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는 origin이라고 하면 되는데 한국어로는 '원인'이라고 하면 무난할 듯 하다. 거듭제곱 법칙(또는 거듭제곱 꼴; power-law)은 다양한 자연/사회현상에서 관찰된다. 마크 뉴만(M.E.J. Newman)의 논문[1][2]을 보면 논문의 인용횟수, 웹페이지의 방문자수, 달의 분화구 지름의 분포, 전쟁의 세기(사망자수로 측정), 지진의 세기 분포 등이 거듭제곱 꼴을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주식시장의 수익률 분포, 재산 및 수익 분포 등에서도 거듭제곱 꼴이 나타나며 후자의 경우 파레토 분포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거듭제곱 꼴은 통계물리에서도 특히 중요한데 상전이와 임계현상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들이 거듭제곱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나도 석사논문으로 모래쌓기 모형을 연구하면서 왜 자연현상에 거듭제곱 꼴을 따르는 현상이 많이 나타날까를 고민하여 간단한 모형을 만들어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사회현상의 거듭제곱 꼴에 대해 잘 몰랐다.) 그럼, 집앞 텃밭을 도보로 만들기 위해 타일을 가져다 깐다고 생각해보자. (도시화의 폐해;;) 텃밭의 모양은 대충 직사각형이나 타원형이라고 하자. 그런데 문제가 있다. 타일을 주문한 것이 아니라 동네 놀이터에 굴러다니던 것을 아무렇게나 줏어왔다고 하자. 어떻게 주어진 텃밭을 제각각인 모양의 타일들로 꽉 채울 수 있을까.

우선 커다란 타일들로 텃밭의 한쪽 구석부터 차곡차곡 채워나간다고 하자. 하지만 타일들의 모양이 제각각이므로 어디에나 ''이 생긴다. 그럼 그 틈보다 작은 크기의 타일을 골라서 그 틈을 메꿀 수 있다. 단, 한 가지 가정을 하면 타일의 모양을 다듬을 도구가 없다고 하자. 그런 도구가 있었으면 애초에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틈보다 작은 크기의 타일들로 틈을 메꾼다고 해도 여전히 그 타일들 사이에는 틈이 존재한다. 이런 식으로 틈을 메꾸기 위한 더 작은 타일들이 필요하며 동네 놀이터에는 아무리 작은 크기의 타일이라도 구할 수 있다고 하자.

텃밭을 타일로 완전히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99.999999999% 정도 채웠으면 타일 각각의 넓이를 구해 그 넓이의 분포를 그려볼 수 있다. 타일 넓이의 분포는 아마도 거듭제곱 꼴일 것이다. 내가 석사논문에 썼던 모형은 길이가 1인 선분을 더 작은 크기의 선분으로 채우는 것을 간단히 컴퓨터로 돌려서 그 선분들의 길이 분포를 보았고 대충 거듭제곱 꼴을 따른다는 것을 확인했다. 논문에 넣은 그림을 올리고 싶지만 지금 이 컴퓨터에 논문 파일이 없다.

텃밭-타일 모형에는 두 가지 전제가 깔려있다. 하나는 주어진 텃밭을 꽉 채워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일들의 모양이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텃밭을 꽉 채울 필요가 없다면 어느 정도 채워진 다음에 그만 둘테니 거듭제곱 꼴이 나오지 않을 것이고, 타일의 모양이 정확히 딱딱 맞다면 '틈'이 생기지 않을테니 역시 어느 순간 텃밭을 100%를 채우고 끝나서 역시 거듭제곱 꼴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원래부터 타일의 넓이가 거듭제곱 꼴이었으므로 결과적으로 거듭제곱 꼴이 나온 것이 아니냐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가능한 모든 넓이(가능한 모든 모양이 아니라)의 타일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타일들 사이의 틈을 메꾸다보니 어쩔 수 없이 더 작은 크기의 타일들, 그리고 그 사이의 틈을 메꾸기 위한 더 작은 크기의 타일들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틈이 작아질 수록 그러한 틈 난 자리의 수(즉 틈의 개수)가 점점 더 많아지게 된다.

자연/사회현상에서 많이 나타나는 거듭제곱 꼴도 이러한 메커니즘에 의한 것일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코즈마 살리지(Cosma Shalizi)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주장한대로 거듭제곱 꼴을 만들어내는 960(?)가지 방법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모형과 반대방향에서 접근하는 것으로 율 과정(The Yule process)이 있다. 생물분류에서 각 속에 포함되어 있는 종의 수의 분포를 그려보면 거듭제곱 꼴이 나오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 율이라는 사람이 1920년대에 제안한 방법이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각 종이 멸종하지 않는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전제 위에서 어떤 속에 k개의 종이 포함되어 있으면 그 속에 새로운 종이 나타날 확률을 k에 비례하게 주는 것이다. 마치 재산에 상관없이 수익률이 같다고 해도 부자는 원래 재산에 비례하는 많은 수익을 얻는데 반해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여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것과 같다. 이 설명의 연결망 이론 버전이 선호적 연결(preferential attachment)이며 이웃이 많은 노드들에 더 많은 이웃이 달라붙어 허브가 되는 것을 설명해냈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쓴 내용들로 봐서, 거듭제곱 법칙이 나타나는 것은 꽤나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거듭제곱 법칙은 그렇게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만일 사람들의 키의 분포가 어떠한 평균값을 중심으로 종(bell) 모양이 아니라 거듭제곱 꼴이라고 해보자. 종 모양일 때에는 키가 아무리 크든 작든 대충 다 2미터보다 작거나 간혹 2미터보다 큰 사람이 나타나는 정도지만, (지수가 음수인) 거듭제곱 꼴이라고 하면 길거리에서 키가 10미터나 100미터가 되는 사람들을 비교적 자주 마주칠 수 있고, 키가 10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으며 1센티미터보다 작은 사람들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이 모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마주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실제로 재산의 분포, 전화 수신 횟수, 도시의 인구 수의 분포 등이 이렇게 이상해보이는 분포를 보이고 있다.

너무 길어졌다.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