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대량(기준치 100배) 함유 포스팅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모두 10권)를 근처 도서관에서 빌려서 틈틈이 보다가 이제야 다 읽었다. 7월 24일에 1-3권을 대출했으니 거의 한 달이 걸린 셈이다. 실은 처음이 아니라 두번째다. 92년에 수학경시대회에 나가서 상을 탔는데 그때 부상으로 받은 것이 <파운데이션> 1-7권 세트였다. 내가 먼저 읽고 주변 친구들에게도 빌려주고 하다가 소설을 좋아하는 친구 하나와 8, 9권을 하나씩 사서 돌려 읽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도서관에서 빌린 건 새로 출판된 10권 세트인데 나는 그동안 한 권이 새로 씌어진 건가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방금 구글링을 해보니 출판사에서 책 내용을 잘라붙여서 일부러 10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출처]. 어이가 없다. 그리고 오타도 많았고 특히 두 사람이 주고받는 내용인데 문단이 나뉘어지지 않아서 한 사람이 말한 것처럼 되어 있는 부분도 있었다. 따옴표도 제멋대로이고 뒤로갈수록 조사도 제멋대로다.

어쨌든, 최근에 다시 이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읽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 7월 사회동역학/언어진화에 관한 에리체 학회에 가서 영국 교수와 얘기를 나누다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과 해리 셀던, 심리역사학이 잠시 얘기되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2주간의 학회 후유증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다가 이 책들을 집어들었다. 그게 7월 24일이었다.

15년 전 처음 이 소설을 접하면서 느꼈던 신비로운 이미지들은 CG 기술의 발달로 이미 어느 정도 퇴색했지만 소설에 빠져들수록 머리 속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거대한 은하계와 그 속의 다양한 군상들의 이미지를 상상하노라면 어느새 내가 직접 그 우주선을 타고 이 행성 저 행성을 초공간 도약을 하며 날아다니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보다도 나를 매혹시켰던 것은 심리역사학의 창시자이자 수학자인 해리 셀던(Hari Seldon)이다. 그는 망해가는 은하제국 이후 3만년의 암흑기를 예측하고 이를 천년으로 줄이기 위해 자신의 심리역사학을 이용하여 두 개의 파운데이션을 설립한다. 심리역사학은 인간의 행위를 수학적으로 모형화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으로서 통계물리를 사회현상에 적용하고 있는 21세기의 사회물리학과 다르지 않다. 심리역사학이 그 기능을 하기 위한 두 가지 전제는 수많은 인간들의 집합에 대해서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과 사람들이 심리역사학의 작동원리와 그 결과에 대해 모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번째 전제는 마치 통계물리학이 입자 개개의 위치를 예측하지는 못해도 입자 전체의 분포나 거시적인 양의 변화를 예측해낼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더구나 입자의 개수가 많을수록 그 예측은 더 정확해진다. 큰 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 또는 열역학적 극한이라고도 할 수 있다. 두번째 전제는 만일 사람들이 심리역사학의 결과를 안다면 사람들의 행동이 그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어 심리역사학이 예측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선택이 미래에 가져올 결과를 안다면 현재의 선택을 바꿀 것이고 미래의 결과 역시 달라질 것이다. 물론 아무리 미래를 바꾸려 해도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이 부분은 시간여행으로 인해 제기되는 문제와 통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학문이 가져올 더 심각한 문제는 윤리문제다. 소설에서는 제2파운데이션의 구성원만이 심리역사학을 완전히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으며 이들은 다른 모든 이들에게 가려져 자신들의 정체를 결코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그럴 때에야만 심리역사학이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만큼의 권력을 독점하고 있으며 은하제국의 미래는 그들의 손에 달려있다. 그것이 매스미디어로 민중의 눈과 귀를 멀게하는 독재자와 뭐가 다른 걸까라고 물어볼 수 있다. 제2파운데이션은 3만년의 암흑기를 천년으로 줄이고 기존의 '제국'이 아닌 더욱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할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대다수 사람들의 운명을 극소수의 사람들이 좌지우지하는 그러한 세상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은하제국이 멸망하는 와중에 해리 셀던은 두 개의 파운데이션을 설립하는데 하나는 은하계 변방의 터미너스라는 작은 행성에, 다른 하나는 은하제국의 중심지 트랜터에 세운다. 터미너스는 수백년이 지나면서 셀던 프로젝트에 따라 성장하여 제2은하제국의 중심이 되고자 한다. 그들은 막강한 물리력을 바탕으로 협력에 기반하여 연합세력을 넓혀왔고 아무도 그들을 저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반면 트랜터에 세워진 제2파운데이션은 극소수의 구성원들로만 이루어져 있지만 이들 역시 막강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제1파운데이션에 위협적인 존재로 떠오른다. 이들은 인간의 언어 이전에 존재했던 의사소통 방식을 섬세하게 발달시켜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거나 치명적인 충격을 가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극도로 발전한 물리력과 정신력의 대결은 가이아 공동체라는 숨겨져 있던 세력에 의해 해소된다. 기존의 제국이나 그 이후의 두 파운데이션 모두 고립된 개인들에 의한 세계였다면 가이아 공동체는 그 행성 전체가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행동한다. 물론 그 안에도 생태계 먹이그물이 있지만 모든 생물과 무생물은 하나의 거대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그들 각각은 개별성보다 전체성을 더 중요시한다. 이들은 제2파운데이션보다 더 강력하고 더 섬세한 의식을 다룰 수 있으며 은하계 전체를 가이아 공동체를 확장한 갤럭시아로 만들 꿈을 꾸고 있다.

