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빡센 하루였다. 그래도 적응이 조금 되어서 편하게 지낸 것 같다. 오전에 패럴렐 세션 2개가 있었고 오후에 포스터 세션과 패럴렐 세션 2개가 있었다. 그리고 특별 세션으로 인권 세션(human rights session)이 있었다.

오전의 첫 패럴렐 세션은 학제간 연구분야인 세션 11B를 들었다. 주로 교통이론에 관한 주제들이었다. A. Benyoussef는 교통이론에 대한 리뷰를 하고 자신의 연구를 발표했는데 예전에 조금 공부한 게 있어서 리뷰 내용이 낯설지는 않았다. 그런데 말을 잘 못알아들어서 리뷰 내용에 들어간 그림만 보며 그런가보다 하는 동안 어느새 발표자의 연구내용이 이어지고 있었고 흐름을 놓쳐서 새로 안 내용이 없었다는... 다음으로 A. Cavagna는 한 무리의 새들이 포식자에게 쫓기면서도 잘 조직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동영상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3차원 공간에서 새들이 무리지어 나는 모습에 관한 연구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오늘 새로 안 내용은 새들이 자기 주변의 7마리까지 상호작용의 범위로 인식한다는 것이었다. 물리적인 거리보다 몇 마리냐가 중요한 요인임이 밝혀졌다고 한다. 그리고 시뮬레이션 결과 그 경우에 살아날 확률이 더 높으며 이는 진화론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첫 동영상이 인상적이었고 발표도 깔끔했다.

A. Schadschneider는 역시 교통이론 연구로 유명한 사람이다. 오늘은 개미들이 줄지어가는 모습을 촬영하여 분석한 연구를 발표했다. 주요한 결론은 개미들이 추월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 보통 도로 위의 자동차 밀도가 높아지면 교통 체증이 생겨 흐름이 줄어드는데 개미의 경우 개미들의 밀도가 높아져도 체증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이유를 간단히 설명하려고 한 것 같기는 한데 내가 기억이 안나고, 생각해보면, 체증이 생기면 흐름이 줄어들어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되어 그 개미들은 적응하지 못해서 사라진 것이 아닐까 하는... 동어반복 같은 얘기가 되어버렸다.

S. Rambaldi는 볼로냐 시의 자동차에 달린 GPS 결과를 분석한 연구를 발표했다. 자동차가 시동을 켜면 GPS가 켜지고 시동을 끄면 GPS가 꺼진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이 차가 어디를 지나갔는지 시각과 위치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시동을 켜고 움직인 후 시동을 끌 때까지 움직인 거리에 관한 통계적인 분포를 보여주는데 지수함수 분포가 나왔고 대략 4 km를 움직인다고 한다. 이 지수함수 분포의 특징은 다른 도시에서도 나타난다고 한다. M.M. Telo Da Gama는 SIR 전염병 확산모형에서 시간에 따른 감염자의 비율이 병의 회복률이 매우 낮은 경우 주기적인 행동을 보이는데 이 시계열을 파워 스펙트럼으로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두번째 패럴렐 세션 중에서는 비평형시스템 분야인 세션 3B를 들었다. A. Bray는 2차원 상전이 모형에서 영역 성장(domain growth)에 대해 정확히 풀었다. 임계온도보다 낮은 온도에서는 랜덤한 상태에서 시작하여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스핀의 영역이 나타나고 이 영역이 점점 커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개중에는 속이 빈 껍질 모양(hull)도 있는데 이들의 개수에 관한 분포에 관한 일반적인 꼴을 구할 수 있고 관련된 보편적인 상수도 구할 수 있다. J.M. Kosterlitz가 그 다음 발표를 하는 동안은 푹 잘 잤다. A. Sicilia는 2차원에서 영역 성장의 모양에 관한 통계적인 분석을 보여주었다. Bray의 발표와 이어지는 것으로서 영역의 둘레 길이와 영역의 넓이 사이에 거듭제곱 꼴의 관계가 있고 넓이 분포를 아니까 둘레 분포도 구해낼 수 있고 이를 보여준다.

D.P. Landau는 2차원 압축가능한 이징 모형에서 영역 성장을 Monte-Carlo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를 발표했다. 압축가능하다는 것은 격자 위의 각 스핀이 정해진 자리로부터 조금 벗어날 수 있게 하여 주변 스핀들과의 위치가 불규칙하게 되는데 이러한 효과를 고려했을 때 기존에 보편적이라고 알려진 동역학적 지수(dynamic exponent)가 1/3이 아닌 0.224가 될 수 있음을 시뮬레이션 결과를 통해 보였다. 이 지수는 시간과 그에 따른 영역의 크기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다. G.M. Schuetz의 발표는 조금 듣다가 놓쳐서 알 수가 없다.

