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03/28


아, 지금은 연세대 행정학과 하연섭 교수의 <제도분석>(2003)을 읽고 있다. 몇 달 전에 **에서 아는 분들이 공부를 하시길래 두어번 낀 적이 있는데 그때 교재로 본 책이다. 그때는 거의 읽지 않았다. 오후 늦게 밥을 먹고 연구실에 앉아서 중간에 9시 뉴스를 본 것을 제외하고 계속 읽었다. 그러고보니 오늘 말을 정말 몇마디 하지 않았다. 밤에는 웬지 입이 간질거리더라. 11장까지 있는데 10장을 읽다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10장은 사례, 11장은 앞으로 이 분야의 전망을 담고 있다.

 

신제도주의에 대한 이론과 쟁점을 다룬 책인데 최근에 정치, 사회, 경제분야에서 '제도'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학문적 흐름을 신제도주의라고 한다.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1) 정치학과 사회학에서의 역사적 제도주의, (2) 사회학, 특히 조직이론에서 출발한 사회학적 제도주의, (3) 정치학과 경제학에서의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가 있다. 신제도주의가 구제도주의와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는데 이는 위의 세 가지에 따라 각각 다르다.

 

논의는 March와 Olsen(1984 & 1989)이 1950년대 이래의 지배적 사회이론들이 공유하고 있는 시각을 정리하고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기존의 사회이론들은 맥락적, 환원론적, 공리주의적, 기능주의적, 도구주의적 시각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각각에 대해 비판한다. 여기서 맥락적이라는 것은 정치가 사회의 일부일 뿐 자율성이 없다는 것인데, March와 Olsen은 정치의 상대적인 자율성과, 정치제도와 사회제도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한다. 또한 외부로부터 그 성격이 주어진 원자화된 개인들의 선택의 집합적 결과라는 시각에 대해서 인간의 행위가 제도적 맥락에서 형성되고 개개인의 선호도 구조의 내재적인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기존 사회이론의 시각 중의 하나로 나온 '맥락'과 원자화된 개인이 구조의 흐름 속에 있다는 '맥락'은 같은 낱말이지만 다른 '맥락'으로 쓰이고 있다. 처음부터 사람 헷갈리게 만든다.

 

이외에도 행위자가 이익극대화를 위한 행위가 아닌 상황에 적절한 대응을 한다는 규범적 측면을 강조하고, 개인의 선호는 전제가 아니라 설명의 대상이어야 한다고 하며, 역사발전이 꼭 효율적이지 않고 과거의 선택이 역사발전의 경로를 제약한다는 경로의존성을 강조한다. 다 맞는 말 같다.

 

그 다음으로는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접근방법에 따라 신제도주의가 좀더 풍부해지는데, 또 각 접근방법이 갖고 있는 한계에 대한 다른 접근방법의 비판이 제기되고 각 접근방법이 이러한 비판을 수용하는 과정까지 잘 정리되어 있다.

 

역사적 제도주의는 제도를 기술(description, 정치학의 구제도주의 관점)하는데 머물지 않고 설명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접근하다보니 거시적인 경향이 있고 또한 각국의 정치제도의 차이점에 주목하다보니 비교정치경제학과 방법론을 공유한다. 거시적인 구조의 변화를 설명하기는 하는데 그러다보니 미시적인 행위자들의 영향을 무시하는 측면이 있고 그래서 구조가 개인의 행위를 제약한다고 말하지만 결정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게 된다.

 

사회학적 제도주의는 이렇다. 조직을 닫혀있지 않은, 열린체계로 보면서 조직의 환경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자원이나 관련 정보를 조직에 제공해주는 기술적(technical) 환경만이 아니라 환경의 사회적, 문화적 측면을 주목한다. 또한 구제도주의가 조직을 둘러싼 규범적 측면을 강조했다면 신제도주의는 조직에 당연시되어온 가정, 상징, 의미체계에 주목하면서 제도를 인지과정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가정, 상징, 의미에 주목하다보니 행위자의 이익추구를 무시하는 측면도 있다.

 

구제도주의 경제학은 신고전파 경제학의 원자화된 개인, 주어진 선호를 극대화하는 개인이라는 가정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며 선호가 문화적 환경에서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환원주의를 비판하며 유기체적이고 전체적인 접근을 요구하고, 균형에 대한 강조를 비판하며 경로의존 개념을 중시한다. 반면에 신제도주의 경제학은 신고전파 경제학을 부정하는 대신 거래비용 개념과 제한된 합리성을 도입함으로써 신고전파 경제학의 설명력을 높이려고 한다. 이렇다보니 구제도주의 경제학이 신제도의의 다른 분파와 차라리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세 가지 관점에서 제도의 발생과 변화 등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결국 서로의 단점들이 문제제기되고 인정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수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저자도 여러 차례 강조하는 것은 제도와 행위자의 상호작용, 제도변화의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의 상호작용, 의도하지 않은 결과와 우연성, 관성에 의한 역사발전의 경로의존성 등이다.

 

그리고 제도도 단일한 가치체계가 아니라 여러 층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부분들이 기반하고 있는 가치체계도 다르므로 갈등은 필연적인데, 이러한 갈등을 표출시키고 그로부터 제도를 변화시키는 것도 행위자들이다. 여기에는 공식적인 제도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문화적인 비공식 제도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그래서 인지과정도 중요해진다. 이런 식으로 여러 분파의 신제도주의 논의들의 유기적인 결합을 이끌어내려고 시도한다.

 

이쯤에서 그만해야겠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한 마디 더 하자면. 제도변화의 주요한 틀로 제시되는 '단절된 균형(punctuated equilibrium)' 모형에 관해서다. 나는 이 말을 중단된 평형이라고 옮기고 싶은데 그게 그거구나. 제대로 알아봐야겠지만 이 개념은 고생물학과 진화론에서 처음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스티븐 제이 굴드가 진화론의 점진적인 변화에 대해 대안으로 제시한 개념으로 알고 있고 이를 물리학자들이 여러 모형으로 설명해냄으로써 좀더 정교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단절된 균형모형은 물리학에서 보여준 다양하고 풍부한 해석에 비해 굉장히 빈약하다. 저자도 제도변화의 틀로 제시된 단절된 균형모형의 단점들을 지적하고 있는데 물리의 중단된 평형모형에는 그러한 문제제기가 불필요하다.

 

다 읽지 못했지만 흥미롭게 보았다. 졸리니까 감상이고 뭐고 없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