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풍차나라님의 덧글에 덧글을 달다가 새로운 글을 이어서 씁니다. 부분과 전체의 관계에 대한 저의 결론을 다시 써보겠습니다. 전체를 W, 이 전체를 이루는 부분들, 즉 구성요소들을 각각 P_i, 그리고 i번째 부분과 j번째 부분의 상호작용을 I_ij 라고 하면 다음과 같은 식을 쓸 수 있습니다.

W = Σ_i P_i + Σ_{ij} I_ij

즉 전체는 부분의 합과 그 부분들 사이의 상호작용의 합과 같다는 말입니다. (더 일반적으로는 세 개 이상의 부분들이 한꺼번에 상호작용하는 항들(I_ijk, I_ijkl, ...)도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이 명제는 아마도 부분과 전체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진술이 아닌가 합니다. 연구 대상/현상에 따라 이 일반적인 명제의 특수한 경우를 다룬다고 보면 될 듯 합니다. 전체를 이루는 부분 각각이 전체에 대해 갖는 영향력이 워낙 커서 부분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무시될만한 수준인 어떤 현상이 있다면 위 식의 두번째 항이 매우 작다고 가정하면 되겠죠. 반대로 부분 각각은 미미하지만 이들의 상호작용 구조에 따라 전체의 성질이 좌지우지된다면 첫번째 항을 무시하는 접근방법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주로 부분의 합보다 상호작용의 합이 더 중요한 경우에만 보편성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동시에 부분의 합에 해당하는 세부사항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복잡한 사람과 단순한 스핀은 P_i의 관점에서 매우 다르지만, 상호작용 I_ij의 성질이 비슷하다면 스핀들의 집합이나 사람들의 집합이나 그들이 보여주는 특성은 비슷할 수도 있다고 본 것이죠.

풍차나라님의 의견에 대한 저의 답은 결국 위 식에서 어떤 항을 더 중요하게 볼 것인가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지 않을까 입니다. 물론 두 항을 모두 고려해야만 한다면 그러면 됩니다. 극도로 단순화했다고 해서 복잡한 현상의 어떠한 특징을 잡아낼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복잡한 모형을 이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현상의 본질을 잘 설명해내리라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덧붙여서, 공부를 더 하다보니까 제가 내렸던 결론에 어느 정도 변화가 필요하겠더라고요. 보편성 = 상호작용의 특성, 세부사항 = 부분의 특성이라고 말해왔는데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통계물리에서 보편성 분류(universality class)를 나누는 기준으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상호작용의 공간 차원, 바닥 상태에서 스핀의 회전(또는 대칭) 자유도입니다. '회전 자유도'라는 말은 제가 편의상 쓴 말이고 회전군의 지수(index of rotational group O(n))가 정확한 말입니다.

예를 들어 2차원 이징 스핀 모형은 2차원이기만 하면 그 위에서의 상호작용이 사각 격자인지 삼각 격자인지에 상관 없이 같은 집합적 행동을 보여줍니다. 사각이냐 삼각이냐하는 세부사항은 중요하지 않고 2차원이라는 사실만이 중요하고 그것이 보편성입니다. 바닥 상태에서 스핀의 회전 자유도에 대해서는 바로 떠오르는 예가 없네요.

하나 더 짚어야 할 점은 상호작용의 특성은 부분의 특성에 의존한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한테 영어로 상호작용하기를 기대할 수 없으니까요. 또 반대의 예도 찾을 수 있는데요, 아무리 다양한 언어를 쓸 수 있는 사람이라도 특정 언어를 이용하는데 따른 이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모두 그 언어를 쓰려고 할 것입니다. 스핀의 자유도가 높아도 외부의 작은 힘에 의해 실질적인 자유도가 떨어지는 경우죠. 그래서 스핀의 자유도가 보편성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바닥 상태'의 스핀의 자유도만이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얘기가 정리도 안 되고 복잡해졌네요. 나중에 언젠가는;; 더 정리된 형태로 얘기할 수 있기를 바라며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