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은 플레너리 세션, 오후는 포스터 세션과 패럴렐 세션 2개가 있었다. 플레너리 세션에서는 J. Cardy와 C. Jarzynski, 그리고 H.N. Lekkerkerker가 발표했다. Cardy는 양자 시스템에서 얽힘(entanglement)을 엔트로피로 정의하여 열역학적 극한에서 얽힘 엔트로피가 열역학적 엔트로피와 같다는 것을 보였다. Jarzynski는 기대했던 발표자 중 하나였는데 자신의 연구를 개념적으로 알기 쉽게 설명했고 Jarzynski Equality를 간단히 증명하기도 했다. Lekkerkerker는 콜로이드와 폴리머의 혼합물에서 나타나는 분리현상과 분리로 인해 생긴 표면에서의 장력과 여러 현상들을 실험 동영상을 통해 보여주었다. 재미있게 들었다.

점심을 먹고나서 포스터 세션이 시작되었다. 200개가 넘는 포스터 발표가 있었는데 대부분 액정, 알갱이체(granular system), 격자 기체(lattice gas), 스핀 유리에 관한 주제들이어서 사실 별로 볼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슬슬 돌아다니면서 한 두 개 정도 들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는 주제들이 많았다. Stanley의 학생이 과냉각된 물에서 영하 26도 근처에서 새로운 상전이를 발견했고 이를 격자 기체 모형으로 설명했다고 하는 발표를 들었다. 정말 맞다면 발표자의 포스터에 그려져 있듯이 물에 관한 상전이 그림(phase diagram)을 다시 그려야 한다. 그런데 발표자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고 초록집에서도 관련된 내용을 찾을 수가 없다.

또 슬렁슬렁 다니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뭐 재미있는 거 없어요?'라고 물어보고 대답을 해주면 가보는 식이었다. 그렇게 알게 되어 K. Hukushima의 확장된 눈금잡기(extended scaling)에 관한 발표를 들었다. 상관길이 ξ는 임계점 근처에서 |β - β_c|의 거듭제곱 꼴에 비례하는데 여기에 β^(-1/2)를 곱해주는 것만으로 실험이나 시뮬레이션을 통해 얻은 결과를 더 깔끔하게 (발표자의 표현대로 beautiful하게) 맞출(fitting)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 β^(-1/2)를 골랐냐고 하니까 나름대로 요동에 의한 효과를 고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확한 해가 알려진 시스템에 맞춰봤냐고 하니 맞춰봤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β^(-1/2)를 곱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중 어느 것이 나은지 알 수 있을텐데 그 부분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눈에 띈 포스터 중 하나는 양자 담금질이었다. 그렇잖아도 그 원리를 이해하고 싶었는데 오늘 랜덤장 이징모형(random field Ising model)을 양자 담금질을 이용하여 연구한 발표가 있었다. 어떻게 적용했는지보다 원리를 이해하고 싶었고 대충 이해했다. 아마도 오늘 오전 Cardy의 발표에 있던 글귀로 기억하는데 Fisher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d차원 양자 시스템은 d+1차원 통계 시스템과 같다. 통계역학 교과서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고전적인 담금질이 d차원 에너지 지형(landscape)에서 온곳 최저값을 찾아가는 문제라고 하자. 한곳 최저값에 빠져있다면 온곳 최저값을 찾기 위해 주변의 벽을 넘어야 한다. 그런데 양자 담금질은 그 벽을 넘는대신 투과(tunneling)하여 온곳 최저값을 찾아가는 것이다. 즉 d차원의 양자 시스템을 다루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차원을 하나 추가하면 벽을 투과하는 대신 새로운 차원의 평탄한 길로 우회하여 온곳 최저값을 바로 찾아갈 수 있다. 마치 게임이론에서 내쉬 평형을 찾는 과정에서 cheap talk을 이용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복잡한 게임에서 내쉬 평형을 찾기 위해 양자 담금질을 이용해도 될 것 같다.

패럴렐 세션으로 생물물리 분야인 세션 10D를 들었다. 앞의 세 발표는 내용도 잘 모르겠고 집중하려 해도 잘 안되고 졸려서 넘어가고, S. Cocco의 역 이징문제(inverse Ising problem)가 비교적 관심이 갔다. 신경세포가 시간에 따라 발화한 데이터가 주어져 있으면 이로부터 이 시스템의 내부 구조를 추론해내는 문제다. 주어진 데이터로부터 나온 통계량을 제한 조건으로 하고 특정한 목적 함수를 최소화시키는 변수들을 찾는 문제였다. 다음으로 성균관대의 S.K. Baek은 반복되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 기억 효과를 도입하여 여러 전략 사이의 동역학적 변화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

커피 브레이크가 끝나고 오늘의 마지막 세션으로 학제간 연구분야인 세션 11D를 들어갔다. 산타페 연구소의 D. Farmer는 수요와 공급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통계역학 모형을 만들어 연구한 내용을 발표했다. 거래량에 따른 수익률에 대해 상전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설명하고자 했다. I. Kondor는 포트폴리오를 선택하기 위해 필요한 위험 회피에 관한 상전이 연구를 했다. 노이즈에 의한 위험이 최소화되도록 하는 포트폴리오 구성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특정한 경우 위험이 발산할 수도 있다고 한다. K.Y.M. Wong은 소수자 게임에 가격에 대한 민감성 등을 도입하여 실제 시장의 결과에 맞추어본 연구를 발표했다. 마지막으로 M. Marsili는 셸링의 인종분리모형을 발전시켜서 가까운 이웃들 중 일정 비율 이상이 자신과 다른 종족인 경우 랜덤하게 시스템의 비어있는 자리로 이사를 하도록 하게 함으로써 나타나는 인종분리 현상을 보여주었다. 또한 사람들의 적절한 밀도에서 상전이가 나타난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어쩌다보니 일행을 따라 와인을 마시러 갔는데 처음으로 제노바 도심의 야경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내일은 일찍 일어날 수 있을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