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제로님께서 덧글로 질문하신 것에 답하려다보니 "나는 왜 이 분야를 선택했나"를 먼저 생각해봐야할 것 같아서 이렇게 글을 쓴다. 이는 '내 인생의 연구계획서'를 쓴다면 가장 먼저 생각해봐야할 질문이기도 하다.


대학에서 전공을 물리학으로 선택했을 때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나 목표가 없었다. 걍 남들 하는대로 하다보면 어떻게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이 컸다. 그래서 아직도 이렇게 헤매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숨) 물론 물리학을 재미있어 했고 공부에 자신감도 있었다.


물리학과 사람들이 농담삼아 했던 말이 '학생 수 반감기'라는 것이다. 한 학기가 지날 때마다 학생 수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말이다. 전공을 제대로 배우기 이전에 물리학에 대해 가졌던 환상이 깨지면서 또는 다른 이유들로 인해 전과를 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렇게 잘 모른 상태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기에 적어도 한 번은 환상이 깨지게 된다.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럼에도 계속 할 거냐 아니냐.


같은 학교의 대학원에 지원을 하면서 지원동기(?)를 써서 내야했다. 별로 쓸 말이 없어서;;; 한 다섯줄 정도 써냈다가 면접에서 한 소리 들었다. 물리학이 오래된 분야이다보니 배워야할 게 많아서 대학 수업만으로는 부족하다...라는 건 사실 핑계고, 물리학이 재미있다는 것 외에 별 생각이 없었다. 동시에 나는 공부가 내 길이 맞는지 계속 회의했다.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대학에 왔고 세상은 훨씬 넓고 복잡하다는 걸 알고 나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은 많이 했지만 정작 어떤 결론을 내린다거나 행동에 옮길 수 없었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태도가 언제나처럼 크게 작용했다.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없었는데 그건 또 그대로 나 자신의 일부다.


시간은 흘렀고 학위를 받기 위해 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나서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그건 내 삶에 대한 고민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그냥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을 뿐. 무엇보다도 그런 고민이 적절한 고민이었나, 구체적인 현실을 회피하기 위한 추상적인 놀음에 불과한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나의 문제를 잘 정의한 후 수학적 연역을 통해 답을 제시한 후 그에 따라 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작업을 정말 제대로, 철저하게 했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잘 될 리가 없다;;; 뭔가 늘 어정쩡한 느낌이 드는 건 바로 이런 괴리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덕분에 조금은 남다른 시각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 철저하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하려고 했던 건 사실이고 그 역시 나 자신의 일부다.


얘기가 길어져서 다음 글에 이어서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