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척도 없는 연결망에 관한 논란이 있었고 이를 정리한 글이 Quanta Magazine에 실렸다. 이 글을 거칠게 번역해봤는데 중간에 빼먹은 내용도 좀 있지만 대충 어떤 얘기들이 있었는지는 알 수 있도록 노력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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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온라인에 올라온 논문이 현대 연결망 과학의 가장 오래되고도 놀랄 만한 주장에 대한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그 주장은 현실 세계의 대부분의 연결망이 척도 없는(scale-free) 성질을 갖는다는 것이다. 즉 노드의 이웃수의 분포가 거듭제곱 꼴(power law)을 보이며 거듭제곱 꼴에는 특정한 규모가 없다는 말이다.


완전하게 랜덤한 연결망은 거듭제곱 법칙을 따르지 않기에, 1990년대 후반에 척도 없는 연결망의 주창자들은 이러한 특징을 다양한 연결망의 보편적인 조직원리가 있다는 증거로 보았다. 지난 20년 동안 척도 없는 실제 연결망에 관한 수많은 논문이 쏟아져 나왔고 2002년 알버트-라즐로 바라바시는 [링크]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그 책에서 그는 거듭제곱 법칙은 복잡한 연결망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다른 연구자들은 척도 없는 성질이 만연한지 또한 그 패러다임이 특정한 연결망의 구조를 밝히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질문해왔다. 이번 새 논문은 척도 없는 성질을 갖는 실제 연결망은 많지 않다는 것을 보고했다. 생물, 사회과학, 기술 등의 분야에서 얻어진 약 1000개의 연결망을 통계적으로 분석한 결과 그 중 겨우 4%만이 엄격한 검증을 통과한다는 것을 보였다. 다른 67%의 연결망에 대해서는 그들이 거듭제곱 법칙을 따른다는 가능성이 기각됐다. 이 연구는 콜로라도대학교의 브로이도와 클로짓이 수행했다.


연결망과학자들은 논문의 분석이 통계적으로 옳다는데 동의한다. 하지만 그 결과를 해석하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 척도 없음의 관점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게 이상적인 모형일 뿐 실제 현상을 정확히 잡아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척도 없는 연결망의 성질들이 정확히 거듭제곱 꼴을 따르지 않더라도 ‘두꺼운 꼬리를 갖는 연결망’에 대해서도 성립한다고 얘기한다.


비판자들은 ‘척도 없음’이나 ‘두꺼운 꼬리’ 같은 말들이 연결망과학 논문들에서 모호하고 일관되지 않게 쓰여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중심이 되는 주장들이 반증가능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완전히 규칙적인 격자나 완전히 랜덤한 그래프의 경우 이웃수의 분포는 특정한 규모(scale)를 갖는다. 이런 세상에서는 허브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거듭제곱 분포에는 그런 특정한 규모가 없어서 일부를 확대해도 전체와 비슷한 자기유사성 구조가 보인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노드는 이웃을 별로 갖지 않는 반면 엄청나게 많은 이웃을 갖는 허브들이 나타난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거듭제곱 법칙은 통계물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양한 물리현상에서 발견되는 상전이를 이해하기 위한 보편적 법칙뿐 아니라 통계물리를 휩쓴 프랙탈(fractal)과 자기조직화 임계성(SOC)이라는 두 패러다임의 핵심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1990년대 중반 통계물리학자들이 모든 곳에서 거듭제곱 법칙을 보고 있을 때 바라바시는 연결망으로 주의를 돌리고 있었다고 코넬대학교의 스트로가츠는 전한다. 그가 말하길 물리학에는 ‘거듭제곱 법칙 종교’가 있다.


