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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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상반기에 일본에서 방영된 공각기동대 티비시리즈 <Stand Alone Complex (SAC) 2nd GIG>를 보았다. 다음달에 있을 예심을 준비해야 하지만, 한번 손을 댄 시리즈물은 웬만해서 중간에 그만둘 수 없다. 다른 것도 아닌 공각기동대라면 더더욱!!

때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 기계가 신체를 대신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뇌조차도 전뇌로 대체되어 목 뒤에 플러그를 꽂아 네트워크를 통해 광범위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주요한 등장인물인 쿠제의 경우 300만명이 그의 전뇌에 접속하여 실시간 방송을 듣기까지 한다. 전뇌허브의 등장. 물론 그것은 아주 특수한 경우다. 뇌가 디지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정보의 병렬화(공유)가 쉬워지고 빨라지지만 동시에 정보를 지우거나 해킹을 통해 엿보는 등 관련 범죄도 증가한다. 심지어 기존의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고 가짜 기억을 주입함으로써 그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도 있다.

그러한 범죄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이전에 비해 훨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을 판단하는 능력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결국 자신의 입맛에만 맞는 정보만 받아들이거나 조작된 정보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문제가 생긴다. 개체라는 오리지낼러티는 정보의 병렬화로 인해 사라져가고, 이러한 몰개성화는 또다른 개성에의 욕구를 낳는데, '난민해방기구 개별 11인(개별주의자)'도 그 중의 하나다.

그들은 네트워크에 유포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특정한 동기에 의해 개별주의자가 된다. 그들에게는 위계조직이 없지만 개별적으로 행동하며,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난민들의 해방을 주장하며 테러를 일으키는 개인들이다. 21세기 들어 일어난 몇 번의 커다란 전쟁으로 인해 많은 난민이 생겨났고 이들 중 일부는 일본으로 와서 살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들을 일본의 영토에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분명한 차별을 하고 있다. 새 정부는 난민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고 난민거주구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려는 정책을 갖고 있으며 내국인들도 이를 지지한다. 내국인들은 자신들의 세금이 난민들에게 쓰이는 것을 반대하고, 난민은 난민대로 차별대우로 고통을 겪는 상황.

그런데 난민을 해방하고자 하는 개별 11인의 행동에 이상한 점이 있다. 그들은 난민을 지원하는 비영리기구 사무실을 공격하고, 난민들의 우상인 인기 전뇌 랩퍼를 죽이는 등 오히려 난민들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해왔다. 개별 11인의 한 명이자 총리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쿠제가 다른 개별주의자들에게 그 이유를 묻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국적이나 동포로부터의 지원을 끊고 자립이라는 이름의 해방을 재촉한다. 그것이 국민에게 난민이라는 이물의 존재를 자발적으로 느끼게 하는 최선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 12화

자립이라는 해방을 재촉하기 위해 그들에 대한 지원자들을 암살하는 것. 이 모순된 논리는 분명 개별주의자 바이러스의 내용일 것이다. '난민해방기구' 개별 11인의 난민에 대한 적대적인 테러는 결국 이에 반대하는 난민들의 자폭테러로 이어졌으며, 결국 난민들의 봉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처음 개별주의자 바이러스를 유포시킨 내각정보청 전략영향조사회의 고다 카즌도가 짠 시나리오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는 개별 11인이라는 영웅을 만들어내는 프로듀서로서 난민을 해방시킨다는 이름 아래 난민을 자극함으로써 봉기에 이르게 하고, 이를 구실로 자위대를 파견함으로써 군국주의를 확고히 하려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엮인글에 써놓았던 고다의 학생시절 졸업논문의 내용을 다시 보자.

"전뇌는 사회성을 유지한 뒤 개성과 협조성 중 어느쪽을 존중하는가? - 프로듀서 입장에서의 영웅론. 지금 사회구조에는 전뇌가 개성의 소실과 함께 무의식화로부터 협조성을 원하는 경향을 시사하고 있는데 그걸 응용해서 대중의 무의식을 의식적으로 컨트롤하는 리더를 시스템의 일부로서 창조하는 내용..." - 8화

그 리더가 바로 '개별 11인'이며 이미 밝혔듯이 이들은 새로운 사회의 리더가 아니라 고다의 군국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희생자에 불과하다. 전략영향조사회는 자신들이 뿌려놓은 바이러스가 어떻게 전파되고 개개인들의 개성과 합쳐져서 어떠한 변종이 나타나는가를 주의깊게 관찰한다. 그의 실험은 분명 흥미롭지만 자신의 시나리오에 대한 집착으로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공안 9과는 이를 놓치지 않는다.

어쨌든 대중의 무의식을 이용한 리더의 창조, 이를 위해 유포된 바이러스, 여기에 감염된 개별주의자들, 이들의 테러에 의해 촉발된 난민의 봉기. 하지만 이들도 어찌보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을 받아들인 좀더 특수한 대중에 불과하다. 애초에 난민의 혁명을 꿈꾸었던 쿠제만이 그 바이러스로부터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어느날 개별 11인을 자처하는 자들이 모여 도심 한가운데 고층빌딩 옥상에서 집단 자결하고 그것이 생방송으로 방영됨으로써 그들은 '영웅'으로서의 자격을 갖추는데 이 또한 바이러스에 이미 계획되어 있던 것이다. 그런데 다른 개별주의자와 달리 쿠제는 다른 동기와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는 자살하지 않고 잠적해버린다.

그는 스스로를 '동기 있는 자'로 부르며 '동기 없는 자들'에 대한 복수와 구제를 실현하고자 한다. 그가 생각하는 '혁명'은 무기력하게 자신의 입맛에만 맞는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대중들이 이미 하부구조화된 네트워크에서 상부구조로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의 계획은 그에게 접속하고 있는 300만명의 기억과 고스트를 네트워크 상으로 옮겨 강제적인 진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네트워크와의 융합'이다. 그런데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 우선 네트워크와의 융합은 <공각기동대>에서 스스로 하나의 생명체임을 자처한 '프로그램'인 인형사가 모토코에게 제안한 융합을 떠올리게 한다. 네트워크와의 융합이 갖는 의미를 아직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하부구조화된 네트워크를 버리고 상부구조로 가기 위해 네트워크와 융합한다는 말도, 그것이 그래서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그것이 '강제적인 진화'를 가능하게 할지도 모르겠다. 해석의 여지라기보다는 그냥 애매모호한 부분이다.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부분인데 말이다.

그보다도 SAC도 그렇고 2nd도 그렇고 단연 돋보이는 캐릭터는 타찌코마다. 이'들'은 전차로 개발된 AI인데 모든 정보를 병렬화할 수 있으며 고스트는 없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개체이며 경험의 차이와 호기심으로 인해 개성을 얻게 되고 결국 고스트까지 갖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고스트에 대한 것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고 나도 잘 모르므로 일단 패스. 이들은 원래 하나였으나 다른 육체(하드웨어)로 나뉘어졌고 그들의 상호작용으로 기능적 분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고 있자니 니클라스 루만의 체계이론에 대해 귀동냥으로 들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이렇게 복잡성이 커지면서 그들에게는 고스트가 창발되었는지도 모르겠다.

* 루만에 대해서는 http://blog.naver.com/todocambia/13558048를 참고.
* DVD 표지 출처: Virgin Megastores UK

더 생각해보아야 할 얘기들이 많다. 일단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