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 대충 쓰겠습니다. 학회의 정식 이름은 "The International School and Conference on Network Science"이고 줄여서 NetSci2011(넷싸이)로 부르더군요. 보아하니 2006년에 미국 블루밍턴에서 처음 시작하여 해마다 열렸네요. 이후 미국 뉴욕('07), 영국 노르위치('08), 이탈리아 베니스('09), 미국 보스턴('10)에서 열렸네요. 이번에는 이번주 내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렸고, 내년에는 미국 시카고에서 브라이언 우지 교수가 주축이 되어 열기로 했고, @lshlj에 따르면 2013년에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기로 했다고 합니다.

저는 예전부터 말로만 듣고 이번에 처음 참가했습니다. 처음부터 연결망이론에 관심이 있었지만 갈 기회가 없었고 또 한편으로는 회의적으로 보기도 했거든요. 이번에는 다행히 가깝기도 하고, 제가 직접 발표를 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이곳에 와서 한 연구가 공동연구자들의 발표에 포함되어 그 핑계로 올 수 있었네요. 사실 발표신청 마감일이 언제인지도 몰라서;;; 한참 지나서야 포스터발표 신청을 했는데 된다 안된다 아무 연락도 못받고 끝났습니다.

6월 6일 월요일 아침 가방 하나 둘러메고 헬싱키 반따 공항에 가서 뱅기 기다리는 동안 <커넥션>을 읽다가 동료를 만나서 좀 떠들다 뱅기를 탔습니다. 헬싱키에서 부다페스트까지 2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예전에 서울-대전 고속버스 타고 다니던 기분.이랄까. 택시 타고 호텔에 도착하니 12시도 안된 시각. 짐풀고 학회장소까지 슬슬 걸어갔습니다. 덥더라고요. 중간에 헝가리 식당이라고 해서 지하에 들어갔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엄청 짠 음식을 간신히 먹고 나왔네요. 

학회장소는 '중부유럽대학교(CEU)'라고 조지 소로스가 1991년에 설립한 학교입니다. 사회과학대학원만 있는 학교라고 하더군요. 조금 더 가면 헝가리과학아카데미 건물이 있고 그 바로 옆에 다뉴브강이 흐릅니다. CEU에서 남쪽으로 시내중심가, 서울로 치면 광화문-시청쯤 되는 곳이고 더 아래로 내려가면 명동 같은 쇼핑거리가 있다네요.(거기까진 못가봤습니다.) 학회 등록을 하고 할 일이 없어서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에 잠깐 갔다가 사진 좀 찍고 커다란 성당(교회?;;) 옆에 있던 커피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쉬었네요. 이번주 내내 천둥번개가 예보되어 있었으나 월요일만 천둥이 좀 치고 그담부터는 비가 쬐금 오는 정도였네요. 아 쓸데 없는 얘기 그만 하고;;;

화요일에는 본 학회에 앞서 위성학회가 열렸습니다. 사실 월요일에도 열렸는데 저는 화요일에 열린 것만 신청했지요. 제가 들은 학회이름은 "사회/정보연결망에서 확산, 영향, 연달아 일어나기"였습니다. 1896년에 지어졌다는 부다페스트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다행히 시간에 맞춰 학회장소에 도착했습니다. 크지 않은 강의실이 꽉 찼고 더러 서서 듣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연결망 위에서 정보나 전염병이나 생각들이 어떻게 퍼지고, 서로 영향을 미치며, 그런 연쇄반응이 보이는 현상에 대한 발표들이 하루동안 이루어졌습니다.

