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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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후끈하다. 무척이나 논쟁적인 주제라는 말이다. 우선 나 자신에 대해 밝히자면,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좇다가 여성학/페미니즘을 공부한 적이 있고 여전히 성차가 아니라 성차별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이름이라도 참으로 다양한 입장이 존재하듯이 성차별이 정당하다는 주장도, 부당하다는 주장도 여러가지일 수 있다. 그렇다면 다윈은 이 문제에 어떠한 대답을 내놓을 것인가? 그런데 이 책은 다윈이 쓴 것은 아니고 법대교수인 킹즐리 브라운이 자신의 의견을 정리하여 펴낸 것이므로, '브라운의 대답'을 듣는 시간이 마련될 것이다.

글쓴이는 생물학적 성차와 그것이 성심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들('과학적'이라고 하여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이용한 연구'를 말하는 것이다.)을 소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주로 페미니스트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그는 생물학적 결정론과 사회구조적 결정론을 모두 경계하면서도 생물학적 요인이 사회구조적 요인보다 더 크다는데 손을 들어주고 있다.

성차는 진화의 산물이며, 생식세포의 형태/기능상의 차이(즉 크기가 작고 무수히 많은 정자와 크기가 크고 개수가 제한되어 있는 난자)가 곧 생식에 대한 성차를 불러왔으며 번식을 위해 교미를 중시하는 성과 양육을 중시하는 성이 나뉜다. 오랫동안 임신을 해야 하는 성은 임신에 대한 투자를 해야 하므로 생식에 대해 좀더 신중하고, 그렇지 않은 성은 더 많은 생식을 위해 더 능동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앞 문단에서 일부러 수컷/암컷 또는 남성/여성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해마 중 몇몇 종의 수컷은 양육을 중시하고 암컷은 교미를 중시하기도 하므로 쉽게 일반화하기 힘들다. 그런데 '양육'이라는 말은 책에 있는 것보다 그 의미가 분화되어야 할 것 같다. 임신과 출산까지는 생물학적 역할분담에서 불가피하지만 그 이후의 '양육'은 사회적인 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우, 남성은 교미를 중시하며 여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외모, 경제력 등의 능력을 추구하기 쉽고, 여성은 양육을 중시하며 능력이 있는 남성을 선호하기 쉽다는 것이 진화의 결과라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는 '일'에서도 나타나며 남성은 여성보다 위험을 더 추구하며 그로 인해 직장에서 더 높은 위치에 오를 수 있고, 여성은 관계나 양육, 돌보는 일 등을 중시하여 높은 자리에 오르기보다는 안정적인 위치를 선호한다고 한다. 그래서 글쓴이는 '유리 천장'이 아니라 '거미줄 천장'이라는 표현이 맞다고 주장한다. 즉 여성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가로막혀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만 지나가려면 얼마든지 지나갈 수 있는 거미줄이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천장을 지나가지 않는 것은 여성들에게 강요되었다기보다는 여성들이 선택한 것이며 페미니스트들은 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워낙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어서 일일이 생각하기에는 머리 속이 복잡하다. 글쓴이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할 거리가 많은데, 그보다도 '옮긴이의 말'에서 옮긴이가 균형잡힌 정리를 해주셔서 복잡해진 머리를 쉽게 정리할 수 있었다.

예전부터도 많이 얘기했던 것인데, 생물학적 성차를 부정할 수는 없다. 또한 진화적으로 발생한 그 차이가 인간의 생활과 심리에 미치는 영향 역시 기존의 연구결과에 근거하여 생각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다. 그렇기에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듯이 성차와 성차별을 구분하여 성차를 인정하되 성차별에 반대하는 것도 문제가 없다. 여기서도 생물학적 차이를 사회구조적 차이로 대체하려 한다거나 그 반대의 경향 모두 올바른 이해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논의가 좀더 쉬워질 것이다. (과연;;;)

예를 들어보자. 임금에 관한 성차가 분명히 있다. 그것은 글쓴이의 주장대로 여성이 좀더 쉬운(그래서 임금이 싼) 일을 선택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노동을 하는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임금이 낮게 책정된 것인가. 후자의 경우가 바로 성차별이며 부당한 사례가 된다. 기본적으로 동일 노동에 동일 임금이 적용되어야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그것이 선택인지 강요인지 불분명하지만 않다면, 선택인 경우 인정해야 하고, 강요인 경우 개선이 필요하다. 또한 성차의 평균이 분명히 있어도 개인적인 차이를 인정하고 그런 차이에 대해 차별적이지만 않다면(즉 '단지 남자/여자라는 이유로 이래야 해/하면 안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면), 극단적으로 말해서 성차에 관한 문제는 자연과학적인 문제로만 남을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접근한다면 진화생물학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옮긴이의 말'을 일부 옮겨본다.

(성차에 관한 여러 의견들이) 아마도 이렇게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이유는 직장의 성차별,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형태의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 재산권이나 상속권의 문제 등등 특별한 과학적 사고도 필요 없는, 그러나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여성학자들에게 있어서나 진화생물학자들에게 있어서나 성차 문제를 과학적으로 따지는 것이 너무 한가한 주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 129쪽

그런데 또 과학적인 분석이 한가할 때나 할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논쟁이 될 때는 어느 쪽이든 과학적 근거를 자신들의 주장을 위해 이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은 어느 정도 정치화될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정치에 이용당해서는 안된다. 하여간 어려운 문제다. 이제 <다윈의 대답4>를 읽을 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