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밤 기숙사 옥상에 올라 서울의 칙칙한 야경을 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네겐 어떤 이론이 있는가?"

남들이 해놓은 것을 공부하고 읊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독창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아니 적어도 내가 공부하는 분야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가. 물론 어려운 질문이고 게다가 지금 나의 수준에서는 택도 없는 말이기는 하다.

어렴풋이 예전부터 '부분과 전체'에 대한 고민을 해왔고(하이젠베르크의 책 <부분과 전체>의 영향이었나?) 생태계 속의 인간의 위치, 여러 피할 수 없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개인들의 노력과 그 결과로서 나타난 구조/조직의 흥망성쇠. 이는 복잡성과 그 핵심 개념인 발현/창발과도 연관되고 이는 바로 통계물리학이 주로 다루고 있는 개념들이기도 하다. 조화의 아름다움에 경탄하지만 부조화의 현실을 회피할 수도 없다... 등등.

또 이런 고민의 밑바닥은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생명이라 부를 수 없는 부분들로부터 생명이라 부를 수 있는 전체의 탄생. 또한 부분적인 조화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부조화의 불가피성. (이런 문장구조와 '불가피성' 따위 낱말은 별로 맘에 들지 않지만;;) 그래서 한 마디로 '모자이크 세상'이다.

머리 속에 떠다니는 이런 생각의 조각들은 있는데 이걸 구체화시키고 풍부하게 만들어내기 위한 도구(물리학이든 예술적 재능이든)가 부족하다. 그래서 그랬는지 오늘도 영어회화 강의를 듣고 연구실로 걸어오면서 '이 길이 맞는걸까?'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도 그나마;;; 내가 잘 할 수 있는 걸 택한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조지 오웰의 에세이 중 <나는 왜 쓰는가>의 한 문단을 옮긴다. 아래 '나이 서른쯤'에서 뜨끔;;

1) 순전한 이기심. 남들보다 똑똑해 보이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죽은 후에도 기억되고 어린 시절 자기를 무시했던 어른들에 보복하고 싶은 욕망. 이게 작가의 동기, 그것도 강한 동기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작가는 이 특징적 동기를 과학자, 예술가, 정치가, 법률가, 군인, 성공한 사업가 -- 말하자면 인류의 꼭대기 부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과 공유한다. 인류의 대다수는 그리 격렬할 정도로 이기적이지는 않다. 대개 나이 서른쯤을 넘기면 사람들은 개인적 야심을 버리고 대체로 남을 위해 살거나 일상적 일에 짓눌려 살아간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에는 소수의 재능 있는 인간들, 끝까지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보려는 고집센 인간들이 있고 작가는 이 부류에 속한다. 진지한 작가들은 대체로 저널리스트들보다 더한 허영과 자기 중심주의를 갖고 있다. 돈에 대한 관심은 덜 할지 모르지만.
- 조지 오웰, <동물농장>(민음사, 1998) 뒷부분에 수록된 에세이, 1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