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저렇게 써놓으니 뭔가 제대로 써야할 것 같은 기분인데, 늘 그렇듯 내멋대로 쓰련다. 어제 '양자이론의 기초'라는 작은 워크샵에 참석했는데, 양자역학의 해석에 관한 과학철학과 물리학의 다양한 생각들을 접하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봄(Bohm)이 1950년대에 제창한 드브로이-봄 이론 또는 봄 역학은 기존의 정통적 해석보다 개념적으로 더 깔끔하고 양자역학의 개념들에 관한 혼란을 줄일 수 있는 것처럼 보여서 흥미로웠다. 그래서 봄 역학에 관한 위키피디아 문서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의 관련 글을 찾아 조금 읽어보았다.

결론은 한 마디로... 어렵다. (지금부터 쓰는 내용은 완전하지도 않을 뿐더러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양자역학 교과서에 실려 있는 정통적 해석을 떠올려 보자. 파동함수가 시스템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으며, 이 파동함수는 시스템의 가능한 모든 상태의 선형 포갬(linear superposition)으로 표현될 수 있다. 파동함수는 측정에 의해 하나의 상태로 오그라들며(붕괴; collapse) 어떤 상태가 선택될지는 파동함수에 의해 확률적으로 결정된다.

이와 관련된 이슈들을 나열하면, 입자-파동의 이중성, 측정의 문제, 비국소성 등이다. 이런 문제들을 일관성 있게 해결해주는 듯한 이론(또는 해석)이 봄 역학이다. 위에 링크해놓은 위키피디아 문서의 'One particle formalism' 부분을 보자. 비상대론적인 슈뢰딩거 방정식은 파동함수의 변화를 기술하는데, 파동함수를 ψ(x,t) = R(x,t) exp [i S(x,t) / h]로 놓고 방정식에 대입하여 실수부와 허수부를 따로 쓰면 식 (1)과 식 (2)를 얻는다. 식 (3)을 이용하면 식 (1)은 입자의 밀도가 보존되는 연속방정식에 다름 아니다. 식 (3)을 길잡이 방정식(guiding equation)이라고 한다. 또한 식 (2)로부터 양자 포텐셜 Q가 정의된다. 이로부터 R과 S에 관한 방정식을 풀어서 입자의 속도를 구할 수 있고, 입자의 위치의 초기 조건을 안다면 입자의 운동을 결정론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이렇게 봄 역학은 입자를 파동보다 근본적으로 본다고 한다. 빛을 이용한 이중 슬릿 실험을 보자. 봄 역학에서, 광원을 출발한 광자는 입자이면서 파동이다. 양 슬릿을 모두 통과한 파동은 간섭을 일으킬 것이다. 입자는 이 간섭된 파동의 '안내'를 받아(guided) 자신의 경로를 결정한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전자기장 위에 놓인 전하가 전자기장의 안내를 받아 움직이는 것처럼 입자는 파동의 안내를 받는다고 한다. 이를 기술(?)한 것이 위의 길잡이 방정식이다. 그런데 파동이 입자를 '어떻게' 안내하는지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이중 슬릿 실험에서 광자가 어느 슬릿을 통과했는지를 측정하면 간섭 무늬가 사라진다. 양자역학의 정통적 해석에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이러한 '파동 함수의 오그라듦'을 봄 역학에서는 피해갈 수 있다. 측정되는 시스템(하위시스템이라고 하자; X)과 측정 도구(또는 관찰자; Y)를 더 큰 하나의 시스템으로 생각하여 파동함수를 쓰면 다음과 같다: Ψ(x,y). 하위시스템의 파동함수는 ψ(x) = Ψ(x,Y)로 쓸 수 있고 측정에 의한 하위시스템의 상태는 우변의 Y에 측정 도구의 상태를 대입하여 얻는다. 여기서 '오그라듦'은 일어나지 않았다. Y에 특정한 값을 대입함으로써 하위시스템의 상태가 결정된 것 뿐이다.

마지막으로 비국소성을 봄 역학에서는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보자. 비국소성은 양자적으로 얽혀 있지만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두 시스템이 서로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이는 어떠한 정보도 빛의 속도보다 빠를 수 없다는 상대론의 기본 가정과 배치되었으므로 오랫동안 커다란 이슈였다. 봄 역학에서 파동함수는 실제 공간 위에서가 아니라 짜임새 공간(configurational space; 나는 상태공간으로 이해했다) 위에서 정의되며,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두 입자의 상태를 짜임새 공간 위의 '한 점'으로 나타낼 수 있고 양자역학이 이 점의 분포와 운동을 기술한다고 한다면 두 입자의 공간적 거리는 문제시되지 않을 수 있다.

위의 세 가지 내용을 한 문단으로 정리해버린 브라이언 그린의 글을 옮긴다.

(앞줄임) 그[보옴]는 전자와 같은 입자들이 고전물리학(특히 아인슈타인)의 주장대로 정확한 위치와 속도를 갖고 있지만 그 특성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4장에서 잠시 언급했던 '숨은 변수hidden variable'의 한 사례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에 의하면 전자의 입자[위치]와 속도는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될 수 없다. 보옴은 이 불확정성이 우리가 알 수 있는 한계를 지정해 주고 있지만 입자의 실제적인 속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보옴의 접근법은 벨이 얻었던 결과와 아무런 모순도 일으키지 않는다. 4장의 끝부분에서 말했던 것처럼, 입자가 정확한 위치와 속도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은 아직 완전히 배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보옴의 접근법은 비국소적 성질을 갖고 있었으며, 입자의 파동합수를 입자와 함께 존재하는 또 하나의 실체로 간주했다. 보어의 상보성원리에 의하면 모든 물체는 입자 '또는' 파동이지만, 보옴의 접근법에서 모든 물체는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으로 간주된다. 뿐만 아니라 보옴은 파동함수가 입자 자체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입자의 운동을 '인도'하거나 '강제'하고 있으며, 한 지점에서 발생한 파동함수의 변화는 즉각적으로 멀리 있는 다른 입자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이중슬릿 실험의 경우 개개의 입자는 두 개의 슬릿 중 하나를 통과하는 반면, 입자의 파동함수는 두 개의 슬릿을 동시에 통과하면서 간섭무늬를 만든다. 그런데 파동함수는 입자의 운동을 인도하고 있으므로 파동함수의 값이 큰 곳일수록 입자가 도달할 확률이 커져서 그림 4.4와 같은 간섭무늬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보옴의 이론에서 파동함수의 붕괴는 따로 고려할 필요가 없다. 입자의 위치를 관측하여 '이곳'에 있음이 확인되었다면, 입자는 관측되던 순간에 정말로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 브라이언 그린, <우주의 구조>, 299-300쪽

위의 '인도'라는 말은 'guide'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중간에 오타가 있어서 내가 고쳤다(입자->위치). 그리고 앞에서 파동이 입자를 어떻게 안내(인도)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비국소성에 의해 '즉각적으로' '어떻게든'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어찌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론을 되풀이하자면, 역시 어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