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엘러건트 유니버스>로 유명한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의 새(?) 책인 <우주의 구조>를 읽고 있다. 역시나 흥미로운 주제를 개념적으로 알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두껍고 비싸지만 만족해하고 있다. 750쪽에 달하지만 후주와 색인 등을 빼면 630쪽 정도 된다. 그런데 후주에도 많은 정보가 담겨 있고 특히 본문에서 종종 생략한 수학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2부까지 봤고 쪽수로 보면 딱 절반 정도 읽었다. 그런데도 벌써 블로그에 글을 쓰려는 이유는 열역학적 시간 비대칭성에 관한 저자의 논의를 이해해보기 위해서다.

뉴턴의 운동방정식,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슈뢰딩거와 하이젠베르크 등이 정립한 양자역학 각각에서는 시간되짚기 대칭성(time reversal symmetry)이 있다. 방정식에 포함되어 있는 시간 t를 -t로 바꾸어도 방정식은 그대로 성립한다. 책에 있는 예처럼, 금성에서 던져져서 목성으로 날아간 테니스공의 궤적이나 이와 똑같은 경로를 거꾸로 따라 목성에서 금성으로 날아간 궤적이나 모두 뉴턴의 운동방정식을 만족시킨다. 둘 다 방정식의 해이므로 둘 다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물이 들어있는 컵에 잉크 방울을 떨어뜨려서 잉크 입자들이 퍼지는 현상은 늘 관찰되지만 물에 퍼져있던 잉크 입자들이 모이는 현상은 거의(거시적으로는 전혀) 관찰되지 않는다. 잉크 입자, 물 입자들도 뉴턴의 운동방정식을 따른다고 하면 잉크가 퍼지는 일이나 모이는 일이나 둘 다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이어야 한다. 둘 다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만 나타나기 때문에 비대칭성이라는 말이 붙었다.

왜 여기에 '시간 비대칭성'이라는 이름이 붙었나? 잉크 입자가 원래 모여 있다가 퍼진 후에 어느 순간 각 입자의 속도를 모두 반대방향으로 바꾸어주면 잉크 입자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한다. 속도를 반대방향으로 만든다는 것은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효과와 동일하기 때문에 '시간'이라는 말이 붙기 시작한 것 같다.

물리법칙의 시간 대칭성은 f(t)가 해라면 f(-t)도 해라는 말이다. 간단한 예로, 입자 하나가 한쪽 방향(+y축 방향이라고 하자)으로 속도가 v인 등속운동을 한다면 그 입자의 위치는 y(t) = vt 이다. 뉴턴의 운동방정식은 t를 -t로 바꿔도 성립하므로, y(-t)도 이 시스템의 해가 된다. 즉 y(-t) = -vt도 물리적으로 가능하다. 이 두 해를 비교해보면 v가 -v로 바뀐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처음 v의 속도로 움직이는데 어느 순간 시간되짚기 변환을 하여 입자의 속도를 순간적으로 반대방향으로 만들어주면 충분한 시간이 지나서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올 것이다. 이렇게 시간되짚기를 하여 시스템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시간 대칭성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를 엔트로피 변화에 적용해보자. 시스템의 엔트로피가 시간에 따라 커지고 있는데, 어느 순간 시간되짚기 변환을 하면 엔트로피가 줄어들다가 원래 값으로 돌아갈 것이다. 즉 시간이 과거로 흐르면 엔트로피는 감소한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엔트로피는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해 미래로 갈 때도 증가하고 과거로 거슬러 갈 때도 증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241쪽 그림6.2 설명).

여기서 "과거로 거슬러 갈 때"라는 표현이 좀 모호한데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1) 어느 순간(현재) 입자들의 속도를 모두 반대방향으로 바꾼 후에 시간을 미래로 흐르게 하면 과거로 흘러가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는다. 위의 간단한 예에 적용해보면 -v의 속도로 시간이 미래로 흐르는 경우에 해당한다. 입자는 -y축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2) 속도는 그대로 두고 시간을 -t로 흐르게 한다. 속도는 v이지만 시간이 -t이므로 이번에도 역시 입자는 -y축 방향으로 움직인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두 경우 모두에서 입자는 -y축 방향으로 움직인다. 입자 하나의 운동이 곧 엔트로피는 아니지만 엔트로피도 결국 미시적인 입자들의 상태의 함수이므로 책의 그림6.2에 나와있는대로 시간이 과거로 흐를 때에도 미래로 흐를 때처럼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설명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책의 그림대로 이해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즉 입자 각각의 운동은 "미래로 갈 때"와 "과거로 거슬러 갈 때"가 다르지만 입자들의 총합인 시스템의 엔트로피는 두 경우 모두 증가할 수 있다. 시스템의 현재의 엔트로피가 가능한 최소값이면 된다. 더이상 줄어들 수 없으므로 어느 시간 방향으로 가든 엔트로피는 늘어날 것이다. 아마도 저자는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설명을 한 것 같은데 이런 상황은 매우 특이한 경우이므로 일반적으로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어쨌든 "과거로 거슬러 갈 때"에 대한 오해가 있을 수 있으며 이 부분을 제외한다면 왜 우리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현상만을 관찰하는가에 대한 설명은 문제가 없다. 무질서한 상태일수록 실제로 나타날 경우의 수(즉 확률)가 높아지고 거시적인 현상에서 그럴 확률은 압도적으로 커지므로 우리가 초기에 낮은 엔트로피 상태에 있었다면 엔트로피가 증가할 확률 역시 '압도적으로 커진다'.

하나만 더 얘기하면, 약한 상호작용(네 가지 기본적인 힘 중의 하나)이 연관된 현상에서는 시간되짚기에 대한 비대칭이 실험적으로 발견되었다. 이에 관한 후주의 내용을 옮긴다.

... K-중간자가 CP 변환에 대하여 불변임을 실험으로 입증하였는데, 이것은 K-중간자가 시간되짚기 변환 T에 대하여 불변이 아님을 보여주는 간접적인 증거였다. ... 그러나 K-중간자는 고에너지 상태에서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질 뿐, 일상적인 물체를 이루는 기본입자가 아니기 때문에 시간의 방향성 문제와는 별 관련이 없다는 것이 나를 포함한 대부분 물리학자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이 예외적인 경우는 더 이상 고려하지 않기로 하겠다(물론,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 681-682쪽

생각을 정리한다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 역시나 뭔가 헷갈리게 만드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림만 잘 그려놓으면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 얘기다. 일단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