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사회현상을 통계물리학으로 적절히 이해할 수 있나?"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수많은 미시적인 구성요소의 상호작용에 의해 복잡한 거시적 패턴이 나타난다는 면에서 사회현상은 물리현상과 닮은 데가 있다. 거시적 패턴은 흔히 시공간적으로 먼거리 상관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두꺼운 꼬리나 거듭제곱 분포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들은 종종 더 간단하게는 눈금잡기 지수나 거듭제곱 지수로 표현된다.

복잡계는 말 그대로 수많은 요인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눈금잡기/거듭제곱 지수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겨우 몇 개밖에 없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시스템이라고 해도 중요한 요인만 같다면 거시적으로는 매우 비슷한 패턴이 나타날 수 있고, 그래서 이를 보편성이라 부른다. 또한 중요한 요인들의 서로 다른 조합은 서로 다른 보편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보편성을 찾아내고 분류하는 일은 결국 복잡계의 거시적 패턴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중요한 요인과 그렇지 않은 요인을 구분해낼 수 있다면, 중요하지 않은 요인을 걸러냄으로써 이해하고자 하는 현상/시스템의 복잡도를 크게 낮출 수 있다. 이를 통해 미시적 요인과 거시적 패턴 사이의 관계, 즉 미시-거시 연결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이런 체계적인 연구를 다른 수준간 문제로 확장하거나 일반화할 수도 있다. 예전에 말했듯이 '수준간 환원'을 엄밀한 이론으로 다룰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론이 통계물리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방향성 있는 모래더미 모형을 연구하면서 한 요인의 중요성이 다른 요인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배웠다. 결정론적 무너지기 규칙이 있는 경우 아벨리안 대칭은 중요한 요인이 되지만 확률적 무너지기 규칙의 경우에는 아벨리안 대칭이 중요하지 않게 된다. 즉 하나의 요인이 다른 요인의 중요성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이런 요인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연구가 역시 중요하다.

이러한 통계물리학으로 사회현상을 이해할 수 있을까. 수많은 연구주제 중에서도 미시-거시 연결이 통계물리학을 적용하기에 적절한 분야라고 본다. 더구나 사회현상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시공간적 먼거리 상관과 두꺼운 꼬리/거듭제곱 분포를 미시-거시 연결의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사회물리학의 핵심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역시 누누히 얘기했듯이, 물질의 구성요소인 원자, 분자, 스핀에 대한 미시적 이해를 바탕으로 통계물리학이 성공할 수 있었다면, 사회의 구성요소인 사람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에만 사회물리학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회적 원자'에 대한 공부가 우선되어야 하며, 경제학, 심리학, 인지과학, 뇌과학 등의 연구성과 위에서 사회물리학이 연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최근 인간행동에 관한 엄청난 데이터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이를 통해 인간행동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미시-거시 연결을 이해하는 실마리도 얻을 수 있다. 

이래저래 새로운 기회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데, 이를 어떻게 잘 이용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나는 어떤 예상을 하는데 서툴지만, 우리 분야가 점차 내가 말한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