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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들어가는 시간이 갈수록 늦어지고 있다. 동시에 아침에 나오는 시간도... 어제는 방에 들어가서 그냥 자기가 아쉬워 거의 다 읽은 우석훈, 박권일의 <88만원 세대>를 마저 해치웠다. 이 책도 틈틈이 보다가 열흘만에야 다 본 셈이다. 평소 우석훈씨(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블로그를 자주 가서 보는 편이라 말투나 내용이나 관점에 조금은 익숙해져서 그런지, 쉽게 쓰려고 노력하셔서 그런건지 어렵지 않게 읽어내려갔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엿본 한국의 20대와 10대들이 처해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슬프다는 느낌이 앞섰다.

20대인 친구가 나에게 '88만원 바로 전 세대'라고 했는데 그래봐야 갓 30이 넘었을 뿐이고(드뎌 공개;;) 지금은 비교적 안정된 비정규직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처지라 나 스스로를 어디에 어떻게 두고 생각해야할지 모호한 감이 있었다.

이 책은 세대 간 경쟁, 세대 내 경쟁이라는 틀에서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조명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책 중반즈음 각 세대를 정의하고 있는데, 우선 73년부터 80년 사이 유신 시대에 경제적 삶을 시작한 지금의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까지를 유신세대라 부를 수 있다. 이들은 포디즘의 대량생산 방식에 익숙하고 획일성을 중심으로 하며 세대 내 결집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상층의 소수를 제외하고는 비정규직이 되어 다음 세대의 지시를 받는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사회적으로는 20대를 착취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가정에서는 20대인 자식들과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음으로 80년대 전두환 대통령의 과외 금지의 영향을 받은 386세대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단결된 강력한 집단을 형성하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가고 있다. 또한 이들은 독서를 가장 많이 하는 세대로서 포디즘 이후의 체제에 적응할 가능성도 가장 높다고 한다. 연공서열제와 종신고용 체계가 무너지면서 이들이 경쟁해야 하는 다음 세대인 20대를 위해 세대 간 분배를 자발적으로 할 동기도 없다.

386세대와 20대 사이에 X세대를 끼워넣기도 하는데 X세대와 20대는 시기적으로 IMF가 터지기 전에 사회에 진출했느냐 아니냐로 나뉠 수 있다. 작은 차이 같아보여도 경쟁 압력이 커지는 상황에서는 초기 조건의 작은 차이가 커다란 결과의 차이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20대, 이 책에서 88만원 세대라 이름붙인 20대는 그야말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고 보내야 할 것 같다. 이들은 시장의 경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데다가 이전 세대들처럼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크고 작은 그룹을 만들어내는 결속력도 없다. 또한 윗 세대가 만들어놓은 경쟁구도 속에서 사회적 안전장치도 없이 서로 경쟁해야 하며 괜찮은 직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더구나 세대 간 경쟁에 의해 착취를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들의 행복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스로 문제해결의 주체가 되어 협력하고 저항하는 것을 기대하지만 이미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 빠져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을 바꾸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저자들은 외국의 풍부한 사례를 참고하여 어떠한 해결책이 가능한지를 고민하고 또 부분적으로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막상 책을 덮고 나니 막연한 느낌만이 남았다. 읽기는 쉬워보여도 뭔가 복잡한 구조로 씌어져있는 것 같은데 지금으로서는 명쾌하게 정리할 능력도 여유도 안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막연한 느낌이 이 책과 함께 주문한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라는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해소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