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전이 모형에는 조절변수라는 게 있습니다. 온도라든지 압력이라든지 우리가 그 시스템의 외부에서 그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를 통해 시스템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자석에 가열을 하는 실험을 한다고 하면요, 자석이 자성을 잃는 특정한 온도가 있고 이걸 임계점이라고 하죠. 그런데 그 임계점은 말 그대로 하나의 '점'입니다. 예를 들어 임계온도가 700도라고 하면 699.9999도 아니고 700.0001도 아니며 정확히 700.0000이어야만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임계점에서만 앞 글에서 말한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나는 거죠. (물론 그 온도 근처에서도 '재미있는 현상'이 부분적으로 불완전하게 나타나기는 합니다만, '상관길이의 발산'이 극대화되는 임계점만이 '완전하게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그 임계점에 맞추기가 쉬운 일은 아니죠.

이를테면 사람 사이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너무 가까워도 서로를 구속하는 것 같고, 너무 멀어도 서로 무관심한 것 같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재미있는 관계'를 위한 중요한 조건이지요. 물론 항상 오차가 있으므로 '완전하게 재미있는 관계'라는 건 어쩌다 임계점에 이른 그 순간일 뿐이겠죠. 임계점을 배회하지만 결코 지속적으로 임계점에 다다를 수 없는 인간의 슬픈 운명;;;인 건가요?

그런데 여기에 '자기조직화 임계성(SOC)'이라는 개념이 제시됩니다. 시스템이 지가 알아서 임계점으로 간다는 겁니다. '완전하게 재미있는 현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을 가진 상전이 모형의 관점에서 이건 천국과도 같은 상황이 되는 겁니다. 내버려둬도 노력하지 않아도 지가 알아서 '완전한 재미'를 선사해주다니. 세상에 이런 공짜가 어디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뭔가 속는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좀더 명쾌하게 저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이미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저도 관련된 공부를 해왔습니다. 제 결론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겁니다. SOC를 보여준다고 주장되는 모형들에는 '자기조직화 메커니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게 없다면 애초에 SOC 모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메커니즘은 사실 전지전능한 존재를 가정해야 가능합니다. 적어도 모래더미 모형에서는요.

사람들이 치고받고 싸우니까 '신'의 존재를 들이대며 '싸우지 말라'고 종용하는 상황이랄까요. 모든 사람이 완전하게 신을 믿고 따른다면 그것도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겠지만, 어디 인간이 그런가요.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문제를 다른 문제로 바꿔버린 느낌이 듭니다. SOC도 마찬가지입니다. 임계점에 다다름으로써 '완전하게 재미있는 관계'를 욕망하는 인간들에게 SOC는 환상 또는 허상일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이거 뭐 진담도 아니고 농담도 아니고... 아니면 농담 반 진담 반인 얘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