예전에 학회를 들으며 내가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발표에 관한 간단한 설명 등을 트위터에 실시간 중계를 한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들고간 놋북으로 시도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좀 해볼까 했는데 어쩌다보니 금요일 마지막 행사까지 한 세션을 빼먹은 것 외에 모두 트위터로 중계를 해버렸네요. 중간부터는 나름 사명감이 생겨서 무선인터넷이 잘 잡히지 않는 강의실에서는 반패닉상태에 이르기도;;; 덕분에 그냥 흘려들을 수 있었던 발표들을 조금이라도 더 제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다보니 저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미 그렇게나마 정리를 해둬서 블로그에 다시 정리하려니 더더욱 귀찮네요;;;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본 학회. 오전에는 모두 전체세션으로 헝가리과학아카데미의 넓은 홀에서 열렸습니다. 전체세션은 중요한 연구를 해온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의 발표로 이루어졌습니다. 로바스와 갈라는 수학의 그래프이론 중에서도 큰 연결망에 적용할 수 있는 엄밀한 이론을 소개해주었고, 첸은 이웃행렬의 고유값으로부터 동기화가능성을 논의하는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생물학과 관련된 주제도 많았는데요. 알론은 생물의 진화에서 모듈이 만들어지는 원인을 컴퓨터 실험으로 밝혀내는 과정을 보여주었는데 문제 설정과 이를 풀어내고 해석하는데까지 탁월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비첵은 새들이 무리지어 날아가는게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더 복잡하며 새들 사이의 위계를 연결망으로 파악하는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베스피냐니는 전염병 확산에 관해 실증분석, 모형연구 등을 통해 밝혀낸 많은 내용을 보여주었습니다. 마르티네즈는 연결망이론을 적용하여 생태학의 여러 문제들을 연구해왔습니다. 고먹이그물을 연구하기도 하고, 인간-자연연결망을 통해 인간의 행동이 생태계의 종다양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도 얘기를 하더라고요.

사회현상에도 연결망이론은 적용되지요. 곤잘레스는 사람들의 이동패턴을 미국, 포르투갈 등 5개 도시에서 분석하는데 핸폰을 쓸 때마다 이용된 기지국의 위치정보를 이용합니다. 그리고 이런 행동패턴을 군집으로 나누어 보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쓰고보니 딱히 연결망은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드네요. 켈테츠는 핸폰통화 데이터에서 나타나는 거시적 정보확산 현상, 중시적으로는 동역학적 모티프를 이용한 분석, 미시적으로는 사용자들의 폭발성(burst)을 관찰하고 그 원인을 밝혀내려는 연구들을 정리해서 발표했습니다.

우지는 주식거래자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동기화될 때 더 많은 수익을 낸다는 걸 보여줍니다. 여기서는 주식거래자와 주식이 두 가지 서로 다른 노드로 정의되는 이종(bipartite)연결망을 만들 수 있는데 주식시장의 변동성의 수준에 따라 거래자들이 정보흐름에 이용하는 링크의 세기가 의존한다는 얘기도 하더군요. 야후에서 일하는 와츠는 아마존의 미케니컬 터크(AMT)를 이용한 행동과학실험에 대해 소개하고 이를 통해 직접 실험한 결과, 그리고 웹기반실험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사회과학의 전망을 얘기했습니다.

드수자는 좀더 '순수한' 통계물리 연구로서 지난 몇년 동안 폭발적으로 이루어진 '폭발적 스미기(explosive percolation)'에 관해 정리해주었습니다. 처음 제시된 폭발적 스미기는 불연속 전이라는 주장에 대해 도로고프체프가 연속이라고 밝혀냈고, 새로운 모형에서는 '진짜 불연속 전이'가 나타난다고 하는 최근 연구들도 소개, 정리해주었습니다.

오후에는 동시에 4개씩 평행세션이 열렸는데, 기본 연결망과학(즉 일반적이거나 애매한 주제들 모음;;;), 생물학, 이동성, 경제, 사회연결망, 전염, 연결망에서 공동체찾기문제, 온라인연결망, 뇌, 의견동역학 등의 주제들로 나뉘어 열렸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물리학쪽보다는 사회과학자들의 발표를 듣고자 했습니다. 이 학회도 다양한 분야의 연결망연구자들 사이의 소통과 교류를 중요한 목적으로 삼지 않을까 합니다. 여전히 물리학자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전산이나 사회과학자들도 적지 않은 비중이었던 것 같네요. 그리고 여전히 생물쪽은 거리감이 있고요.

여튼 주로 이동성, 온라인연결망, 사회연결망 위주로 골라 들었습니다. 하나하나 다 소개하기엔 좀 길고요. 기억에 남는 것만 추려보면, '부정적 관계 연결망'에 관한 사회학자의 발표. 던바수 등을 비롯하여 긍정적 관계나 그 관계의 연결망에 관한 연구는 많았지만 서로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부정적 관계에 대해 실증연구를 했다는 점에서 호감이 갔습니다. 관련해서 포스터세션에서 카이스트 곽해운님의 트위터 언팔 동역학에 관한 내용도 재미있었습니다.

