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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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텃지가 쓴 이 책의 원제는 <Neanderthals, Bandits and Farmers: How Agriculture Really Began?>이다. 수렵/채취를 하던 옛사람들이 어떻게 농사를 짓고 살게 되었는가에 대한 여러 가설이 있는 듯 하고 '옮긴이의 말'에서 옮긴이가 다른 책을 참고하여 다섯 가지로 정리해놓았다.

글쓴이의 가설은 이중 한두개랑 비슷한 것으로서, 농업이 수렵/채취에 비해 쉽거나 더 낫기 때문에 1만년 전쯤 급속히 퍼진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한다. 수렵/채취를 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게으른 편이었고("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도 일주일에 겨우 6시간 정도만 사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57쪽), 자연환경을 특정한 목적을 위해 조작/통제해야 했던 농부들은 부지런해야 했다. 또한 부지런한만큼 그에 비례하는 식량이 생산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식량이 풍부해지자 자손을 많이 낳아키울 수 있었고 동시에 그 자손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더많이 농사를 지어야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문득 '무한증식하는 자본'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또한 농사를 지어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되면서 동물 사냥이 무계획적으로 변해갔다. 수렵/채취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해서라도 수렵/채취의 양을 조절하는데 반해 농부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4만년 전부터 1만년 전까지 동물들의 대량 멸종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러한 동물들로 살아가던 수렵/채취 부족들 역시 농부들과의 경쟁에서 밀려 자취를 감추게 된다고 한다. 여기에는 '온순한 농부와 난폭한 사냥꾼'이라는 이미지가 맞지않는다.

그럼 왜 어느 순간 사람들은 농사를 짓기 시작했을까? 그러한 원인 중 하나는 기후가 변하면서 해수면이 상승한 것이라고 한다. 수렵/채취로 살기에 좋았던 곳에서 쫓겨나면서 새로운 식량자원이 필요해졌고 이미 조금씩 해오던 농사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고 다행히 처음에는 농사짓기 좋은 환경에서 시작을 하여 농업이 정착할 수 있었다는 식이다.

재미있는 내용이었는데 인류의 역사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여러 가설들에 대해서도 잘 몰라서 일단 글쓴이가 주장하는 내용을 정리하는 단계에서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런가보다 한다. 다만 이 글이 왜 '다윈의 대답' 시리즈에 끼었는지는 의문이다. 옮긴이 역시 그런 의문을 품었다가 해소되었다고 하는데 관련된 부분을 '옮긴이의 말'에서 옮겨본다.

이 책은 농사라고 하는 유례없이 파괴적인 생태적 행위가 인간 종 및 그와 관련된 다른 종들의 진화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으며 앞으로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가설이자 경고인 셈이다. - 85쪽

옮긴이의 말을 읽어도 나의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패쓰하겠다.

이미 산업혁명을 거쳐 농업은 농산업이 되었고 화석연료를 대량소비하며 자연자원과 '인적'자원까지도 거덜을 내야만 유지되는 시스템이 간신히 굴러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왜 농업이 시작되었는가'라는 물음에 거리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문득 예전의 내 생각들이 다시 떠오른다. '1차 산업을 기반으로 한 지역공동체'라는 이상을 꿈꾸었던 적이 있고 1차 산업으로는 당연하게도 농업을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귀농을 잠시나마 고민한 적도 있다. 그런데 농업에 대해서만큼은 의심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지금 의심한다고 뭐가 어떻게 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이 생각할 여지를 조금이나마 넓혀준 것 같고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