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05/22


존 홀런드가 1995년에 썼고 우리나라에는 2001년 번역되어 나온 <숨겨진 질서>를 보았다. 홀런드는 현재 미시간대학교의 심리학과, 전기공학및컴퓨터과학과 교수다. 책의 부제는 '복잡계는 어떻게 진화하는가'이며 복잡적응계(complex adaptive system; CAS)를 모형화하는데 필요한 여러가지 요소들을 소개하고 이들을 바탕으로 에코(echo)라 불리는 복잡계 모형을 제시하는 것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CAS의 일곱 가지 기본 요소는 네 가지 속성과 세 가지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진다. 


1. 속성


1) 집단화: 여러 개체들이 모여 집합체를 이루는 것을 가리킨다. 개체들을 비슷한 속성에 따라 분류하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 단순한 행위자들이 복잡한 대규모 행동을 만들어내는 창발(emergence; 발현이라고도 한다)을 뜻하기도 한다.


2) 비선형성: 말그대로 출력이 입력과 선형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말과도 연결되지 않을까 싶다. 책에서는 생물의 개체수에 관한 운동방정식 모형인 로트카-볼테라 모형과 비슷한 수식을 전개하며 비선형성을 설명하고 있다.


3) 흐름: 원료공급자, 수송업자, 생산자와 같은 여러 행위자들 사이의 원료 및 현금의 흐름이 복잡계를 이해하는 열쇠 중의 하나임을 얘기하고 있다. 흐름의 그물망을 통해 효과가 전달되면서 나타나는 승수 효과(multiplier effect)와 자원을 재활용함으로써 생기는 재순환 효과(recycling effect)를 설명한다. 


4) 다양성: 생태계에서 하나의 종이 사라지면 비슷한 종이 새로 생겨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수렴 효과라든지 새들이 맛이 쓴 제왕나비를 잡아먹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외모는 비슷하지만 쓴맛이 나지 않는 부왕나비가 생겨난다는 의태를 예로 들며 다양성의 증가를 얘기한다.


2. 메커니즘


1) 꼬리표 달기: 집단화와 경계 형성의 메커니즘으로 제시될 수 있는 것으로 꼬리표 달기가 있다. 특정한 꼬리표를 달고 있는 것들만이 선택적으로 상호작용하게 한다고 하면 꼬리표에 따른 집단이 형성되고 이로부터 계층적 조직화가 나타나게 할 수도 있다. 


2) 내부 모형: 행위자들은 어떻게 환경 변화를 예측하고 행동하는가. 외부의 패턴을 인식하고 이로부터 내부 구조를 변화시킴으로써 비슷한 패턴을 다시 만났을 때 적절한 반응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이를 내부 모형이라고 한다. 비교적 단순한 생명체들은 묵시적 내부 모형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고 더 복잡한 생명체들은 명시적 내부 모형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 구성 단위: 행위자는 복잡한 상황에서도 적절한 반응을 해낼 수가 있는데 그것은 복잡한 상황을 익숙한 부분들로 분해하여 인식하는 것이다. 익숙한 부분들은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구성 단위가 된다. 새로운 상황을 경험에 의해 갖고 있는 구성 단위들의 조합으로 이해함으로써 무수히 많은 새로운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일곱 가지 속성을 바탕으로 적응성 행위자(adaptive agent)를 모형화하고 이 행위자들이 또한 상호작용하는 생태계인 에코(echo)를 모형화한다. 각 행위자는 수행 체계, 신뢰도 평가, 규칙 발견으로 묘사될 수 있다.


행위자는 외부 자극에 반응한다. 이 자극-반응은 '날아다니는 물체가 있으면 도망간다'와 같은 (p이면 q이다와 같은) 규칙이 된다. 행위자 내부에는 많은 규칙이 있는데 그 중 일부는 관찰로부터 일정한 메시지를 만들어내고 일부는 내부의 메시지를 처리하기고 또 다른 일부는 이 메시지로 특정한 행동을 유발한다. 이를 그 행위자의 수행 체계라고 한다.


수행 체계에 학습과 적응이라는 개념을 포함시켜야 하는데 이는 각 규칙에 점수를 매기고 규칙에 의한 결과가 성공할수록 그 규칙의 점수를 높임으로써 이루어진다. 이것이 신뢰도 평가다. 하지만 행위자가 갖고 있는 모든 규칙이 골고루 평가되지는 않는다. 일반적인 규칙일수록 판단할 기회가 많아지며 세부적인 규칙일수록 판단의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규칙 발견을 통한 적응이다. 신뢰도 평가를 통해 점수가 낮은 규칙은 점차 사라지고 새로운 규칙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점수가 높은 규칙들을 교차(crossing over)함으로써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교차를 (내 맘대로) 김밥으로 설명해보겠다. 참치깁밥 한 줄과 야채김밥 한 줄을 각각 10개의 조각으로 자르는데 각 조각에 1번부터 10번까지 이름을 붙인다. 아무 숫자나 골라서 7이 나왔다고 하자. 참치김밥 7-10번 조각과 야채김밥 7-10번 김밥의 위치를 바꾸면 새로운 조합의 김밥 두 줄이 탄생하는데 이러한 과정이 유전자 배열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교차라고 한다. 교차뿐만 아니라 돌연변이 등도 고려하여 새로운 규칙을 찾아낼 수 있다.


책이 뒤로 갈수록 모형이 정교화되는만큼 더 복잡해지다보니 책의 부제처럼 모형이 복잡하게 진화되는 것 같기는 한데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0과 1로 이루어진 문자열이 메시지가 되고 규칙의 주요한 구성 단위가 되고 이러한 염색체에 꼬리표를 달고 이러저러한 속성을 도입하면서 도시 형성이나 수정란으로부터 발생의 과정과 같은 CAS를 일반적으로 모형화할 수 있다고 한다. 전체적인 그림을 제대로 그려보려면 책의 뒷부분을 다시 곱씹어가며 읽어야 할 것 같다. 


글쓴이는 이러한 연구를 이론과 실험의 중간지점이라고 하는데, 컴퓨터 시늉내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보통 수학 방정식을 풀어내는 이론도 아니고 실제 자연대상을 관찰하는 실험도 아니지만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어떠한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으로서 나름의 역할과 존재이유를 갖는다. 


뭔가 텁텁하다. 뭘까. 실은 발현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없을까라는 기대도 있었는데 잘 못찾겠다. 홀런드의 다른 책인 <Emergence: From Chaos To Order>도 연구실에 있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봐야지.하고 밀어놓는다. 일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