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어떤 잡지(힌트: Water & Liquor. 답을 아시는 분은 혼자만 알고 있거나 비빌댓글 달아주삼.)에 실을 길지 않은 글의 일부를 쓰기로 했고 지난 주에 1저자와 만나 글의 방향과 구성에 대해 논의하고 각자 어떤 부분을 맡을 것인지를 결정했다. 사실 내가 맡은 부분은 한 섹션에 불과한데 분량을 생각해보면 그리 적지는 않다.

어쨌든 신경이 계속 쓰이는 일이었고 지난 주말까지는 이사를 비롯한 여러 일들에 우선순위가 밀려서 못하다가 이번 주에 틈틈이 하다가 오늘 오후에야 완성하여 1저자에게 보냈다. 나름 신경쓰였던 일이라 끝내고 나면 개운할 줄 알았는데, 사실 전혀 끝난 일이 아니라서 개운하고 싶은데 개운하지 않은 야리꾸리한 상태다.

글에 그림으로 뭘 넣을까 하여 옛날 발표자료들을 찾아보던 중에 정확히 2년 전 지금 내가 연구하고 있는 모형을 랩세미나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발표했던 ppt 파일을 발견했다. 이 모형의 생일을 8월 31로 붙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방금 들었다. 이 모형을 낳기(;;) 위해 불임의 공포에 떨며(;;;) 문헌조사를 했고 많은 시행착오 끝에 결국 임신과 출산에 성공했다. (그런데 내가 남자라 이런 비유가 매우 민망하다.) 그런데 애아빠는 누구냐?고 묻는다면 제2저자인 우성이 되겠다.

두 돌을 맞은 지금, 이 모형은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을 보이며 나를 미궁에 빠뜨리고 있어서 당혹스럽다. 아직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데다가 나도 빨리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그래도 내가 낳은 모형 내가 키워서 남들 앞에 부끄럽지는 않게 하고 독립시켜야겠다는 생각을... 원래 안했는데 지금이라도 해본다.

배고프다. 내가 낳은 모형이 빨리 커서 날 먹여살려야 할텐데 어느 세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