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가 넘게 계속된 학회 첫 날이 끝났다. 중간에 쉬는 시간과 식사 시간이 있다고 해도 빡센 일정이다. 오전은 모두 플레너리 세션이었고 오후는 포스터 세션으로 시작하여 패럴렐 세션이 2개가 있었다.

플레너리 세션에는 3개의 발표가 있었는데 J.P. Bouchaud의 유리 상전이(glass transition)에 관한 리뷰가 첫번째였다. 발음도 좋았고 발표도 깔끔했다. 발표가 끝나고 커피 브레이크 장소가 어디인지 찾으려다 말고 노트북 무선랜 이용번호를 받으러 다녀와서 정보이론의 Kullback-Leibler divergence로 유명한(내가 아는 건 이것밖에 없다;;) S. Leibler의 생물물리 연구에 관한 발표를 들었다.

작은 생물체들의 개체수 동역학에 관한 연구였는데 생명체가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는 자극에 대한 반응(sensing and responsing)이며 다른 하나는 다양화(diversification)이다. 이 두 가지 요인을 두 행렬의 합으로 나타내는데, 환경 변화가 느릴 때와 빠를 때 감각을 발달시키는데 필요한 비용에 따라 어떤 적응 방법이 더 효과적인가를 판단할 수 있다. 환경은 빠르게 변하는데 감각을 발달시키는 비용이 많아진다면 다양화하는 것이 더 적절한 방법이 된다. 마지막 슬라이드의 마지막 문장은 "Diversify. - E. Coli"라는 문장으로 끝나는데 멋졌다. 흥미로운 점은 환경 변화라는 노이즈에 적응하는 것을 정보이론의 엔트로피를 이용하여 기술하고 설명해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꽤나 젊어서 Kullback-Leibler divergence의 Leibler와 동명이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음으로는 데이터 압축에 관련된 알고리즘과 거기서 나타나는 상전이에 관한 연구가 A. Montanari에 의해 발표되었다.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은데 중간에 상전이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갑자기 흐름을 놓쳐서(나만 그런 게 아니었던 듯) 그 다음부터는 멍~했다.

점심을 먹으러 나왔는데 헤매다가 결국 행사장 가까운 곳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헤매고 온 동안 사람들이 꽉 차서 다들 피자 한 조각 또는 버거 하나 정도만 간단히 사서 배를 채워야 했다. 역시나 마지막 세션을 들을 때에는 배가 고팠다.

점심 시간이 1시간 30분이었어도 이래저래 금방 지나갔다. 어제밤에 포스터 세션으로 뭘 볼까하여 이것저것 번호를 체크해두었다. 그.러.나. 내가 관심을 갖고 있던 H-정리나 열역학 제2법칙 등에 관한 발표들이 거의 붙어있지 않거나 붙어 있는 경우에는 발표자가 자리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 와중에도 재미있는 발표를 몇 개 들을 수 있었다.

구경한 첫 포스터는 며칠 전 읽고 내 블로그에 올린 상전이의 위상 변화에 관한 내용을 쩔쩔매는 XY 모형(frustrated XY model)의 상전이에 응용한 연구였다.(F.A.N. Santos) 수식밖에 없는 논문의 내용을 어떤 식으로 적용한 것일까 궁금하여 찾아갔고 친절한 설명을 들었으나 XY 모형에 관한 기초지식이 부족하여 자세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위상 변화'를 노트북으로 동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하여 대충 감을 잡을 수는 있었다.

다음으로 M. Uchinami의 '생존에 관한 비크기 통계역학(Nonextensive Stat. Mech. in Survived Analysis)'을 들었다. Tsallis에 의해 시작된 비크기 통계역학을 이용한 연구인데 수식 전개는 알겠는데 이쪽 분야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인 물리적 의미가 무엇이냐에 대한 명쾌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작년 가을 일본에서 열린 경제물리학 학회에서 Tsallis에게 직접 물어보기도 했는데 '먼거리 상호작용'이라는 말만 들었다.

마지막으로 T. Ohkuma의 일반화된 랑제방 방정식의 요동 이론에 관한 연구를 들었다. Crooks는 요동 이론을 Markov 가정 위에서 증명했는데 이 분은 Markov 가정이 없는 비평형 과정에서도 요동 이론이 성립한다는 것을 보였고 일반화된 랑제방 방정식에 들어가는 기억 커널(memory kernel)의 두 가지 예제를 들었다. 그 커널 함수가 지수함수면 정상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데, 거듭제곱 꼴이면 그 지수에 따라 정상 상태가 없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고 한다.