온라인연결망 세션에서는 역시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데이터를 이용하여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용자들의 패턴의 차이, 그들 사이의 연결관계 등이 발표되었는데 일단 미국 사례가 많다보니 저에겐 생소한 부분도 있고 그랬네요. 이외에도 BBC포럼에 달린 덧글 내용을 의미분석하여 긍정/중립/부정적 감정상태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들이 어떻게 뭉쳐서 나타나는지 등도 발표되었습니다. 또한 트위터를 이용해서 던바수를 증명했다는 발표도 있었고요.

전반적인 느낌은 너무 다양한 현상을 너무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다보니 초점을 잃기 쉬웠다는 것입니다. 사실 다양한 건 문제가 아니고;;; 어떤 현상을 다루건 간에 "왜 그런가?"를 묻고 그 질문에 답하려는 노력이 많지 않았다는 느낌. 주어진 현상을 분석하는 거야 물론 중요하지만 한두 단계 더 내려가서 '왜'를 생각해야 하겠죠. 그런 면에서 생물체의 모듈이 왜 생기는지를 묻고 답했던 알론의 연구가 모범이 된다고 봅니다.

사회과학자의 발표라고 해서 저런 갈증이 다 해소되지도 않는데요. 제가 잘 못알아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그러고보니 사회현상을 다룬다는 면에서 다들 사회과학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방법론 면에서는 사회과학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던 듯. 여기서 '방법론'이 꼭 기존의 틀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고, 결국 접근방식이나 방법론에 스며있는 철학의 측면...? 뭔 소리냐. 그게 아니더라도 뭔가 좀 새로운 관점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딱 이거다 싶은 느낌은 없었네요. 이러저러하게 <커넥션>을 계속 공부할 이유는 변함이 없네요.

학회의 마지막 발표는 바라바시가 연결망 제어에 관해 했습니다. 지난번 스톡홀름에서 들은 내용 그대로였지만 다시 한번 바라바시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역시나 아무나 따라할 수 있는 건 아닌 듯 합니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 순서로 연결망과학회(Network Science Society) 발족식(?)이 열렸습니다. 뭐 폭죽 터뜨리고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이런 학회를 만들기로 했고 조직은 어떻고 자원해서 일 도와줄 사람도 필요하다 등등.

청중의 의견을 듣는 자리에서 연결망 논문을 출판할 공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와서 잠시 논란이 있었습니다. 연결망은 독립된 분야가 아니므로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 그리고 기존 분야의 저널에 내면 된다는 의견부터 분야에 따라 논문출판 속도가 달라서 오래 기다려야 하는 분야도 있다는 의견 등등. 그날 밤에 동료랑 그 얘기를 하다가 제가 생각한 건 독립된 분야가 아니더라도 방법론으로서 한 분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연결망이론 적용을 중계하고 소개할 센터가 필요할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사실 물리학 쪽에서 접근하는 연결망이론은 웬만큼 소강상태인 것 같고, 다양한 분야로 적용되고 있는데 그 영역과 깊이가 확장되는 것 같고요. 하지만 역시 연결망이론이 기존의 각 분야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할 수 있는지는 회의적인 면이 있습니다. 다루는 현상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굳이 연결망분석을 하지 않더라도 어떤 부분이 문제고, 누가 힘이 세고, 어떤 단백질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모를 리가 없지요. 다만 연결망이론에서 개발된 개념들을 그런 정성적인 지식을 정량화해서 보여주고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는데 다양한 모형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상태의 연결망이론이 아주 혁신적인 이론을 만들어낸다든지 할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드네요. 제가 아는 게 물리학에 제한되어 있다보니 다른 분야에서 연결망이론의 가능성에 대해 몰라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주절주절 길게 썼네요. 막판에 정리도 잘 안되고요. 간간이 사진 찍은 것도 시간 나면 올리겠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한국사람들 덕분에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 보냈고, 1주일을 함께 한 동료 포닥과도 더 친해졌고, 헝가리 교수네 가서 가정식 저녁 얻어먹고 우니꿈(후식 술) 마시면서 공부에 대한 고민을 나눈 것도 좋은 기억으로 남을 듯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