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메모장을 가끔 쓴다. 종이와 펜이 없는데 뭔가를 기록해야 할 때 그렇다. 작년 10월 19일에 핸드폰에 저장해놓은 내용은 '직관과 국소적 최저점'이다. 연역적인 방법으로 논리전개를 하는 방법은 확실하기는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막다른 골목에 처했을 때 그것을 빠져나갈 방법을 제시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직관을 따르면 사고의 점프를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틀릴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지지만 짧은 시간 안에 완전하지는 않지만 가능한 해답을 제시할 수도 있고 연역적인 방법에 의해 막다른 골목에 처한 경우에도 그 장벽을 뛰어넘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최고의 직관은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최적(global optimum)의 해로 점프하는 경우다. 그보다 성능(?)이 덜한 경우는 국소적 최적(local optimum)으로 점프하지만 그곳에 갇혀버릴 때이다.

생물의 진화에서 성(sex)에 의한 두 개체의 유전자 조합이 무작위적인 변이보다 최적에 다다르는데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들은 것 같다. 한 세대 동안 변이가 일어나봐야 얼마 안되겠지만 서로 다른 두 개체의 유전자가 반반씩 섞인다면 변이에 비해 꽤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직관에 의한 사고의 점프는 마치 교차에 의한 유전자 조합에 비유될 수 있다.

Rokea님의 직관에 관한 글을 보니 이 글이 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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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6월 9일 오후 3시 56분 덧붙임.

베른하르트 리만은 다분히 직관적인 수학자였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수학자들은 대체로 두 가지 성향을 갖고 있다. 논리적 성향과 직관적 성향이 바로 그것이다. 훌륭한 수학자들은 두 가지 성향을 다 갖고 있지만, 흔히 둘 중 한쪽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곤 한다. 극단적으로 논리적인 수학자로는 19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독일의 카를 바이어슈트라스(1815-1897)를 들 수 있다. 그가 펼치는 모든 논리는 이전 단계에서 확보된 증명을 토대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의 논문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암벽등반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푸앵카레의 주장에 의하면 바이어슈트라스가 쓴 책에는 다이어그램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는 단 한 번의 예외가 있긴 했지만, 엄밀한 논리와 철저한 증명, 그리고 직관에 호소하지 않는 그의 단호함은 논리적인 수학자의 표상이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리만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수학자였다. 바이어슈트라스가 철저한 논리로 모든 단계를 거쳐 가는 암벽등반가였다면, 리만은 확신에 찬 믿음으로 자신의 몸을 허공에 내던지는 곡예사에 가까웠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곡예사의 아찔한 묘기에 가슴을 졸이지만, 이 못 말리는 수학의 곡예사는 허공의 정점에 도달할 때마다 자신의 몸을 받아 줄 도구를 기적같이 찾아내곤 했다. 리만은 뛰어난 상상력을 동원하여 중간 과정보다 결과를 먼저 볼 수 있었고, 우아하면서도 유용한 결과가 일단 그의 시야에 들어오면 그쪽으로 주저 없이 파고들었다. 그는 철학과 물리학에도 조예가 깊었기에, 신체 감각이 흐르는 과정과 감각이 하나의 개념으로 재구성되는 과정, 축전기에 흐르는 전류, 액체와 기체의 운동 등은 그가 알고 있는 수학 세계의 저변에서 수시로 그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 존 더비셔, <리만 가설> 210-211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