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창 생태주의와 환경문제 등에 대해 고민할 때 썼던 글입니다. 지금은 판단중지 상태이고요. 오늘 사람들하고 저녁 먹으면서 했던 얘기와 연관되는 것 같아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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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 2. 5.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데이비드 헬드 등이 짓고 조효제가 옮긴 <전지구적 변환(Global Transformations)>이다. 글쓴이는 10년에 걸쳐 책을 썼단다. 이걸 번역하는데 18개월이 걸렸단다. 원서는 1999년에 한국어 번역서는 2002년에 나왔다. 근대 국민국가 형성 이후 일국적 차원에 머물러 있던 것들(정치, 경제, 군사, 환경 등)이 어떻게 지역적(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등) 지구적으로 변화해왔는가를 많은 구체적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 이전에도 제국이 있었고 나름의 방식대로 대륙간 무역이 있었으나 지금과 같은 범위, 강도, 영향력, 속도를 보여준 적은 없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많은 원인이 작용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교통, 통신, 운송수단의 발달이 있다. 물론 이것도 산업혁명 이후 생산력의 발달에 따른 것이다. 교통/통신/운송 비용이 낮아짐으로써 세계는 더욱 좁아졌고 국가들 사이의 상호연결이 강화되어 왔다. 더 많은 교류가 있을수록 국가간 협정이나 협약도 많아졌고 그것의 성격도 비강제적인 국제법에서 어느 정도 제도화되어 강제성을 띄는 세계주의법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강제성'이라는 말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상품은 생산-유통-소비의 과정을 거쳐 그 자신의 가치를 실현한다. 생산, 소비뿐만 아니라 유통의 과정에서도 에너지가 소비되고 비용이 든다. 에너지가 소비되는 과정에서는 늘 쓰레기가 생기며 유통과정도 생태주의적인 관점에서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일단 상품의 유통과정에서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방법으로 친환경적인 운송수단을 이용하는 것도 있겠지만 유통기간/유통거리를 단축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다. 유통기간/유통거리가 단축되면 생산시각과 소비시각, 생산지와 소비지 사이의 차이가 줄어들 것이다. 자연의 정화능력에 일정한 한계값이 있다고 할 경우, 운송수단의 생태적 비용을 조절함으로써 유통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더 적은 에너지로 더 먼 거리를 운송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그만큼 '자급자족을 실현할 수 있는 규모의 최대값'도 커질 수 있을 거라는 말이다.

앞에 퍼놓은 '자급'이라는 글에서 예로 든 먹거리를 생각해보자. 방부제를 많이 뿌리지 않아도 오랜 기간 신선도를 유지시킬 수 있는, 그 과정에서 비교적 적은 에너지가 소비되는 시스템이 개발된다면 바람직한 일이다. 물론 그런 기술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며 그 초과분에 해당하는 풍요(?)는 줄이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전력소비수준을 그대로 두고 생산수준만 재생에너지규모로 바꿀 수 없듯이, 새로운 먹거리보관 기술이 아주 기적적인 발전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절대적인 유통량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도로교통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데, 교통량을 줄일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늘어나는 교통량을 수용하기 위해 도로를 많이 짓는 것은 더 많은 생태계 파괴로 이어져서 인간의 삶을 위협할 것이다.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대중교통시스템을 더욱 효율적으로 재편하고 개인교통수단의 이용을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도시로의 인구 집중을 막을 수 있는 방안도 연구되어야 한다.

쓰다보니 지역적(local) 규모의 해결보다는 전체적 규모의 해결에 의존하는 느낌이다.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를 TGAL(think globally act locally)라고 한다면 TLAL, TGAG, TLAG의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이 네 가지 중에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는 구체적 문제의 특성에 따라 달려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이와 유사하게 직접 민주주의 규모도 얘기해 볼 수 있겠다. 통신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소통을 할 수 있고, 그 규모는 이전 시기에 비해 엄청나게 커진 것 같다. 물론 의사소통량에도 한계가 있다. 밥먹고 인터넷만 붙들고 살 수는 없으니까. 여기서 생태주의적 관점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대용량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하부구조를 마련하는데 드는 생태적 비용.이라는 것이다. 컴퓨터를 만들면서 배출되는 환경오염량이 자동차보다도 훨씬 크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이런 것들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친환경적인 장거리 의사소통수단의 개발에 따라 직접 민주주의의 규모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규모는 정치적 단위의 크기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의 원칙과 생태주의적 원칙을 모두 지켜내려는 노력을 하는 경우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