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제출한지 8개월만에 논문이 출판되었다. 간단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보려고 한다.



이 논문은 바라바시의 우선권기다림모형을 변형한 모형을 연구한 결과다. 바라바시의 모형에서 일목록의 각 일에 매겨진 우선권은 랜덤한 값으로 주어지며, 그 값은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 상수였다. 우리는 이게 시간에 따라 변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하는 질문을 해보았다. 그래서 다양한 규칙을 적용해보고 컴퓨터로 돌려보고 수식으로도 풀어보려고 하다가 중단한 게 2010년 12월 쯤.


바라바시 모형을 정확히 수식으로 푼 결과가 이미 있는데 우선권이 시간에 따라 변한다는 가정을 넣으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그래서 일단 모형을 더 간단하게 만들었고, 시늉내기 결과만으로라도 논문을 쓰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작년 8월 어느날 문득 어림을 해서 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성공했다. 마침 공동연구자가 우리 모형을 적용해볼 수 있는 데이터가 있어서 그 결과를 포함하여 논문을 완성했고 9월 말에 제출했다.


지난번 심사위원이 우리 이전 논문에 대해 nonsense라고 한 이후로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랬는데, 이 논문에 대해서도 모욕적인 표현을 들어야 했다. 이번 심사위원을 A라고 하자. A는 우리 연구를 "나쁜 과학"이라고 했다. 우리의 데이터 분석이 미진한 건 사실이었고 그래서 데이터 분석이 원래 1쪽 분량이었는데 출판된 논문에서는 약 2.5쪽으로 늘어났다. 그만큼 A를 포함한 심사위원들의 비판을 인정하고 논문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문제는 "나쁜 과학"이라는 표현과 그 밑에 깔려 있는 A의 오만함이다. 표현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오만함이 드러나는 문장을 옮겨보겠다.


"아마랄과 공동연구자들은 그들의 PNAS와 사이언스 논문들을 통해 우선권기다림(모형)이 바라바시와 공동연구자들이 분석한 이메일 및 서신데이터를 설명할 수 없음을 보였다(demonstrated)."


참고로 아마랄, 바라바시 모두 물리학자이고 분야를 이끄는 학제간 연구를 많이 하지만, 내가 보기에 둘 다 인간과 사회현상에 대해 얼마나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야 그렇다치더라도, 아마랄이 제시한 비균질 뿌아송 과정이 바라바시의 우선권기다림모형을 배제해버릴 정도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아마랄은 바라바시와는 다른 측면을 보았고 바라바시 모형과는 '다른 모형'을 제시했을 뿐이다. 심사위원 A가 위에 옮긴대로 "~을 설명할 수 없음을 보였다."라고 말하려면 아마랄이 다른 모형을 제시함으로써가 아니라 바라바시 모형의 전제나 과정이 틀렸음을 보여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다. (사건사이시간 분포가 거듭제곱 꼴이냐 로그정규 꼴이냐 하는 문제가 또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내 글을 참고.)


무엇보다 인간과 사회현상은 사회과학의 오래된 연구주제이며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은데 저런 식으로 단정해서 말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 연구의 데이터 분석이 맘에 들지 않은 건 인정하지만 우리의 모형 연구를 깎아내리기 위해 저런 비난을 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 심사결과를 받은 날 밤에 모욕적인 표현에 마음이 상하고 억울해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A는 우리가 수정한 논문을 끝내 인정하지 않았지만, 다른 심사위원들은 출판에 호의적이어서 결과적으로 이렇게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