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을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일 하기도 바쁘고 놀기도 바쁘다고 할 수 있다. 그 와중에 짬을 내어 끄적거리려고 한다.


유럽연합은 10년 동안 10억유로를 투자할 대규모 학술사업(?) 선정을 진행하고 있다. 최종심사에 오른 4가지 사업중 하나가 FuturICT(편의상 '미래사업'이라고 부르자;;)다. 복잡계 연구자들이 중심이 된 이 사업은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한 지구적 신경망을 갖추어 여기서 얻어진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각종 사회경제생태문제에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미래사업이 최종심사에서 떨어질 거라는 얘기가 미래사업으로부터 흘러나왔고(홈페이지 및 페이스북에 공지됨) 사실로 굳어졌다. 공식발표는 다음주 월요일에 발표될 예정이란다[워싱턴포스트지 기사].


미래사업은 왜 떨어졌을까? 최종심사에 오른 나머지 세 가지는 그래핀 연구, 개인건강관리를 위한 디지털기술통합 연구(간단히 요약이 안됨), 인간뇌 전산실험이다. 나는 인간뇌 전산실험에는 회의적이므로, 일단 그래핀과 디지털건강관리만 봐도 미래사업보다는 구체적이고 사회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에 반해 미래사업은 취지는 좋지만 여전히 추상적이고 뜬구름 잡는다는 느낌이 든다.


지구화 또는 세계화가 빨라지면서 세계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또한 전지구적 경제위기, 생태위기 등으로 인해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복잡한 문제인만큼 이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틀로 바라봐야 한다는 면에서 복잡계 연구와 그 성과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취지가 좋다는 건 이런 측면이다. 하지만 복잡계 연구는 얼마나 쓸모가 있을까?


사람들이 이런 대규모 투자로부터 바라는 건 사실 현상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보다는 이해를 했든 못했든 위기를 피하고 더 나아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능력일테다. 특히 '예측'이라고 한다면 더 와닿을지 모르겠다. 복잡계 연구의 문제는... 복잡하다는 데 있다. 혼돈이론의 핵심명제인 "초기 조건에 민감한 반응"을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예측을 하더라도 대개 오차범위가 엄청나게 크다. 이게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겠는가. 어려운 복잡계 연구보다 경험에 기반한 직관에 의존하는 게 더 낫고 더 경제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견지명이 있는 착하고 선하면서 진정성이 있는 지도자를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여간 지금 우리 앞에 닥친 다양한 사회경제생태문제를 해결하는데 뭐가 더 효율적인 방법이냐고 묻는다면, 수퍼컴을 열심히 돌려서 얻은 결과일까? 지금의 사회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개선하면 되고, 제도는 문제 없는데 운영자가 문제라면 더 나은 사람으로 바꾸면 되고, 제도 자체보다는 기술적 한계로 인한 문제의 경우는 그 부족한 기술을 개발하여 해결할 수 있다. 굳이 수퍼컴을 돌려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미래사업은 사실 저런 기존의 문제해결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거라고 볼 수도 있다. 거꾸로 말해서 기존 방식으로 웬만큼 굴러가고 있다면 굳이 미래사업이 필요없어진다. 미래사업이 떨어진 것도 사람들의 이런 의문을 속시원하게 풀어줄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면 좋지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거다.


만일 미래사업뿐 아니라 그 분야의 연구가 굉장히 성공적이라고 해보자.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회문제조차 수퍼컴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즉 사회의 조정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수퍼컴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될지도 모른다. 실질적으로는 수퍼컴을 운영하는 과학기술자들이 권력을 갖는 기술관료의 세상이 될지도... 농담으로 한 말인데, 물론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그런데 저런 기술관료의 세상이 <파운데이션>의 꿈(?) 아니었던가? 사람들의 민주적 선택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고 파운데이션 구성원들의 계산에 따라서만 발전경로가 정해진 은하제국. 그래서 더더욱 나우시카의 결단을 눈여겨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정리하자. 미래사업이 최종적으로 떨어진다면 나도 아쉽다.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덕분에 이 글에 쓴대로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