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잡이 걷기(random walk; RW)는 통계물리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주어진 공간 위를 편향(bias) 없이 랜덤하게 움직이는 입자 또는 행위자가 있을 때 이 입자의 시간에 따른 위치에 관한 통계적인 기술(description)을 하고 이로부터 여러 물리량의 관계를 밝혀내는... 일들을 많이 해왔다. 물론 편향을 넣을 수도 있고 공간 자체가 네트워크일 수도 있고 그외 온갖 변화가 가능하다.

가장 기본적인 결과 중 하나는 입자의 원점으로부터의 거리(R)가 움직인 시간(T)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이다. 답은 R ~ T^(1/2)이다. 이 관계식은 공간의 차원과 무관하게 성립한다. 그 이유를 간단히 살펴보겠다.

일반적인 d 차원 사각 격자 위의 한 점에서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은 2d 가지가 있다. 각 방향을 각각 단위 벡터로 나타낼 수 있고 특정한 방향으로의 편향이 없다고 했으므로 각 방향으로 갈 확률은 모두 똑같이 1 / (2d)가 된다. 시각 s(이산적인 시간이라고 하자)에 2d 가지 중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확률변수 x_s라고 하자. (x를 진하게 한 것은 벡터임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마구 걷다보니 이전에 어느 방향으로 움직였는지는 지금 움직이려는 방향과 통계적으로 무관하다. 즉 서로 다른 시간에 대한 두 x의 상관(correlation)은 0이다. 이를 표현하면 <x_s x_t> = δ(s,t)이다. 자기자신과의 상관은 1이 된다.

시간이 T만큼 흐른 후 입자의 위치 r(T)는 x_s들을 더하면 된다.

r(T) = Σ_{s=1~T} x_s

물론 이 벡터도 확률변수다. 원점으로부터의 거리의 평균값을 구하기 위해 자신에 대해 내적을 한다.

R^2 = <r(T)^2> = <r(T) r(T)> = Σ_{s,t=1~T} <x_s x_t> = T          식 (1)

즉 입자가 움직인 공간의 차원과 무관하게 R과 T의 관계에 대한 지수는 1/2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편향이 없으므로 평균적으로는 항상 원점 위에 있으므로 <x_s> = 0이므로 따라서 <r(T)> = 0이다.

사실 이 결과는 알고 있던 것이지만 이를 직관적으로 이해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직관'이 통하기에는 까칠한 면이 있다. 애초에 확률변수, 통계적 상관관계 등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껏 그림을 그려봐야 수없이 많은 경우 중 한 두 개의 실제 사례를 그려놓을 뿐이고 그로부터 통계적인 양을 직관적으로 유추해내는 일이 된다. 뭐 그 외의 방법도 없다.

일단 알 수 있는 것은 위에서 '움직인 시간'은 '움직인 거리'에 비례하는 반면, '원점으로부터의 거리'는 '변위의 크기'에 해당한다. 기다란 실 하나를 대충 던졌을 때 그 실의 한 끝을 원점이라고 하고 다른 끝의 위치를 볼 수 있다면, 그 실의 길이가 위에서는 T에 해당하고 양 끝 점 사이의 직선 거리가 R에 해당한다. 뭐 나쁘지 않은 그림이다. 그런데 이 결과가 모든 차원의 공간에서 성립하는가는 여전히 새로운 이해를 필요로 한다.

약간의 트릭이기는 하지만 이런 설명은 어떨까? 2차원 격자 위의 원점에서 +x 축으로 한 칸, +y 축으로 한 칸 움직였다고 하자. 시간은 2만큼 흘렀고 원점으로부터의 거리는 sqrt(2)가 된다. 역시 R = T^(1/2)다. 3차원 격자 위의 원점에서 +x 축, +y 축, +z 축 방향으로 연이어서 한 칸씩 움직였으면 T는 3, R은 sqrt(3)이다. 역시 R = T^(1/2)이 성립한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통계적 속성'보다 '기하학적 구조'에 기대고자 하는 욕망에 따른 것인데 뭐가 더 맞는 것인지는 아직 헷갈린다. 그래도 식 (1)에서 정확히 보였듯이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가정과 편향이 없다는 마구잡이 속성에 의한 결과라는 것은 일단 분명하다. 아니면/또는 원점으로부터의 거리와 실제 움직인 거리 사이에 이런 제곱근의 관계가(공간 차원과 무관하게) 있어서 나온 결과인지도 아직 분명하지 않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