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어 번역판이 나온 마크 뷰캐넌(Mark Buchanan)의 책 <사회적 원자>를 한국에서 주문하려다 배송비가 비싸서 포기하고 원서를 사서 읽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 제목도 영어로;;) 사실 한글책도 끝까지 읽기 힘든데, 영어책을 끝까지 다 읽은 적이 거의 없어요. 처음 끝까지 다 읽은 첫번째 영어책은 페어 박(Per Bak)의 <how nature works (자연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입니다.

걍 대충 쓰겠습니다. 사실 프레시안에 실린 김명남씨의 서평에서 "<사회적 원자>는 낱낱의 발전들을 하나의 틀로 묶는 데 주력하기에, 독창성이 부족하다 해도 의의가 충분하다."는 말을 먼저 봐서 그런지 애초 기대수준이 좀 낮아졌습니다. 그리고 책을 이루는 내용들도 결과적으로 그리 새롭지도 않습니다. 제가 나름 사회물리학 분야를 공부하고 일부 연구해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비슷한 류의 책들에서도 이미 적지 않게 소개되었기 때문이죠. 필립 볼, 알버트 바라바시 등.

인간은 경제학에서 가정하듯 초합리적이지 않으며, 수십명이 모여 수렵/채취를 하던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진화적으로 이성보다는 본능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내리도록 만들어졌다는 주장을 깔고 들어갑니다. 무엇보다 인간은 적응하고 학습할 수 있고, 이웃들의 행동을 모방하고 또 서로 협조하며 살아갑니다. 적응-모방-협조하는 사회적 원자로서의 인간.

적응이나 모방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고, 협조의 경우 죄수의 딜레마에서 협조하기보다는 배반하고 무임승차하는 것이 더 유리한데 어떻게 사람들은 협조하는가 하는 문제를 풀어야 연결고리가 완성됩니다. 이는 집단 사이의 경쟁에 관한 컴퓨터 시늉내기 연구를 통해 해결됩니다. 개인선택에 의해 협조하는 개인들은 낮은 보수를 얻으므로 사라져야 하지만, 집단 사이의 경쟁에서 희생적인 개인이 많은 집단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집단선택의 속도가 충분히 빠르다면 협조 행위가 진화적으로도 안정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희생적인 개인'은 결국 자신의 집단을 위해 다른 집단에 피해를 입히는 나쁜(?) 사람이 됩니다. 결국 협조와 배타는 동전의 양면 같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그토록 선한 사람들이 대량살상 같이 그토록 악한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할 수도 있다... 무섭네요. 그리고 이런 식으로 '집단'이 인간 본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럼 사회적 원자들이 모인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것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코즈의 거래비용에 관한 연구에서 시작하여 악스텔의 기업의 흥망성쇠에 관한 시늉내기를 소개합니다. 개인들은 더 성취하기 위해 협조를 하고 조직을 만들지만 결국 무임승차자가 생겨서 조직이 망하게 되는데 이로부터 실제로 관찰된 기업 크기에 대한 거듭제곱 분포가 나온다는 얘기를 합니다. 저자는 더 나아가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될까, 그것도 역시 앞서 말한 사회물리학의 방법론으로 충분히 해볼만하지 않느냐고 주장합니다.

그럼 물리학의 방법론은 뭐냐. 중요하지 않은 세부사항은 일단 제껴두고 중요한 요인만 가지고 전체적인 그림을 이해해보자는 겁니다. 이 얘기는 많이 했으니 패쓰. 여튼 초합리성과 평형에 기반한 (주류)경제학과 사회과학을 비판하면서 진화과정과 비평형이라는 관점에 기반한, 또한 어느 정도 '실험'을 통한 사회과학을 해보자.는 주장이라고 보면 될 듯 합니다.

그래서 뭐? 하나의 현상을 설명하는 여러 모형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를 발견했다고 그 모형이 '맞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물론 끝내 하나를 고르는 게 불가능할 때도 있겠죠. 그래서 다양한 모형을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책에서는 '하나'의 모형에 대한 얘기만 하고 "자 이거 봤지? 가능하다니까."라고 하는데, 물론 그 하나를 찾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이지만 이런 식의 논리 구멍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여러 모형 중 뭐가 맞느냐는 건 그동안 무시한 '세부사항'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법 사건에 대해 다양한 진술과 증거를 확보하고 다양한 측면에서 가능성을 검토한 후에야 판결이 내려지듯이 결국 어떤 모형이 더 정확한가라는 논쟁에 가장 정확한 답을 줄 수 있는 건 세부사항으로부터 나올 수도 있다고 봅니다. 처음에는 전체적인 그림을 위해 무시했더라도 나중에는 다시 꺼내어 살펴봐야 합니다.

여튼 책 제목은 잘 지었습니다. 볼츠만의 원자 가설도 염두에 두었겠고, 사회현상을 이해하고자 하므로 '사회적 원자'가 되었겠죠. 그리고 여기에 이미 개인 대 구조라는 대립(?)관계를 한 번에 묶어내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읭 의도?;;;) 사실 이 책의 존재를 얼핏 듣고 잊어버렸다가, 이번에 한국어 번역판이 나오면서 제대로 알게 되었는데, 처음 책 이름을 보고, "아! 이거야."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결국 볼츠만의 통계역학이 원자의 존재와 그 세부구조를 밝혀내는 안내자가 된 것처럼 사회물리는 사회적 원자의 세부구조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거. 물론 이미 인문사회과학의 전통이 있고 거기서 배워야 하겠죠.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