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03/23

양자 의회. 영어로 쓰자면 quantum parliament다. 지난 주에 읽은 논문인데 간단히 소개해볼까 한다[1]. 의사결정 방식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자면, 다수결과 만장일치다. 물론 그 전까지 일정한 기간을 정해서 토론을 하고나서 일정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위의 두 가지 방법 중의 하나를 이용하여 최종결정을 하는 것이다. 다수결의 경우, 다수파는 소수파와 합의에 이르지 않더라도 다수결을 하면 자기들이 이길 것이 뻔하므로 합의를 위해 노력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대응할 것이다. 이것이 다수파의 횡포다. 반면에 만장일치의 경우, 소수파는 합의에 이르지 않더라도 자신들이 반대하면 어떠한 결정도 내릴 수 없으므로 결국 배째라 전법으로 나올 수 있는데, 이를 소수파의 횡포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다수결과 만장일치의 경우, 합의기간 후의 결정방법이 '결정론적'이므로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다. 다수결로 결정을 하면 다수파에게 유리한 것은 당연하고, 만장일치로 결정을 하면 소수파에게 유리한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확률론적'인 결정 방법을 제시한다.

한가지 대안으로 동전 던지기를 할 수도 있다. 일정한 협의기간을 주고 그때까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동전 던지기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여기서도 다수파와 소수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아무래도 소수파는 소수이므로 원래 이길 확률이 낮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동전을 던지면 그 확률이 50%까지는 올라가므로 소수파가 합의를 위해 노력하지 않더라도 동전 던지기가 소수파에게 유리할 수 있다.

여전히 소수파에게 유리하므로, 조금 다른 방법을 제시하는데, 각 의견을 따르는 사람 수에 비례하는 확률로 최종적으로 결정을 하는 것이다. 즉 A라는 의견과 B라는 의견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총 N명 중 A를 선호하는 사람이 a 명, B를 선호하는 사람이 b 명인 경우 A가 선택될 확률은 a/N 이고, B가 선택될 확률은 b/N 이다. 이렇게 하면 다수파는 이길 확률이 높지만 질 가능성도 있으므로 이길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합의를 위해 노력할 것이고, 소수파는 이길 확률은 낮지만 더이상 배째라 전법을 쓸 수 없고 이길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이들도 합의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다소 황당하기도 하지만 또 나름대로 재미있는 결정방법인 듯 하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이를 받아들일 정치체제는 확률적으로 0에 가까울 것이라고 본다. 또한 '양자'라는 말을 썼는데 확률적이라고 다 '양자'적인 것은 아니다. 이것은 사회과학자가 자연과학의 용어를 빌려 쓰면서 의미를 오해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고 보는데, 사회과학에 '양자'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섹시해 보이기는 해도 이 논문의 경우에는 그다지 올바른 것은 아니므로 좀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아래 링크로 가면 전문을 다운받아 볼 수 있다.


+ 참고문헌
[1] D. Aerts, Towards a New Democracy: Consensus Through Quantum Parliament, arxiv.org:physics/0503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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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이 나서 옮긴다. 위글의 내 결론에 따라 '양자 의회'라고 하지 않고 '확률 의회'라고 부르겠다. 이 의회의 문제점은 다양한 의견이 경쟁하는 경우에 극소수만 지지하는 의견이 선택될 확률이 0보다 크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봉건제로 돌아가자는 의견이 선택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의견이 선택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지지율이 일정 비율 이하인 의견은 선택의 가능성에서 배제하는 규칙을 덧붙일 수 있다. 이 비율을 정하는 것도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 같다. 이러니저러니해도 '확률 의회'가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확률 의회 역시 현재의 다수결 원칙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것이며, 다수파들이 이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혁명'의 가능성은 지금으로서는 고려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