점심 시간이 되었고 그냥 가까운 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다. 어제는 이리저리 좀 헤매다가 결국 버거 하나로 때웠는데 오늘은 헤매지도 않고 전반적으로 가장 잘 먹은 것 같다. 구름이 끼고 흐렸다가도 바로 맑아져서 파란 하늘이 보였는데 저녁에 나올 때에는 구름이 끼고 비도 조금 내렸다.

오후의 포스터 세션에 대해서는 시간 순서가 아니라 초록집의 번호 순서로 정리하겠다. 어제처럼 비평형 열역학에 관한 연구가 꽤 많았고 오늘도 그런 발표를 골라 다녔다. A. Imparato는 시스템이 가질 수 있는 상태가 매우 많은 시스템을 요동이론으로 풀기 위해 편향(bias)을 도입하는데 이런 방법으로 비교적 쉽게 ASEP 모형에 관한 요동이론을 계산해낼 수 있었다. 이 모형에서도 엔트로피가 줄어드는 경우가 생기는데 즉 입자들을 오른쪽으로 밀었는데 왼쪽으로 입자의 흐름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작은 시스템에서는 이렇게 엔트로피가 줄어드는 경우가 나타날 수 있는데 그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시스템이 환경과 주고받는 에너지의 크기가 시스템의 에너지와 비슷한 규모일 때에는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설명을 해줬다. 끄덕끄덕.

비평형 요동에서 시간 비대칭성에 관한 포스터를 D. Andrieux로부터 설명을 들었는데 대충 흐름을 알겠는데 모형에 관한 정의를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사실 매우 단순한 시스템이고 나도 대충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는데 뭔가 미묘하게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R.R. Deza는 노이즈에 의한 공명 현상을 반응확산 모형에서 연구한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특히 초확산(superdiffusion)이 도입되는 경우에 SNR(signal to noise ratio)이 더 커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뭔가 흥미로운 주제이기는 한데 힘들고 더워서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할 기운이 없었다. F. Vasquez는 비가역적인 열역학을 경로 적분으로 접근한 연구를 설명해주었다. 이 분은 내가 보기에 할아버지였는데 연륜이 있으신 건지 뭔가 설명을 잘해주셨다. 일반화된 랑제방 방정식으로부터 노이즈에 의한 관심있는 물리량의 분포를 구해야 하는데 노이즈의 모양을 결정해주는 행렬(텐서)의 역함수로부터 구해야 한다. 그런데 유체 모형의 경우 역행렬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고 이때 경로 적분 방법을 도입하면 역행렬을 구하지 않고도 원하는 양을 계산해낼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경로 적분에 도입된 적분변수가 물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느냐고 하니 자신의 연구에 대해 답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고 원래 이런 방법을 도입했던 1976년 논문을 보라고 한다.

듣고 싶어서 표시해둔 발표를 포스터 세션이 시작할 때 갔더니 포스터는 붙어있는데 발표자가 없었다. 나중에 다른 발표를 듣고 다시 가보니 발표자가 있었는데 어느새 패럴렐 세션이 시작될 시간이어서 아쉽게도 듣지 못했다. 그 다음 패럴렐 세션 중에는 딱히 마음이 동하는 세션이 없었다. 어디를 갈까 하다가 양자 시스템 분야인 세션 8B를 선택했다. 잘 모르는 분야지만 그래서 오히려 새로운 내용들을 접할 수 있었다.

K. Schoutens는 파울리의 배타 원리를 확장한 3-rule을 2차원 삼각 격자(triangular lattice) 위의 페르미온 시스템에 적용할 때 나타나는 초쩔쩔맴(superfrustration; 대체 번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이는 특히 위튼 지수(Witten index)를 구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는데 초대칭(supersymmetry)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서 내 머리와 발표 내용이 배타 원리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A.V. Syromyatnikov는 그 특유의 러시아 발음 영어로 하이젠베르크 반강자성(antiferromagnet) 모형에 대해 온도와 외부 자기장이라는 두 조절변수에 의한 상전이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D.C. Cabra의 발표는 취소되어 다음 발표인 G.E. Santoro의 발표가 바로 시작되었다. 양자 담금질(quantum annealing)은 고전적인 담금질 방법을 개량한 것으로서 복잡한 에너지 지형에서 온곳 최저값(global minimum)을 찾는 알고리즘 중 하나다. 고전적인 담금질 방법에서는 한곳 최저값(local minima)에서 다른 최저값을 찾기 위해 장벽을 넘어야 한다면 양자 담금질은 양자 터널링 효과를 이용해 더 효율적으로(?) 온곳 최저값을 찾는 방법이다.

