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을 오늘 보았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넥시(NECSI; New England Complex Systems Institute) 그룹에서 연구한 건데 제목을 한국어로 옮기니 뭔가 어색하다. 원래 제목은 "Global Pattern Formation and Ethnic/Cultural Violence"이다. violence도 폭력이라기보다는 분쟁으로 옮기는 게 더 나은 듯하다.

민족적/문화적으로 다른 그룹 사이의 국지적인 분쟁과 폭력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기존의 연구들이 잘 무시해온 지리적 영향을 고려함으로써 이런 현상을 이해하는데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2차원 격자 위의 각 자리에 특정한 민족 또는 문화를 지닌 행위자를 하나씩 올려놓는다. 그리고 이 행위자들은 자신과 같은 특성을 지닌 사람들을 선호하는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그러다보면 당연히 같은 민족끼리 또는 같은 문화적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끼리 클러스터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분쟁이 어떤 경우에 일어나는가에 대해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한다. 여러 민족/문화적 정체성이 잘 혼합되어 있는 지역에서는 어느 정도 다양성이 인정되어 분쟁이 일어날 소지가 적고, 또한 정체성이 잘 성립되어 있는 지역에서도 구역이 분명해져서 굳이 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그 중간 어디쯤 애매한 영역에서는 분쟁이 잘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위의 모형에 대해 보면 한 그룹의 클러스터가 다른 그룹에 의해 둘러싸인 경우에 이를 잘 정량화하여 그 값이 어떤 문턱값보다 크면 분쟁이 일어난다고 판단한다. 이 방법을 1990년대 초의 유고슬라비아와 그 주변 지역에 대해 실제로 적용해보았다. 1991년의 인구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초기조건을 잡고 그에 따라 행위자들을 배치한 후 위의 모형 규칙에 따라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분쟁이 일어날 것 같은 지역을 예측한다. 그런데 그 예측된 지역이 실제로 90년대 초반에 벌어진 여러 분쟁들이 일어난 지역과 통계적으로 잘 맞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인도에 대해서도 비슷한 사례연구를 했다.

민족/문화적 특성의 형성과정이나 각 그룹 사이의 복잡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요소들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대신 지리적 영향만을 고려하여 '같은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끼리 모이려는 성질'을 가정한 것만으로도 실제 현상을 어느 정도 예측/설명해낼 수 있었다는 것이 <사이언스>에 실린 근거가 되었다고 추측해본다. 사실 그런 연구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어서 내 추측의 신빙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것을 밝힌다.

그래서 민족/문화적 그룹들 사이의 분리정책만이 최선인가?라고 물을 수 있다. 이 논문의 마지막 문장을 옮기면, "Peaceful coexistence need not require complete integration."이고 이게 저자들의 생각을 잘 나타내주는 것 같다.

아이디어만 놓고 보면 단순해보인다. 이들의 모형은 셸링의 인종분리모형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분쟁의 발생을 도입했고 이를 통해 실제 현상을 잘 설명해내는 것이 강점인 듯 하다. 또한 실제 인구조사 자료와 분쟁 자료들을 모으는 일도 힘들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