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을 출발한 마구잡이 걷기(random walk; RW)가 '언젠가는' 원점으로 되돌아올 것인가 아니면 되돌아오지 않고 끝없는 방황을 할 것인가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예를 하나 생각해보자: 술에 취해 떠나간 연인이 있다고 해보자. 그 술주정뱅이는 술에 취해 랜덤하게 마구잡이로 걷는다. 그 술주정뱅이 연인이 나에게 다시 돌아올 확률을 알고 싶다거나, 아니면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지'를 알고 싶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될 것이다.

RW에 대한 으뜸방정식(master equation) 또는 퍼짐방정식(diffusion equation)을 풀어서 답을 얻을 수도 있지만 유도과정이 복잡하므로 그냥 간단히만 알아보겠다. [참고: S. Redner, A Guide to First-Passage Processes (2001)]

RW에 대한 이전 글에서 차원에 상관없이 얻어진 r ~ t^(1/2)이라는 결과를 이용한다. d차원 공간이라고 하면 대략 r^d 정도의 점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기껏해야 t개 정도의 점만을 RW는 밟고 지나갈 수 있다. 가능한 점들 중 실제로 지나간 점들의 밀도는 ρ ~ t / r^d ~ t^(1 - d / 2)가 된다. 즉 d가 2보다 작거나 같으면 ρ는 유한한 값을 갖지만 d가 2보다 크면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 ρ는 0으로 수렴한다.

다시 말해서, 1, 2차원 공간에서는 RW가 언젠가는 원점으로 되돌아오며 또한 모든 점을 무한히 되풀이하여 지나가고 또 그러는데 필요한 시간도 무한히 길어진다. 하지만 2보다 큰 차원의 공간에서는 RW가 언젠가 원점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끝없는 방황의 길을 걸어갈 확률이 0보다 큰 값으로 존재한다.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되돌이(recurrence)라고 하고 그렇지 못한 것을 지나감(transience)이라고 한다.

여기서 되돌이와 지나감을 나누는 차원은 2인데 이 결과는 r ~ t^(1/2)의 지수 1/2이 차원에 무관하게 얻어졌다는 사실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전 글에서 '차원에 무관한 성질'을 강조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레드너(Redner)의 설명에 따르면 3차원 이상에서는 만나서 반응하는 물질들이 초기 위치와 무관하게 만나서 반응할 수 있으므로 공간적 위치가 덜 중요해지지만, 2차원에서는 가까운 물질들이 먼저 반응하므로 그만큼 초기의 공간적 배치가 중요해진다고 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평균장(mean field) 어림이 잘 적용되는 차원(3차원 이상)과 그렇지 않은 차원(2차원 이하)에 관한 논의와 일맥상통한다.

술주정뱅이 연인이 2차원 공간 위에서 움직인다면 나에게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확률은 1이다. 그 술주정뱅이도 인간이라 날개가 없어서 위아래로는 움직이지 못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다시 만나 또 속을 썩일 게 분명하니 불행이라고 해야 할까.

만일 RW가 특정한 방향으로 편향되어 있다면 어떻게 될까도 생각해보자. 이제 이 술주정뱅이 연인은 나 말고 다른 누군가를 향해 랜덤하게 걷는다고 하자. 내가 가만히 내 자리에 멈춰 있었듯이 그 다른 누군가도 그 자리에 멈춰 있다고 가정한다. 어짜피 갈 사람 가도록 내버려두되 그가 가는 길에 꽃배달 서비스를 이용해서 진달래 꽃이나 뿌려두었다고 하자. 그 술주정뱅이가 내가 시켜서 뿌려놓은 진달래 꽃을 적어도 한 번씩은 밟고 갈 것인지 아닐지를 위에서처럼 알아보겠다는 것이다.

d차원 공간이라면 한 차원은 편향된 방향이고 나머지 d - 1차원은 편향이 없는 차원이 된다. 편향이 있는 차원으로는 시간이 t 흐르는 동안 t에 비례하는 길이만큼 움직일 것이고 나머지 차원들 각각에서는 역시 앞의 결과를 이용하여 r ~ t^(1/2)만큼 움직일 것이다. 즉 ρ ~ t / [t * r^(d - 1)] ~ t^[(1 - d) / 2]이다. 편향이 있으므로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확률보다는 편향의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모든 점을 다 밟고 지나갈 거냐 아니냐가 관심사가 된다. 1차원에서는 다 밟고 지나간다고 볼 수 있지만 1보다 큰 차원에서는 역시 띄엄띄엄 가보지 못한 점들을 지나치면서 계속 편향된 방향으로 나아간다. 역시 술주정뱅이는 2차원 평면 위를 움직이므로 뿌려놓은 진달래 꽃을 모두 즈려 밟고 가지는 못할 것이다.

졸리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