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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동물농장>(1945)을 읽고나서 <카탈로니아 찬가>(1938; 정영목 옮김, 민음사, 2001)를 주문했고 틈틈이 읽다가 이제서야 책장을 덮었다. 책 표지의 사진이 어떤 사진인지 모르고 있다가 어제였나, 책날개 아래를 보니 "국제여단: 프랑코에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외국인들"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다시 표지를 보니 참 마음이 짠하다.

이 책은 바로 이 표지에 있는 사람들처럼 파시즘에 반대하여 싸우기 위해 스페인으로 건너가서 6개월 정도를 전선과 후방 등에서 지내다 온 조지 오웰 자신의 생생한 기록이다.

'옮긴이의 말'을 참고하면 1931년 좌익계 공화파가 스페인 제2공화국을 선언한 이후 좌우의 대립 등을 거친 후에 1936년 1월 선거를 통해 공화파, 공화좌파, 사회당, 공산당 등으로 이루어진 인민전선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런데 그해 7월 스페인령 모로코에 좌천되어 있던 프랑코가 군사반란을 일으키면서 내전이 시작된다.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처한데 반해 노동자들과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들은 군대를 모집하여 적극적으로 싸워 곳곳에서 이김으로써 스페인 혁명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뿐 아니라 혁명을 진전시키는 것까지 두 가지 목표가 있었던 셈이다. 오웰이 처음 스페인에 가서 느꼈던 혁명적 분위기도 그런 상황을 반영했는데, 즉 계급이 없이 모두 '동지'라 부르는 평등한 사회, 군대에서조차도 직급은 역할분담과 최소한의 명령체계로서만 존재했던 것이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스페인의 파시스트들을 돕기 위해, 소련은 파시스트에 대항하기 위해 스페인에 군대를 보냈다. 그런데 소련 공산당은 스페인 노동자들이 쟁취한 권력을 빼앗아 자신들의 통제하에 두려는 목적도 함께 갖고 있었고 이는 이후에도 계속 정치적 갈등을 낳는다. 그 갈등은 결국 바르셀로나의 시가전으로 폭발하는데, 소련 공산당의 명령을 받거나 이들과 한편인 세력들과 노동자들(주로 전국노동자연맹, 통일노동자당 소속)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된다.

그런데 공산당 일파는 자신과 다른 정치세력에 대해 파시스트나 파시스트와 공모하는 트로츠키주의자라고 낙인찍으며 프랑코에 맞서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내부의 분열을 조장한다. 물론 어떤 싸움에서나 그런 비방과 흑색선전이 없지는 않지만 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들에게 뒤통수를 치는 비열한 짓이었다.고 오웰은 주장한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분노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라고 오웰은 밝히고 있다. 당시 저자가 구해 보았던 여러 신문기사와 자료 등을 인용하면서 그런 비방이 얼마나 허위와 모순으로 가득찬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결국 통일노동자당은 불법화되고 관련자들은 잡히는대로 투옥된다.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다 병이 들어 치료도 없이 죽든 총살을 당해 죽든 알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오웰은 1936년 12월 스페인으로 갔다가 통일노동자당 의용군으로서 전선에서 몇 달을 보낸 후에 5월의 바르셀로나 시가전을 경험하며 스페인의 정치상황에 대해 비로소 적나라하게 알게 된다. 6월 중순 다시 전선으로 투입되었다가 목에 총상을 입고 치료 후에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왔으나 통일노동자당이 불법화되어 경찰에 쫓기다시피 해서 1937년 7월 스페인을 탈출하여 영국으로 돌아온다. 이 책은 1938년 1월에 탈고되었으나 공산당을 옹호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어서 4월에야 간신히 출판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역사적 배경을 잘 몰라서 정리가 잘 안되지만 스페인 내전의 복잡한 상황과 저자가 겪은 배반당한 혁명에 관해서는 감이 오는 것 같다. 혁명과 전쟁, 그리고 스페인과 스페인 사람들에 관한 저자의 느낌과 생각들이 종종 번뜩이는데, 특히 스페인 사람들의 '마냐나'(내일.이라는 뜻으로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된다는 식의 생활방식)에 대한 설명들은 인상적이었다.

문득 몇 년 전에 스페인에서 겪었던 일화가 생각났는데, 워크샵에 참석하러 갔는데 행사장과 숙소가 꽤 멀었음에도 안내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문의를 하기 위해서도 애를 먹고 한참을 헤맸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뭔가를 물어보면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참 열심히 설명해줘서 고마웠던 기억도 있다.

마지막으로 '전쟁의 타락'에 관한 한 문단을 옮기며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우리가 전선으로 돌아간 것은 바르셀로나 시가전이 끝나고 사흘쯤 뒤였을 것이다. 시가전이 끝나고 난 후라, 그러니까 신문에서 헐뜯기 경쟁을 보고 난 후라, 예전처럼 순진하고 이상주의적인 관점으로 그 전쟁을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스페인에서 몇 주 이상을 보낸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어느 정도씩은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 바르셀로나에 온 첫날 만났던 신문 특파원이 생각났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른 여느 전쟁과 마찬가지로 이 전쟁은 사기요." 그때 나는 그 말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 봐도 당시에는(12월이었다) 그 말이 진실이 아니었다. 5월에도 그랬다. 그러나 이제 점점 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실 모든 전쟁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점차 타락해 간다. 개인적 자유나 진실한 언론 보도는 군사적 효율성과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 2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