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하워드 리 교수의 논문들을 다시 보고 있다. 지난 4-5월에 잠깐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대충 방법론까지만 알고나서 접었더랬다. 옛날부터 이 분이 해온 연구가 다 연관되는 거라서 뭐 하나를 알려면 이 분이 쓰신 80년대 논문들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그 논문들은 60년대의 선형반응이론(linear response theory)에 관한 논문들을 참고문헌으로 달고 있어서 그것들까지 찾아봐야 했다. 열심히 수식을 쫓아가기는 했지만 그 의미는 증발해 사라져버렸다.

이 분이 올 봄에만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 PRL)에 논문 두 개를 내셨는데 그것들을 이해하는 게 목표다. 통계물리에서 별다른 증명 없이 전제되어온 에르고드 가설(ergodic hypothesis; EH)이 언제나 성립하지 않으며 언제 왜 성립하지 않는지를 밝히는 연구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시스템의 어떤 관측가능량(observable) A(t)를 생각하자. 이에 대해 EH는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lim_{T→∞} 1/2T Int_{t=-T~T} A(t) dt = <A>

왼쪽은 A의 시간 평균을, 오른쪽은 앙상블 평균을 나타내며 두 평균이 같다는 것이 에르고드 가설이다. 즉 A(t)가 시간에 따라 A의 상태공간을 돌아다니는데 충분한 시간이 흐르면 A가 상태공간 전체를 고르게 지나갔다는 것을 뜻한다. EH가 성립하는 경우 A의 평균값을 얻고 싶다면, 시간에 따른 A(t)를 쫓아다니면서 힘들게 평균을 낼 필요 없이 더 쉽게(?) 얻을 수 있는 상태공간에 대한 정보로부터 각 상태에 대해 A를 구해서 평균(이게 앙상블 평균이다)내면 된다.

특히 평형통계물리에서 다루는 대상이나 모형들에서는 어떤 관측가능량의 시간에 따른 변화를 운동방정식으로부터 풀어내기보다는 그 양이 가질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상태를 정의하여 그 상태에 대한 평균을 내는 것이 문제를 세팅하는데 더 깔끔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먼저번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실제 우리가 실험을 통해 관측하는 것은 시간 평균이지 앙상블 평균이 아니므로 경험과학으로서의 통계물리를 연구하고자 한다면 시간 평균이 더 근본적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여간 위 식을 선형반응이론의 결과와 한 가지 트릭(?)을 이용하여 다시 정리하면 시스템의 정적 감수율(static susceptibility) χ와 동적 감수율(dynamic susceptibility) χ(t)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변형된다.

χ(z = 0) = χ

시간 t가 z라는 변수로 바뀐 것은 라플라스 변환을 했기 때문이다. r(t)를 A(t)의 자체상관함수(autocorrelation function) 즉 r(t) = (A(t), A) / (A, A)라고 하자. 여기서 (A, B)는 두 변수 A, B의 내적을 뜻한다. A는 A(t = 0)을 줄여 썼다. r(t)는 어떤 시계열이 시간 t만큼 지연된 자기 자신에 대해 갖는 상관관계를 나타낸 값이다. 규칙적인 시계열이 아니면 시간 지연 t를 무한대로 보냈을 때 상관이 줄어들다 없어지는데 그 여부가 중요하다.

r(t→∞)가 0인 경우를 비가역성(irreversibility)이라 부른다. 이를테면, 매우 오래전의 내 모습과 현재의 내 모습 사이에 상관이 전혀 없다는 말인데 이런 상태라면 매우 오래전의 내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비가역)고 말해도 된다. 몇몇 사람들은 이 비가역성이 에르고드성과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여겨왔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없어야 상태공간을 골고루 돌아다닐 수 있고 그게 바로 에르고드성(ergodicity)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언제나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교수(this professor or professor lee?)의 주장이다. A(t)에 관한 운동방정식을 풀면 감수율에 관한 일반적인 식을 아래처럼 얻을 수 있다.

χ(z) / χ = 1 - z r(z)

여기서도 r(z)는 r(t)를 라플라스 변환한 것이다. 위 식에서 z를 0으로 보낼 때 우변이 1이면 앞서 말한 EH가 성립하는 조건이 된다. 이를 위해서 z를 0으로 보내는 극한에서 r(z)는 0이거나 발산하지 않는 상수여야 한다. 그런데 r(z)가 0으로 수렴하는 경우는 또 다른 의미에서 기억함수(memory function)의 발산을 의미하는데 이건 나중으로 미루자.

정리하면 r(z = 0)이 0이거나 무한대이면 EH는 성립하지 않고 r(z = 0)이 0보다 큰 상수일 때에만 EH가 성립한다. 그런데 r(z = 0)은 곧 Int_{t=0~∞} r(t) dt이므로 r(t)의 모양이 중요해진다.

이제 비가역성[r(t→∞) = 0]과 에르고드성[0 < r(z = 0) < ∞]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r(t→∞) ≠ 0이면 r(z = 0)은 항상 발산하지만, r(t→∞) = 0인 경우에 r(z = 0)은 발산할 수도 수렴할 수도 있다. 가장 간단한 예로 r(t) = 1 / t인 경우 r(t→∞) = 0이지만 r(z = 0)은 log 함수로 발산한다. 즉 비가역성은 에르고드성의 필요조건은 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리고 에르고드성의 조건은 r(z = 0)가 유한하냐에 달려 있으므로 이걸 에르고미터(ergometer; 에르고드 판별기?) W라고 부르자고 한다.

또한 리 교수가 제시한 EH에 대한 0 < W < ∞라는 조건은 EH에 대한 버코프 정리(Birkhoff's theorem)의 세 가지 조건(즉 에르고드성이 성립할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다. 버코프 정리가 수학적으로 추상화된 내용이라면 리 교수의 에르고미터는 물리적으로 관측가능한 양에 대한 성질이므로 더 구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해도 우리가 어떤 양에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에르고드성이 나타날 수도 있고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시스템의 에르고드성'보다 '어떤 관측가능량에 대한 에르고드성'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 참고문헌
[1] M.H. Lee, "Ergodic Theory, Infinite Products, and Long Time Behavior in Hermitian Models," Phys. Rev. Lett. 87, 250601 (2001)
[2] M.H. Lee, "Birkhoff's Theorem, Many-Body Response Functions, and the Ergodic Condition," Phys. Rev. Lett. 98, 110403 (2007)
[3] M.H. Lee, "Why Irreversibility Is Not a Sufficient Condition for Ergodicity," Phys. Rev. Lett. 98, 190601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