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사회과학 분야의 논문을 읽어봤습니다. 루스 레티에(Ruth Rettie)가 2009년 <소셜로지>(Sociology)에 낸 "Mobile Phone Communication: Extending Goffman to Mediated Interaction"이라는 논문입니다. 이 글 제목이 이 논문 제목을 그대로 한국어로 옮긴 건데 영 어색하네요. 아무래도 핸드폰 자료를 접하고 다룰 일이 많아지다보니 관련된 사회과학 연구가 궁금하던 차에 예전에도 좀 찾아본 적이 있는데 말만 많고 초점을 잡기도 힘들어서 포기했습니다. 그러다 며칠 전에 다시 찾아보다가 이 논문을 발견했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6-70년대부터 고프만이라는 사람이 얼굴 보고(face-to-face) 상호작용하는 소통에 관한 이론(?)을 제시한 모양입니다. 저자는 고프만의 이론을 핸드폰, 컴퓨터 등으로 중재된 소통으로 확장합니다. 고프만은 얼굴 보고 하는 소통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중재된 소통은 배제했는데 그 이유는 얼굴을 보고 소통을 해야 직접, 개인적인 접촉을 할 수 있고 또한 서로를 감독할 수 있으며(mutual monitoring) 협조된(concerted) 사회적 상호작용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참가자들이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공유하지 않는다면 더이상 상호작용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시공간을 모두 공유하는 '얼굴 보고 하는 소통'은 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시간만 공유하거나(이동전화통화: 동시성) 시공간을 모두 공유하지 않는(문자메시지, 전자우편 등: 비동시성) 소통으로 확장됩니다. 저자는 이를 '중재된 마주침(mediated encounter)'라고 부릅니다. 물론 얼굴 보고 소통하는 것보다야 못하겠지만 통화의 경우 시간만 공유(share)해도 같은 사건을 공유하고 있다고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시 시간을 공유한다고 다 되지는 않고 '지속적인 초점이 있는 상호작용(sustained focused interaction)'이 마주침의 중요한 조건입니다.

다시 고프만의 논의를 소개하는데, 모임(gathering)은 앞무대(front region/stage)와 뒷무대(back region/stage)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앞무대는 실제 상황이 벌어지는 물리적 세팅, 뒷무대는 개인들이 앞무대에서 맡은 역할을 내려놓거나 잠시 쉬기도 하는 영역이라네요. 이런 앞/뒷무대 개념을 얼굴 보고 소통하는 두 사람 중 하나가 걸려온 전화를 받는 상황에 적용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본격 연구결과를 제시합니다. 한달에 15파운드 이상 이동통신 통화비를 내는 32명의 영국 성인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핸드폰 이용실태를 파악하여 이들이 핸드폰 통화와 문자메시지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등을 조사합니다. 

통화의 경우 사람들은 상대가 '거기' 있다고 느끼고 이로 인해 주의/초점을 공유할 수 있지만 문자의 경우 그렇지 않다고 느낀답니다. 또한 대부분 사람들은 통화가 문자메시지보다 더 사회적이라고 느낀다고 합니다. 정제된 문자보다 더 많은 감정적 표현들이 가능하기 때문이겠죠. 동시에 통화가 더 직접적이기 때문에 통화를 끊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네요.

다음으로 얼굴 보고 소통하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가 걸려온 전화를 받는 상황에 대한 경험과 그에 관한 느낌이 소개됩니다. 이건 패쓰. 그리고 중재된 상호작용에서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는가(presentation of self)의 문제가 다루어집니다. 통화의 경우 즉각적인 반응이 요구되면서 좀더 솔직하게 반응하는데 반해 문자의 경우 더 쿨하게 보이기 위해 문자를 여러번 고치면서 쓰기도 한다네요. 

마지막으로 동시성의 경계가 분명하지만은 않다는 논의를 합니다. 전자우편을 보내는 사람은 받는 사람이 전자우편을 확인하는 패턴을 알고 있으면 그에 따라 답변이 오는데 걸리는 시간을 여유있게 생각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문자메시지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비동시성이 있지만 '거의 동시적'인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는데 핸드폰은 항상 옆에 두기 때문이겠죠. 한국만 봐도 상대가 문자를 확인했는지 알려주는 서비스도 있었죠. (지금도 있나?) 다음으로 메신저를 이용하는 경우 동시성에 더 가까운 것으로 느끼겠죠. 하지만 컴퓨터로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게 허용되어 역시 통화나 얼굴 보고 소통하는 것보다는 덜 동시적인 것 같습니다. 

일상적인 경험을 분석한 논문이다보니 읽으면서도 "아, 맞아!" "그렇지, 나도 그렇게 느꼈어"처럼 공감을 많이 했네요. 우리의 '중재된 마주침' 경험은 날로 복잡해지고 새로워지는데 관련된 연구는 어떨지... 고작 논문 하나 읽고 판단할만큼 오만하지 않으므로;;; 더 공부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