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정확하다(exact)라는 말은 해답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어림잡기(approximation)도 쓰지 않았다는 말이다. 현상으로부터 모형을 잘 정의한 후 그 모형의 정확한 해를 구하는 것은 보통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경우에 따라서 '정확하다'고 부를 수 있는지 없는지 헷갈리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모형을 수식으로 옮기거나 푸는 과정에서 잘 따져봐야 알 수 있다.

1987년 자연계에 많이 나타나는 1/f 잡음을 간단하면서도 보편적인 모형으로 설명하고자 페어 박(Per Bak) 등이 제시한 모래쌓기 모형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1990년에는 디팍 다(Deepak Dhar)에 의해 모래쌓기 모형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손으로 정확히 풀어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모래알을 i 자리(site)에 떨어뜨린 후 j 자리에 떨어뜨린 결과나 반대로 j 자리에 먼저 떨어뜨리고 i 자리에 떨어뜨린 결과나 같다는 성질을 명확히 함으로써 아벨리안 모래쌓기 모형이라 이름붙여졌다. 물론 다양한 버전의 모래쌓기 모형이 모두 아벨리안은 아니고 두어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만 한다.

아벨리안 모래쌓기 모형도 모형 자체는 간단하지만 이를 정확히 풀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그중에서도 가장 간단한 시스템인 1차원 아벨리안 모래쌓기 모형부터 시도해본다. 1992년 루엘과 센의 논문이 그것인데 이들은 수학자들인 것 같다. 길이가 L인 1차원 격자 위의 각 자리에 모래알은 0개 또는 1개가 있다. 각 자리의 모래알이 2개가 되면 무너지는데(toppling) 그 자리의 모래알 2개를 양 옆에 하나씩 주는 것이다. 양끝 자리에서 무너지면 한 알은 시스템 밖으로 나간다.

되돌이 배열(recurrent configuration)은 L+1개이며 이래저래 풀면 사태 크기가 s일 확률을 구할 수 있다. 이게 바로 구하고자 하는 사태 크기의 분포인데 조건형 집합의 원소의 개수 형식으로 주어지므로 이걸 또 계산해야 한다. 사실 이 이후에는 수식을 다 따라가지 못했다. 결과만 보면 모래쌓기 모형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는 사태 크기 분포의 거듭제곱 법칙(power-law)이 1차원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초록의 마지막 문장도 "None of the models shows criticality."다.

하지만 2차원 이상에서는 임계성이 나타난다. 이는 통계물리의 고전적인 모형인 이징 스핀(Ising spin) 모형의 결과와도 비교해볼 수 있다. 이징 모형도 1차원에서는 임계성이 나타나지 않고 2차원 이상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2차원 이징 모형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여러 풀이 방식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3차원은 아직까지 정확히 풀어낸 사람이 없다.

모래쌓기 모형도 2차원에서 정확히 푼 사람이 없다. 작년에 출판된 다(Dhar)의 논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다가 없다면 없는 걸거다. 어쨌든 1차원 모래쌓기 모형에서 임계성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되돌이 배열이 시스템 크기에 선형으로 증가하기 때문일 거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2차원 모래쌓기 모형에서는 되돌이 배열의 개수가 시스템 크기의 지수함수로 커진다고 한다. 예전에 상전이의 원인에 관한 글에서 썼듯이 상전이라는 정성적인 현상을 정량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은 시스템의 어떤 물리량이 무한대로 발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그게 모래쌓기 모형에서 꼭 되돌이 배열의 밀도일 필요는 없지만 그 밀도가 발산하지 않는다는 것은 발산하는 양이 없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게 한다.

말이 꼬이는데, 하여간 2차원 모래쌓기 모형을 정확히 풀어내는 일은 아직 풀리지 않았으므로 도전해볼만하다. 그리고 모래알이 무너질 때 한쪽 방향으로만 모래알이 이동하는 '방향성 있는 아벨리안 모래쌓기 모형(directed abelian sandpile model)'은 랜덤 걷기 문제와 대응시켜서 최소한 사태 크기 분포의 거듭제곱 지수는 정확히 구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