시간도 남고 하여 세션 4B의 마지막 발표를 들으러 갔더니 조금 전에 시작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했는데 어두워서 얼굴이 잘 보이지도 않았고 바로 전 발표가 일본 사람이어서 아직 전 발표가 끝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다보니 발표자가 '에~ 에~'하는 것이 꼭 일본 사람들 말투 같아서 한동안 헷갈렸다. 내용을 보니 원래 발표자인 A.A. Nepomnyashchy가 맞는 듯 했다. 비정상 확산이 있는 경우 반응확산 시스템에서 불안정성과 문양 형성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발표였는데 알 수가 없었다.

다음 세션을 들으려면 자리를 옮겨야 해서 급히 나왔는데 생각해보니 30분간의 커피 브레이크 시간이었다. 그래도 그냥 다음 패럴렐 세션이 열리는 곳으로 갔다. 이번 세션은 11C로 연결망 이론에 관한 세션이었다. 강병남 교수님이 좌장을 하셨고 M.E.J. Newman과 S.N. Dorogovtsev 등의 발표가 있었다. Newman은 복잡한 연결망에서 모듈 구조를 찾는 알고리즘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는데 백지에 깔끔한 글씨로 정돈된 내용을 휘리릭 써내려가는 느낌이었다. M. Hinczewski는 프랙탈 위계 격자(fractal hierarchical lattice) 위에 이징 모형이 있는 시스템을 RG를 이용하여 계산하는 등의 연구내용을 발표했다. H. Agrawal의 발표는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Dorogovtsev는 원래(?) 투명용지(보통 TP라 부르는 그것)에 직접 손으로 써서 발표를 하는데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컴퓨터를 이용했다. 15분 발표인데 말이 조금 느린데다가 서두를 좀 길게 하시는 바람에 준비한 내용을 모두 발표하지 못한 것 같다. 서두가 뭐였냐면 누군가가 몇 시간 전에 자기한테 연결망 이론이 물리학자에게 어떤거냐라고 물었단다. 그래서 연결망은 기존의 균질한 격자보다 복잡하지만 이 위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오히려 더 단순하다는 얘기를 했다고 했나 그렇다는 건가 하여간 그런 얘기를 했다. 또한 질문시간에 누군가가 발표자의 Ginzburg-Landau 방법을 이용한 부분에 대해 비판(?)했고 발표자와 질문자가 두어 마디씩 주고받으면서 논쟁이 이어졌는데 아쉽게도 무슨 얘기가 오고갔는지 잘 모르겠더라. 마지막으로 M. Pretti는 랜덤 그래프에서 q-regular subgraph의 밀도에 관한 상전이가 나타난다는 것을 보였다.

이렇게 하여 7시가 넘어서 마무리되었다. 7시 10분에 시작한다는 인권 세션을 들으러 급히 자리를 옮겨야 했다. 낮에 인권 세션에 어떤 내용이 준비되어 있냐고 행사진행요원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몰랐다. 단상에는 두 명이 앉아있었고 이 특별 세션에 참가한 사람들도 꽤 많았다. 주요 내용은 양심적인 학자들(인문사회과학 포함)이 감옥에 있거나 핍박받고 있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관련 정부를 상대로 탄원서를 넣는 등의 행동을 독려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런데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야말로 인권을 이야기할 때 무엇보다 절박한 문제가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 단상에 있던 사람이 관련 국가에서 열리는 학회 등을 보이콧하자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저녁 8시부터는 다음날 행사를 위해 자리를 비워야 한다고 해서 급히 결론 없이 정리가 되었지만, 일단 물리 학회에서 이런 자리가 마련되었고 사람들이 모였고 이런 이슈가 비공식적으로나마 제기되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나랑 친구가 이 세션을 듣는다고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나왔는데 어찌어찌하여 결국은 우리 숙소 근처의 같은 레스토랑에서 만나고야 말았다. 만날 사람은 만나는가보다. 오늘의 교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