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상전이의 원인에 관한 다음 글들에 이어진다.

+ 상전이의 원인(2007. 7. 6.)
+ 상전이의 원인을 찾아서(2007. 7. 31.)

위의 두번째 글에서 나는 "상전이는 부분들이 모여 전체가 되는 순간에 일어난다."고 썼다. 이 말을 다시 쓰면 '부분에서 전체로의 상전이'다. 다양한 종류의 다양한 특성을 가진 상전이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생각하기 쉬운 것 중 하나로 스미기 문제(percolation)를 보자.

스미기 문제란 격자 위의 각 자리에 입자를 일정한 확률(p)로 떨어뜨릴 때 생기는 송이(cluster)의 크기와 수에 관한 문제를 뜻한다. 특히 시스템의 한쪽 끝과 다른쪽 끝을 잇는 송이를 스민 송이(percolated cluster)라고 한다. p가 작으면 입자들이 제각각 떨어져 있어서 스민 송이가 나타날 수 없지만, p가 어떤 문턱값보다 크면 스민 송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문턱값을 스미기 문턱값(percolation threshold)이라고 하고 p_c로 쓴다.

1차원 격자에서 p_c는 1이다. 1차원 격자의 왼쪽 끝과 오른쪽 끝을 잇는 스미기가 나타나려면 중간의 모든 자리가 입자로 채워져야 하므로 p = 1이어야 한다. 즉 p가 작을 때 시스템의 각 부분에 떨어져 있던 송이들이 p가 커지면서 서로 뭉쳐서 더 큰 송이를 만들어내다가 어느 순간 스민 송이, 즉 '전체'가 되면서 스미기가 실현된다. 부분들이 모여 전체가 되는 순간 일종의 상전이가 일어난다. 굳이 다시 말하자면 '부분에서 전체로의 상전이'다.

2차원 스미기 문제를 보자. 2차원 사각격자(square lattice)의 각 자리에 p의 확률로 입자를 떨어뜨리다가 어느 순간 위쪽 끝과 아래쪽 끝(또는 왼쪽 끝과 오른쪽 끝)을 잇는 스민 송이가 나타난다. 이때 스미기 문턱값은 약 0.592746으로 알려져 있다[1]. 1차원과 달리 2차원에서 p_c가 1보다 작은 이유는 굳이 2차원 격자를 모두 채우지 않아도 위쪽 끝과 아래쪽 끝을 잇는 송이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경우 N*N 크기의 2차원 격자에 N개의 입자를 일렬로 올리면 스민 송이가 나타나고 이때 입자의 밀도는 겨우 1/N이다. 물론 이런 경우가 나타날 확률은 극히 적지만, 이 한 줄의 스민 송이에 달라붙는 나머지 입자들은 불필요한 것들이 된다. 극단적이지 않고 일반적인 경우에도 이 '불필요함'에 의해 p_c가 1보다 작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전체'는 2차원 격자 위의 '모든 자리'가 아니라 '위쪽 끝과 아래쪽 끝을 잇는다'는 뜻으로만 정의되었으므로 p_c가 1보다 작아지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 1차원의 경우에 대해 말했던 '부분에서 전체로의 상전이'는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이징 스핀 모형(Ising spin model)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스핀들의 정렬(즉 송이)을 선호하는 결합상수 J와 정렬을 방해하는(즉 송이를 깨뜨리는) 열적 요동의 정도 T(즉 온도)의 비율인 J/T가 스미기 문제에서 p가 했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온도가 무한대이면 스핀들의 상태가 제멋대로이므로 평균 자기화는 0 근처에 머물 것이다. 하지만 온도가 낮아지면 부분적으로 송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송이들의 평균적인 크기는 상관길이(correlation length)로 나타낼 수 있다.

온도가 낮아지면 상관길이가 길어지다가 특정한 문턱값의 온도에서 발산한다. 스미기 문제에서 스민 송이가 나타나는 것처럼 상관길이가 발산하는 것도 '부분에서 전체로의 상전이'로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1 스핀의 수와 -1 스핀의 수 사이의 균형이 깨지면서(또는 대칭성 깨짐; symmetry breaking) 자기화의 값이 0이 아니게 된다.

아직 모호한 부분이 많지만, 모호한 부분이 실질적으로 불필요해지는 지점에서 '깨달음'으로의 상전이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 참고문헌
[1] D. Stauffer and A. Aharony, Intorduction to Percolation Theory, Revised 2nd Eds. (Taylor & Francis, 1994)

* Java로 구현한 이징 모형 싸이트 (이 외에도 관련 싸이트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