터미너스의 의원인 골란 트레비스는 제2파운데이션에 의해 완벽하게 조절되는 자신들의 미래를 거부하기 위해 제2파운데이션을 찾으러 나선다. 그의 여행에는 은하계의 고대역사를 연구해온 야노브 패롤렛이라는 역사학자가 동행한다. 그들은 어떤 알지못하는 힘에 이끌려 베일에 가려져 있던 가이아 공동체까지 가게 되고 결국 트레비스는 은하계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제1파운데이션이냐, 제2파운데이션이냐, 아니면 가이아 공동체냐. 트레비스는 가이아 공동체를 선택하지만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트레비스는 패롤렛과 그의 애인이 된 가이아 여인 블리스와 함께 인류가 처음 시작되었다고 여겨지는 '지구'를 찾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선다. 지구를 찾는 길고긴 탐사 중, 개인의 개별성을 옹호하는 트레비스는(비록 자신이 가이아를 미래의 대안으로 선택했음에도) 전체성과 조화를 옹호하는 블리스와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그 논쟁은 우리의 미래는 어떤 세상이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아시모프의 고민으로 읽힌다. 개별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폭력이 없는 조화로운 세상은 불가능한 것일까, 전체성 속의 개인은 안정된 느낌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변화와 발전이 없는 죽은 세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들은 결코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지구를 발견해내기에 이른다. 하지만 방사능에 오염된 지구에서는 생명체를 찾아볼 수 없었고 자신의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오랜 여행을 해온 트레비스는 자포자기하는 상황에 이르는데... 지구의 위성 달에는 그 모든 의문을 해소해준 로봇이 있었다. 그는 다닐 올리버라고 하며 지구인들이 우주로 뻗어나가기 시작하던 시절 만들어진 나이가 2만 년이나 되는 로봇이었다. (그의 몸은 여러번 교체되었다.) 그는 해리 셀던이 심리역사학을 발전시키는데 결정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했는데, 그의 그러한 행동은 모두 로봇 3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로봇 3원칙이란, 로봇은 인간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올리버의 친구 로봇은 여기에 로봇 0원칙을 추가한다: "로봇은 전 인류에게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되며 또한 위험을 간과함으로써 인류에게 위해를 끼쳐서도 안 된다."(10권 309쪽) 그 이전의 원칙들은 '인류'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자신들의 원칙들(0원칙을 포함하여)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미래의 설계자 역할을 해온 것이다. 물론 그들이 전지전능하다는 것은 아니고 그 모든 것이 완전히 그들의 계획대로만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은하제국은 3만년의 암흑기를 고통 속에서 견뎌내야 했을 것이다.

이런 얘기들을 듣고 트레비스는 자신이 가이아를 선택한 이유를 마침내 납득하는데 나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 거대한 이야기의 마지막 결말은 자신이 만들어낸 스토리에 압도당한 작가의 초라한 모습이 아니었나 한다. 트레비스는 우주는 우리 은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접하지 못한 다른 지적 생명체에 의해 침략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앞줄임) 만일 외계종이 침략해올 경우, 그들은 우선 우리 인간들끼리 반목하게 만드는 방안을 모색할 겁니다. 우리는 그런 소모적인 싸움에 익숙하잖아요. 침략자들이 우리가 서로 분열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 우리 모두를 지배하거나 파괴하겠지요. 그래서, 유일하고도 진정한 방어는 반목과 시기를 없애고 침략자들에게 최대한 적극적으로 맞설 수 있는 갤럭시아를 건설하는 것이죠."
- 아이작 아시모프, <파운데이션 10권>, 328쪽

화합과 조화, 평화를 말하는 것은 좋지만 그동안 트레비스가 블리스에 반대하여 개체의 개별성을 주장해온 모습에 비하면 비약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쯤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모두 7권)를 말해야겠다. 예전에 어떤 카페에서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과 하야오의 <나우시카>를 비교하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역시 인터넷을 뒤지니 나온다: [보러가기] 나우시카는 '불의 7일'이라 불리는 핵전쟁의 무기였던 거신병을 이끌고가서 '청정한 세계'라는 계획된 미래를 거부하고 이 모든 것을 계획했던 선조들의 프로젝트를 거신병의 손으로 파괴한다. 트레비스가 다닐 올리버라는 로봇의 계획에 동조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위에 말한 글에 나와 있듯이 '운명의 주도권'을 그들에게 맡겨둘 것인가, 되찾아올 것인가라는 첨예한 문제가 걸려 있다. 맡겨둘 경우 우리는 안락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지만, 되찾아오는 경우 우리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심리역사학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려고 한다. 앞에서도 지적한 문제이지만 그 학문의 결과가 비밀에 부쳐져야 하는 것이 그 학문의 성공을 위한 필수조건이라면 그러한 학문은 근본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에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