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에서 어떤 분(아이디를 밝혀도 되는지 아닌지 몰라서 일단 익명처리;;;)이 경제학에서 에르고딕 가설에 관한 질문을 하셨다. 경제학에서 에르고딕 가설을 논의한다는 게 신기해서 그 분이 알려주신 블로그 글뉴스 기사를 읽어봤는데, 기대효용이론에 관한 문제 제기와 얽혀있는 흥미로운 주제였다. 그 분이 알려주신 관련 논문을 방금 대충 봤는데 이 얘기를 먼저 해볼까 한다. 폴 데이비슨이 <브라질리안 저널 오브 폴리티컬 이코노미>에 2009년에 낸 "미래의 시스템 금융위험은 정량화될 수 있는가? 에르고딕 대 비에르고딕 확률과정들"이라는 제목이다. 일부 문장을 먼저 한국어로 옮겨보겠다. 


"경제학이 물리학이나 천문학 같은 "딱딱한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에르고딕 가정이 경제학자들의 모형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고 논의한다. ...


... 고전적 에르고딕 공리에 의해 경제학자들은 과거와 현재 시장데이터로부터 계산된 확률이 미래에 관한 믿을만한 보험 통계 지식을 제공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미래는 단지 확률적으로 위험할 뿐 불확실하지는 않다.


경제가 에르고딕 확률과정에 따른다는 가정은 경제의 미래 경로가 이미 결정되어 있고 오늘의 인간행동에 의해 변할 수 없음을 뜻한다. 천문학자들은 태양을 도는 행성의 미래 경로와 지구를 도는 달의 미래 경로가 빅뱅의 순간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중략) 이 "빅뱅" 천문이론은 천문학이라는 "딱딱한 과학"이 에르고딕 공리 위에 있다는 걸 뜻한다. ..." (328-329쪽)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지 모를 정도로 좀 막막한데;;; 우선 천문학이 행성의 운동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과 에르고딕 성질은 상관이 없다. 적어도 에르고딕 성질에 대해, 측정량의 시간평균과 앙상블평균이 같다는 통계물리학의 정의를 따르자면 말이다. 행성의 운동은 고전역학에 상대론 정도로 이해될 수 있지 통계물리의 연구대상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예측의 정확성이 에르고딕 성질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냥 고전역학이 잘 맞는 거다.


경제현상은 행성의 운동과 매우 다른 현상이며 복잡계라는 뜻에서 통계물리학의 방법론이 적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에르고딕 성질을 논의하는 게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위의 두번째 문단을 보면, 과거의 통계로부터 얻어진 확률분포가 미래에도 적용될 거라는 가정을 '에르고딕 공리'(가정/가설/성질도 아니고 공리라니;;;)라 부르는 것 같다.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에르고딕 성질이 그렇게 해석될 여지도 있어 보인다. 확률분포가 시간에 따라 일정하지 않으면 시간평균과 앙상블평균을 비교할 이유가 없으니까.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해도, 위 마지막 문단에서 "미래 경로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해석은 한참 멀리 나간 얘기로 보인다.


통계물리의 에르고딕 성질을 다시 살펴보자. 시스템이 가질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상태의 집합으로 정의되는 상태공간이 먼저 나온다. 그 중 한 상태에서 시작한 시스템은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상태로 바뀌었다가 또 다른 상태로 바뀌어간다. 일반적으로 시스템이 어떤 상태에 있을 확률을 말할 수 있는데, 애초에 상태공간이 엄청나게 큰 경우에는 이 확률을 경험적으로 얻기 힘든 경우도 있겠다. 이를테면 '미시정준 앙상블'로 불리는 가정은 각 상태에 있을 확률이 모두 똑같다고 가정한다. '정준 앙상블'은 온도라는 외부변수가 주어지고 이 확률들은 그 온도에 따라 변하는 식이다. 이 확률들로 구성된 확률분포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 시스템을 충분히 오래 따라가면서 얻은 분포와 잘 맞으면 에르고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시스템이 에르고딕한지 하지 않은지에 관해 더 엄밀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얘기들이 있는데, 이중 한 측면만 떼어다가 말하는 건 조심스러워야 한다. 더구나 행성의 운동과 같은 부적절한 예는 좀... 물론 나도 경제학에서 이런 논의가 얼마나 엄밀하게 이루어지는지 모르고 그냥 논문 하나 대충 읽고 쓰는 것임을 인정한다;;;


어쨌든 과거의 통계로부터 얻어진 확률분포가 미래에도 적용되냐 아니냐는 걍 그대로 논의하면 되는 문제이지 에르고딕/비에르고딕이라는 말을 붙여서 괜히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대효용과 관련해서 한마디 덧붙이면, 확률분포가 주어져 있다면 그걸로 효용의 기대값을 구하는 게 최선이 아닌가 한다. 확률분포조차 주어지지 않은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고. 확률분포가 시간에 따라 변한다면 매 순간 자신의 경험을 총동원해서 최선의 확률분포를 만들고 또 그걸로 기대효용을 구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이 문제는 다시 얘기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