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요동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파인만의 QED 강의>에 나오는 경로 적분(path integral)이 머리 한켠에서 맴돌았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캐나다 몬트리올 대학의 맥켄지 교수가 arxiv.org에 올려놓은 강의록이 있어서 조금 보았다.

고전물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라고 할 수 있는 최소작용의 원리가 있다. 허공에 물체를 던지면 그 물체에 대한 '작용(action)'이라는 양을 정의할 수 있는데 그 작용이 최소가 되는 경로를 따라 물체가 운동한다는 말이다. 참으로 게으른 물체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자연이 그렇게 생겨먹었다. 이 원리로부터 라그랑지의 운동방정식, 해밀턴의 운동방정식, 뉴턴의 운동방정식 등이 유도된다. 사실 이 방정식들은 모양만 이리저리 바뀔 뿐이지 그 기본은 동일하다.

1933년 디락은 고전물리학에서 작용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양자역학에서는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파인만이 디락의 생각을 이어받아 경로 적분을 이용해 양자역학을 다시 썼다고 이 강의록에 나와있다. 그리고 이 주제의 기초를 놓은 파인만의 원래 논문은 물리평론(Physical Review)에서 게재 거부를 당했다고 한다.

고전적인 물체를 지표면에서 비스듬히 던지면 포물선 운동을 하며 그 외의 경로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양자현상에서 입자 하나가 여기에서 저기로 움직인다고 할 때 그 입자는 '가능한 모든 경로들'을 통해 목적지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경로에 대한 합(또는 적분)을 구해야 입자의 운동에 관해 말할 수 있다. 입자를 여러 번 움직이게 한 것이 아니라 단 한 번 움직이는 경우에도 모든 경로를 따라 움직인다. 고전적으로 보면 이상한 얘기지만, 어쨌거나 자연은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 내 손가락들이 키보드를 두드리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데, 이것도 사실은 가능한 모든 경로를 통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가능한 모든 내용을 포스팅하고 있지만 지금 이 '경로 적분'이라는 내용이 나올 확률이 다른 내용, 예를 들면 '왜 나는 밤늦게까지 깨어있는가?'와 같은 글이 나올 확률에 비해 무지하게 높아서 결국 '경로 적분'이라는 글이 포스팅될 것이다.

수식을 쓰지 않으려니 자꾸 상상의 나래만 펴고 있는데, 사람의 마음 또는 신경망에서의 정보/기억/의식의 흐름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머리 한 구석에서 우연히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으로 연상된 다른 생각들이 '가능한 모든 경로들'을 통해 일어나고 그러다 결국 다른 어떤 생각으로 수렴되면 다시 정신이 들었다가 또 새로운 생각이 바람처럼 일고 지기를 되풀이 하는 것... (아마도 아래 Rokea님의 덧글에 의한 영향인 듯;;;) 나도 휘리릭 가능한 모든 경로를 거쳐서 들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