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동질성/균질성(homogeneity)의 반대말로 쓴 겁니다. 밀러와 페이지(John Miller & Scott Page)가 2007년에 펴낸 <Complex Adaptive Systems: An introduction to computational models of social life>라는 책의 앞부분에는 꿀벌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자들은 벌집의 온도조절 메커니즘을 꿀벌들의 이질성에 의한 안정화(즉 음의 되먹임)로 해석하고, 벌들의 방어 메커니즘을 꿀벌들의 이질성에 의한 불안정화(즉 양의 되먹임)로 해석합니다.

(1) 온도조절: 벌들은 온도가 특정 온도(T)보다 낮으면 날개를 비벼 열을 내고 온도가 특정 온도보다 높으면 날개를 팔랑여서 온도를 낮춥니다. 이 벌들 각각은 앞의 '특정 온도'에 반응할텐데 벌들이 모두 똑같은 특정 온도에 반응한다고 합시다. 벌 한 마리가 날개를 1회 비벼서 온도를 t만큼 올린다고 하고, 벌이 n 마리 있다고 하면 벌집의 온도가 특정 온도보다 낮아지는 순간 모든 벌이 1회 날개를 비벼댐으로써 nt만큼 온도가 올라갑니다. t가 작더라도 n이 크면 온도가 갑자기 점프를 할 겁니다. 즉 벌들의 동질성에 의해 온도 변화가 거칠게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벌들이 느끼는 '특정 온도'가 모두 다르다면, 벌집의 온도가 낮아지면 몇몇 벌들이 날개를 비벼대기 시작해서 다시 금방 적정 온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벌집 온도의 미세조정이 가능해집니다. 저자들은 이를 '이질성에 의한 안정화(increased heterogeneity improves the ability of the system to stabilize)'라고 부르는데 '온도의 요동을 줄인다'는 면에서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온도조절 메커니즘에서 벌들이 벌집의 온도변화에 반대방향으로 행동한다는 사실과 벌들의 동질성/이질성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음의 되먹임'이라는 말은 '자극에 반대로 행동'을 가리키는 것이지 '반대로 행동하는 정도의 이질성'을 가리키는 건 아니죠. 저자들은 이 두 가지를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독자들을 오해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2) 방어: 벌들은 외부의 공격에 대해 반응한다고 합니다. 벌집 안에 100마리의 벌이 있다고 하고 벌집을 지키는 벌들이 벌집 근처에 있다고 합시다. 위험이 감지되면 벌집 바깥의 벌들이 벌집 안으로 여러 신호를 보내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벌집 안의 벌들은 신호에 즉각 반응하지 않고 몇 마리 이상의 벌들이 방어에 나서야만 자신도 방어에 나선다고 하는, 문턱값을 가집니다.

이제 모든 벌이 모두 똑같은 문턱값을 갖는다고 합시다. 이를테면 50마리 이상이 방어에 나서야 자신도 방어에 나섭니다. 그러면 벌집 바깥의 방어하는 벌들이 50마리가 되기 전에는 아무도 나서지 않으므로 매우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만일 벌들의 문턱값이 모두 다르다면, 외부의 작은 공격 신호에도 반응하는 벌들이 먼저 방어하기 시작하고 점점 더 둔감했던 벌들도 방어에 나설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외부 반응에 민감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외부의 작은 반응에 시스템 전체가 반응하므로 불안정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도 있죠.

이에 대해 저자들은 '이질성에 의한 불안정화(heterogeneity induces instability)'라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외부의 공격에 대해 방어에 나선다는 사실과 벌들의 동질성/이질성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양의 되먹임'이라는 말은 '자극에 따라서 행동'을 가리키는 것이지 '자극에 따라서 행동하는 정도의 이질성'을 가리키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역시 저자들은 이 둘을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역시 독자들을 오해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이질성은 외부 자극(공격)에 민감하되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만들므로 역시 급격한 반응에 따른 위험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유연한 대처'의 관점에서 보자면 오히려 이질성에 의해 시스템이 안정화될 수도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