끼리 효과이기도 하고 집단선택 효과이기도 합니다.

죄수의 딜레마를 다시 간단히 써보면, "C < D & C+C > D+D"입니다. 개인에게는 협조(C)보다 배반(D)이 우월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둘 다 협조(C+C)하는 게 둘 다 배반(D+D)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거죠. (사실 "C+C > C+D"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 중에는 C > D로 만들거나(혈연이나 반복 게임을 통해서), 또는 C+C인 가능성을 높이거나(국소성으로 인한 집단선택) 하는 것들이 있겠죠.

좀더 논의하거나 궁금한 얘기들이 있는데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위의 가설들이 '상호적 인간'을 뒷받침할 수 있는지(또는 없는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필요도 있고, 책의 맺음말 부분에서 제기된 문제들도 따로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