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밤 11시 15분부터 약 50분 동안 방송된 SBS 스페셜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편을 보았다. 이 제목은 마크 뷰캐넌의 책 <Ubiquity>의 부제이자 한국어 번역판 제목인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방송의 처음부터 끝까지 주요 출연자가 마크 뷰캐넌이고 그의 다른 책들 즉 <넥서스>, <사회적 원자>, <내일의 경제> 등도 언급된다.


한마디로 세상의 다양한 현상들을 꿰뚫는 비교적 간단한 원리가 있으며 그걸 물리학의 한 가지인 자기조직화임계성(SOC)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다양한 현상에는 전쟁, 주식시장, 도시, 지진, 산불, 연결망, 모래더미 등이 포함된다. 이 예들의 공통점은, 이를테면 전쟁에서 사망자의 분포, 주식시장에서 주가변동폭의 분포, 도시의 크기의 분포, 지진 크기의 분포, 산불 크기의 분포, 연결망에서 각 노드의 이웃수의 분포, 모래더미에서 모래 한 알로 인한 모래사태 크기의 분포 등이 모두 거듭제곱 분포(또는 멱함수)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분포가 완전히 똑같은 모양은 아니고, 형태만 거듭제곱 꼴인데, 거듭제곱 지수는 경우에 따라 다르다. 방송에서는 '멱함수'를 언급하고 이게 어떤 모양인지 보여주는데 사실 이 개념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바로 받아들이기에는 좀 어렵다. 그래서 나름 이 개념을 쉽게 풀어 설명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뷰캐넌이 방송에서 말한 '임계숫자'를 다시 풀어보자. 방송에 나온 예는 아니지만, 미국 부자들의 재산 분포도 거듭제곱 분포인데, 100억 달러를 가진 사람이 1명이라고 하면, 그 절반인 50억 달러를 가진 사람은 4명, 그 절반인 25억 달러를 가진 사람은 16명...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재산을 반으로 줄일 때마다 그 재산을 가진 사람수가 몇배 늘어나느냐를 '임계숫자'로 부른다. 일반적으로 거듭제곱 분포는 P(x) ~ x^(-a) 로 표현되므로 임계숫자는 2^a가 된다. 앞의 예에서는 미국 부자들의 재산 분포의 경우 a=2이라는 결과를 이용한 것이다. 


이걸 처음부터 수식을 들이대면 쉽게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임계숫자'를 이용함으로써 좀더 알기 쉽게 한 것 같기는한데, 그럼에도 이게 대체 뭘 말하는 건지 배경지식이 없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일 것 같다. 더구나 여러 실제 데이터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중요한 전제를 명시하지 않고 분포의 '변형된 형태'가 '직선 모양'이라는 것만 강조함으로써 원래 거듭제곱 분포가 '직선 모양'이라는 오해를 사기에도 충분하다는 문제가 있다;;;


휴... 이런 공통된 발견을 방송에서는 그냥 '패턴'이라고 하는데 그 다음 문제는 왜 이런 비슷한 함수형태가 다양한 현상에서 나타나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임계성'이 뭔지 설명을 시도하기는 하는데, 이것도 영 애매하게 제시했다. 통계물리학에서는 임계상태에서 다양한 물리량들이 거듭제곱 분포를 따른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지만, 거듭제곱 분포가 나타난다고 다 임계상태는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걸 임계상태로 해석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렇든 아니든 임계상태에서는 작은 변화가 커다란 변화를 촉발하기도 하는 '불안정성'이 곳곳에 퍼져 있으며 그래서 그 근본 메커니즘을 바꾸지 않는 이상 커다란 사건들이 언젠가 또 나타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데 크게 강조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좀 삐딱하게 계속 나가자면, 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미 위에 나열한 많은 현상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고 그래서 이런 과감한 표현도 나올 수 있었겠지만, 사실 각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현상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저런 식으로 퉁치고 넘어가는 게 오히려 비과학적인 태도일 수 있다.


여기까지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