포스터 세션이 끝나고 바로 패럴렐 세션이 시작되었고 나는 학제간 연구인 11A를 들으러 갔다. 예전에 교통이론을 공부하면서 이름을 알게 된 D. Chowdhury의 강연이 첫번째였다. 이 분을 여기서 보는구나 싶었는데 성격이 급하신건지 짧은 시간 안에 발표를 마치려고 하시는건지 말이 너무 빠르고 급했고, 또 생물적인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다 알 필요도 없어서 대충 기존의 교통모형을 단백질 필라멘트를 따라 움직이는 생물적 모터의 운동을 이해하는데 이용하겠다는 것만 알고는 자세히 듣지 않았다.

다음으로는 N.R. Moloney의 극단값 통계학(extreme value statistics)에 관한 발표를 들었는데 좀 알겠다 싶다가 말았다. 그리고 J. Davidsen의 지진 자료 분석에 관한 발표가 이어졌는데 아무런 인위적인 가정을 하지 않고도 분석하는 방법을 소개했는데 지진이 일어난 지점에 일렬 번호를 매기고 다음에 일어난 지진의 위치가 1번 위치에 가까워지는 것만 재귀한다(recurrence)고 하여 그것들 사이에 방향성 있는 연결망을 만들어서 그 연결망의 이웃수 분포를 보는 연구를 했다.

H. Meyer-Ortmanns는 사회적 균형(social balance) 연구가 컴퓨터 과학의 k-SAT 문제와 연관되며 두 분야의 각 주제들이 어떻게 대응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예전에 비슷한 발표를 들은 적이 있어서 다른 세션의 마지막 발표를 듣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세션 3A의 마지막 발표는 L. Laurson의 SOC에 관한 연구였다. SOC 시스템으로부터 나오는 시계열의 파워 스펙트럼은 1/f^α 꼴이고 사태의 크기와 사태의 지속시간 사이의 관계는 S ~ T^γ 로 나타난다. Jensen의 책 <SOC>에서 본 것 같은데 파워 스펙트럼이 시스템에 상관없이 Lorenzian일 것이라고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α = γ 라는 것이 강자성체의 노이즈에서 발견되었고 오늘 발표는 좀더 일반적인 SOC 시스템에 대해 위 식이 맞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특히 BTW 모형이나 Manna 모형에서 α 가 시스템의 차원에 따라 다른 값을 갖으며 또한 보편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커피 브레이크였는데 이번에는 잘 찾아가서 카푸치노 한 잔을 마시니 바로 다음 패럴렐 세션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세션 2A를 선택했다. D. Achlioptas는 제한조건이 있는 랜덤 SAT 문제를 평균장 스핀 유리(mean-field spin glass)로 이해할 수 있다는 내용을 시작으로 이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는 상전이와 관련 내용들을 발표했다.

S. Perez-Gaviro는 3차원 하이젠베르크 스핀 유리에서 나타나는 스핀 유리 상전이에 대한 발표를 했다. M Caselle은 경계면(interface)의 자유에너지를 끈이론으로 기술하는 연구를 발표했는데 이때부터 노트북을 꺼내 이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A.A. Fedorenko는 먼거리 상관이 있는 시스템을 범함수 RG(functional RG; FRG)를 이용하여 풀었는데 에어컨을 세게 틀어서 추워져서 긴팔 남방을 꺼내 입었다. D. Dhar는 주어진 평면을 면적이 1 * k 인 기다란 막대기로 채우는 문제를 풀었는데 막대기의 밀도에 따라 두 번의 상전이가 일어난다고 하는데 각각의 상들이 무엇인지 몰라서 인터넷을 뒤지다가 이 행사장에서는 접근 권한이 없어서 논문을 다운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D. Dhar도 SOC로 유명하신 분인데 직접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어느새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고, 숙소 근처의 단골(두 번 갔으니;;) 식당에서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치고 살짝 배웅을 나가주고 바로 숙소로 들어왔다. 방에서는 무선 인터넷이 잘 안되어서 숙소 식당에 내려왔는데 이곳도 모기가 살기는 사는구나;;; 어여 방에 들어가서 씻고 쉬어야겠다. 시차는 확실히 적응한 것 같다. 이제 곧 이곳 시각으로 새벽에 자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제노바에 마하트마 간디 동상이 있는 이유를 누구한테 물어보나. 네이버 지식인님은 아실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