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국복잡계학회 가을 학술대회에 참가했는데 그때 주제가 재난의 복잡성이었다. 그날 밤이었나 다음날이었나 관련된 생각을 정리했는데 이제서야 블로그에 쓴다. 


복잡계의 특성으로 하나를 꼽자면 우리가 시스템을 확실하게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시스템을 이루는 요소들 사이의 무수한 연결고리가 모두 제대로 기능하는지도 모르고 그걸 조사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일 것이다. 


일부는 제대로 기능하지만 다른 부분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고 하자. 이때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부분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스미기 전이) 그로 인해 커다란 사고가 터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조직 내의 의사소통 기능을 예로 들어보자. 현장에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 정보가 보고라인을 거쳐 본부(또는 상부)에 전달되어야 하고 적절한 대응책이 마련되어 다시 현장에 전달되어야 한다. 그런데 보고라인 중간이 끊어져 있다면 본부는 상황 파악을 못하고 현장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보고라인을 이루는 각 행위자들이 제대로 기능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게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우회로를 만들어두는 것도 중요하다.


문제는 시스템이 커지면서 관리가 힘들어지고 시스템을 이루는 요소들이 제대로 기능하는지 파악하기도 힘들어진다는데 있다. 이렇게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요소들을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이 잘 마련되어 있다고 해도 그 우회로에 있는 다른 요소가 언제나 제대로 기능하리라는 법은 없다. 1차, 2차, 3차,… 라인이 모두 기능을 하지 못할 확률이 분명히 있으며 이러한 불확실성에 의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복잡계를 이루는 요소들 중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요소들이 랜덤하게 나타난다고 할 때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고 규모의 분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분포가 두꺼운 꼬리를 갖는다고 해보자.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요소들이 우연히 모여서 시스템의 중요한 기능을 저해한다면 큰 사고가 언젠가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 두꺼운 꼬리를 완전히 없애는 건 시스템의 복잡성을 생각하면 매우 힘든 일이다. 다만 우리는 두꺼운 꼬리를 조금이나마 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데 그게 우리의 최선이 아닌가 싶다.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채 뭔가를 고치려 한다면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위에 든 예로 보자면 보고라인의 구조를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고, 각 행위자가 언제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보고라인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방식과 아래로부터 올라가는 방식이 적절히 쓰여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시스템 변화가 먼저냐 행위자의 동기가 먼저냐 같은 닭-달걀 문제도 있고, 복잡계이기 때문에 만능열쇠 같은 해답도 없다고 생각하고, 사실 결론도 뻔한 얘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