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제 오랜만에 집에 다녀왔는데 지하철에서 오고가며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1945; 도정일 옮김, 민음사, 1998)을 읽었다. 실은 cherub님의 최근 글에 인용된 문구인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에 혹해서 읽기 시작했다. 작가의 의도나 관점, 풍자의 대상이 명확한 편이었고, 이 책에 같이 실린 오웰의 에세이 두 편과 옮긴이의 설명까지 보면 더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작품의 동기이자 주제는 '배반당한 혁명'이다. 영국의 어느 농장의 동물들은 어느날 자신들을 착취하며 배를 불리던 인간들을 내쫓고 '동물농장'을 선포한다. 그 중심에는 농장에서 가장 똑똑한 돼지들이 있었는데 목숨을 걸고 인간의 반격에 맞섰던 스노볼이 또다른 돼지인 나폴레옹이 길들인 개들에 의해 쫓겨나면서 돼지들만의 지배계급이 형성된다.

이 새로운 지배계급은 동물농장을 선포할 당시의 정신을 무시하면서 점점 인간처럼, 자신들을 착취했던 인간처럼 변해간다. 그에 따라 다른 동물들은 '스스로 농장의 주인임'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더 적은 식량으로 더 많은 노동을 하는 처지로 전락한다. 돼지들은 자신들의 적이었던 인간들과 어울리면서 두 발로 걷고 옷을 입고 술을 즐기고 마침내는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분간할 수조차도 없게 된다.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놓고 보면 '혁명이 배반당했구나'라고만 느낄 수도 있지만 더 무서운 것은 나폴레옹을 위시한 돼지들이 스노볼을 쫓아내고 스스로 하나의 권력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무지하거나 소극적이거나 힘이 없는 동물들은 선동가 역할을 하는 돼지 스퀼러의 언변에 속아넘어갈 뿐이다. 그들은 뭔가 잘못되어간다고 느끼면서도 이를 표현하지 못하며, 처음의 '동물주의' 정신이 하나씩 변질되는 것을 막지도 못한다. 참으로 무력한 그 모습이 안타까웠다.

앞에 소개한 글귀에서 동물을 인간으로 바꿔보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인간은 다른 인간보다 더 평등하다." 이 지독한 역설이 역설처럼 느껴지기보다 사실인 것 같아 참 묘한 기분이 든다...


---
우석훈씨의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도 다 읽었는데 정리를 하려고 해도 내가 정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망설이고 있다. 어떻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