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11월입니다. 지난 목요일에 할아버지 제사가 있어서 부모님과 함께 시골 큰집에 다녀왔어요. 큰아버지, 큰어머니, 고모들, 고모부들, 당숙아저씨, 아주머니를 제외하면, 종손인 사촌형과 형수님, 그리고 제가 참석했습니다. 다른 사촌들은 바빠서인지 오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은 저밖에 없었고;;; 고모부들은 제게 결혼을 종용;;;하셨습니다.

남들처럼 평범한 게 제일이라고 하시더군요. 물론 제가 그런 말에 수긍할 사람은 아니죠. 그런 주장이 일리는 있지만 그건 '논리'가 아니라 '믿음'일 뿐이거나, 누구에게나 무차별하게 적용되는 '법칙'이 아니라 그냥 '경향'에 불과하거나 심지어 현실을 호도하는 미신 같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면서 결혼을 하라는데, 똑같이 후회할거면 안해도 되잖아요;;;

이 얘기가 아니라... 무질서한 접촉 과정(DCP)에 관한 연구가 이미 소개해드렸듯이 많이 연구되고 있는데요, 거의 처음(?) 이런 연구를 시작한 논문을 오늘에서야 봐서 간단히 소개하려고 합니다. 뽑아놓기는 옛날에 뽑아놨던 거라죠... 근데 예상했던 대로 '처음' 했다는데 의미가 있는 거고 그 이후로도 많이 연구되다보니 지금 봐서는 별로 새로운 내용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완전히 이해를 한 건 아니구요;;;) 네덜란드 뇌연구소의 Andre J. Noest(뇌스트?)가 1986년에 출판한 PRL 논문입니다.

다만 지금까지 얘기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내용들 중 이 논문에 있는 게 있어서 그걸 좀더 풀어서 얘기해볼게요. 너덜너덜한 격자 위에서 일어나는 접촉 과정이라고 하구요, 공간적인 무질서를 조절하는 변수를 p라고 하고 입자의 복제 확률을 c라고 할 때, 크기가 N인 클러스터(즉 클러스터에 포함된 자리(격자점)의 개수가 N) 위의 입자들의 생존확률이 어떻게 될까... 이런 걸 구해보자는 겁니다.

우선 크기가 N인 클러스터가 나타날 확률을 보면요. 격자 위의 각 자리에 결함이 없을 확률을 p라 하면, 이게 N번 반복되어야 하므로, p^N ~ exp(N * ln p)이고 간단히 exp(-bN)이라고 쓸 수 있습니다. p는 0과 1 사이이므로 ln p는 음수이고 그래서 b = - ln p는 양수가 됩니다.

크기가 N인 클러스터에서 입자들이 살아남으려면 이 입자들이 한꺼번에 죽지 말아야 합니다. 한꺼번에 죽을 확률은 (1 - c)^N이고 c가 작은 값이라고 가정하면 (1 - c)^N ~ exp(-cN)이 되겠죠. (너무 대충 쓰는 것 같은데요, 실제로 N의 계수는 c가 아니라 c의 거듭제곱 꼴이라고 합니다.) 이 클러스터에 입자들이 살아남을 '지속시간'은 대략 한꺼번에 죽을 확률에 반비례한다고 하면 그냥 exp(cN) 정도가 될 겁니다. 다시 말해서 시간 t가 흐름에 따라 크기가 N인 클러스터의 생존확률은 exp(- t / exp(cN))로 줄어든다는 거죠.

그러면 모든 클러스터를 고려한 시스템 전체의 생존확률은 대략 다음처럼 쓸 수 있습니다.


이 식도 생존확률.이라기보다는 전체 입자의 개수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줄어드는지를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눈여겨 봐야할 점은 이 생존확률을 특징짓는 임계지수, 즉 b/c가 조절변수에 따라 '연속적으로 변한다(continuously varying)'는 사실입니다.

연속적으로 변하는 임계지수...라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구글링해보니 1993년에 다(D. Dhar)가 토마스(P.B. Thomas)와 함께 쓴 논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모델 설명 등 다 건너뛰고 마지막 문단을 보니 간단하게 설명을 해놓았네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요, 하나는 조졀변수의 '특정한 값'이 아니라 조절변수의 '영역'에서 모두 거듭제곱 꼴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자연/사회현상에서 거듭제곱 꼴이 매우 많이 관찰되는데 상전이 관점에서 그런 거듭제곱 꼴은 어떤 조절변수를 미세조정(fine-tuning)할 때에만 나타나거든요. 즉 조절변수를 특정한 값에 맞춰야만 한다는 건데, 그건 거듭제곱 꼴이 일반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도입된 개념이 '자기조직화임계성' 즉 지가 알아서 조절변수가 특정한 값으로 맞춰지더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연속적으로 변하는 임계지수'는 굳이 '자기조직화'라는 모호한 개념이 없어도 거듭제곱 꼴이 생각보다 많이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얘기해준다는 거죠.

이 설명에는 다의 설명에 (오히려 상반된 관점의) 제 해석을 짬뽕한 거라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논문을 찾아서 보세요...

두번째 측면은, '보편성'은 보편적인가?라는 질문과 관련된 겁니다. 보편성은 모형의 '세부사항'과 무관한 특성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게 정량적으로는 모형의 세부사항이 달라져도 상전이의 임계지수가 변하지 않는다는 성질로 드러나죠. 그런데 그 임계지수가 모형의 세부사항인 조절변수 c나 p에 따라 달라진다면 이게 기존의 '보편성'을 부정하는 거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다는 위 논문에서 '부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개념을 명확하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라고 합니다만, 쨌든 더 생각해볼만한 주제입니다.

이제서야 '연속적으로 변하는 임계지수' 앞에 종종 붙는 '보편적이지 않은(nonuniversal)'이라는 형용사를 이해할 수 있네요. 하지만 그 연속적으로 변하는 임계지수의 연속적으로 변하는 모양이 역시 모형의 구체적인 세부사항에 무관하게 똑같다면 그건 이미 보편성을 띄는 것이라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럼 위의 DCP에서 나타난 연속적으로 변하는 임계지수의 원인은 뭐냐?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DCP 모형의 어떤 요인에 의해 임계지수가 연속적으로 변하느냐라고 묻는거죠. 하나마나한 대답으로는, '공간적인 무질서'가 그 원인입니다. (근데 그걸 누가 몰러?;;;) 다시 물으면, 공간적인 무질서가 '어떻게' 연속적으로 변하는 임계지수를 야기하는가?겠죠. 역시 하나마나한 대답으로, 위에 쓴 수식을 보면 됩니다... 근데 그건 산수일 뿐이고, '물리적 원리'가 뭐냐는게 원래 질문이죠. 화장실 다녀와서 더 생각해보고 생각나면 쓰고 아님 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