바라바시는 1999년 [네이처], [사이언스] 등에 그들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거듭제곱 법칙이 WWW뿐 아니라 영화배우 연결망, 전력망 등의 구조를 기술한다고 썼다. [링크]에 따르면 대부분의 복잡한 연결망의 거듭제곱 지수는 2와 3 사이라고 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단순한 메커니즘으로 ‘선호적 연결’이 제시되었다. 빈익빈 부익부 효과처럼 이웃이 많은 노드가 새 이웃을 얻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 후로 척도 없는 연결망에 관한 수많은 논문이 나왔고 시류에 편승하는(bandwagon) 효과가 있었다고 포터는 말한다.


선호적 연결이 거듭제곱 법칙을 설명하는 유일한 메커니즘이 아니라는 비판은 처음부터 있었다. 같은 거듭제곱 지수를 갖는 연결망들이 매우 다른 구조를 가질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전력망, 신진대사 연결망 등이 정말 거듭제곱 분포를 따르는지 의심하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이외에도 거듭제곱 법칙이 있다고 주장하기 위한 통계적 방법이 엄밀하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분포를 로그-로그 규모로 그렸을 때 직선이 보이면 거듭제곱 꼴은 맞지만 그게 정말 직선인지 아닌지를 대충 눈으로만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반응으로, 연결망이 거듭제곱 법칙을 따른다고 주장하는대신 ‘두꺼운 꼬리’를 갖는 분포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그래서 ‘척도 없음’이 정말 뭘 뜻하는지에 대한 일관성이 사라져버린다. 클로짓의 연구그룹은 다양한 분야에서 약 4000개의 연결망을 모아 콜로라도 복잡연결망 색인(ICON)을 큐레이트했다. 그는 가설이 반증가능하도록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클로짓과 그의 대학원생은 ICON에서 약 1000개의 연결망에 대해 통계적 검정을 실시했고, 약 2/3에 대해 거듭제곱 분포일 가능성이 없다는 걸 발견했다. 그 연결망들의 경우 로그정규분포가 더 잘 맞기도 했다. 겨우 4%만이 거듭제곱 분포를 따른다.


클로짓의 발견이 많은 연결망이 척도 없음에 근거하고 있다는 생각을 깎아내리지 않는다고 바라바시는 여긴다. 실제 연결망에서는 선호적 연결 외에도 다른 과정들이 개입하여 순수하게 척도 없는 상황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이런 연구도 이미 많이 연구되었다고 한다. 베스피냐니는 현실의 지저분함 때문에 결코 완전한 거듭제곱 법칙을 볼 수는 없을 거라고 말한다. 바라바시는 중력에 대한 비유를 든다. 바위와 깃털을 자유낙하시킬 때 공기저항 효과를 모른다면 중력 법칙이 틀렸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클로짓은 이 비유가 믿을만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약 1000개의 다양한 물건을 떨어뜨리면 중력과 공기저항이 동시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더 명쾌하게 볼 수 있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약 1000개의 실제 연결망을 분석한 결과 그런 명쾌한 그림은 발견되지 않았다. 우세한 효과와 그렇지 않은 효과가 분명하게 구분되는 중력과는 달리 연결망에서는 단일한 우세효과가 없는 것 같다는 말이다.


베스피냐니는 척도 없는 연결망의 견고함과 취약함의 조합과 같은 다양한 특징들이 두꺼운 꼬리 연결망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에 중요한 건 그 메커니즘이지 정말 연결망이 정확히 척도 없는지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와츠는 척도 없음과 두꺼운 꼬리가 섞이면서 다양한 주장들을 평가하기 힘들게 되었다고 한다. 한때 척도 없음은 매우 명확한 의미를 가졌고 매우 많은 현상에 적용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모든 증거에 적용되는 것처럼 변해가고 있는데 이건 과학에 좋지 않다고 말한다. 포터는 우리가 이런 논쟁을 벌이는 건 문제가 어렵고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클로짓은 자신의 연구가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연결망과학자들에게 행동을 요구하는 것으로 본다. 즉 더 다양한 메커니즘과 더 다양한 연결망 분포를 조사하자는 것이다. 베스피냐니도 연결망에 관한 일반이론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