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니 지난 5월의 마지막 날에 '경로 적분과 분배함수 그리고 비평형과정'이라는 글을 이 블로그에 썼다. 어제 입자물리를 연구하시는 분과 점심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궁금한 게 생겼는데 아직 깊이 생각해볼 시간을 갖지 못했다.

내가 먼저번에 썼던 저 글에서는 경로 적분과 분배함수가 적분 변수를 바꿔주면 바로 대응된다고 했는데 한가지 이상했던 점은, 경로 적분은 시스템의 라그랑지안 L을 가능한 모든 경로에 대해 적분하는데 반해 분배함수는 시스템의 해밀토니안 H를 가능한 모든 상태에 대해 적분한다. (그런데 L이나 H를 그냥 적분하는 건 아니고 각각 exp(iS / h), exp(-βH)에 대한 적분(또는 합)이다. 여기서 S는 L을 시간으로 적분한 것으로서 작용(action)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h는 플랑크 상수다.) 그래서 단순히 적분 변수를 바꾼다고 이 두 가지가 대응되지는 않아 보였다.

그렇다면, 경로 적분은 L을 이용하는데 분배함수는 왜 H를 이용할까. 그래서 다시 경로 적분 강의록(여기의 링크 참고)을 들춰보니 경로 적분에서도 H로 시작하지만 식을 전개하다보면 L로 변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냥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그리고 경로 적분도 H로 시작하므로 분배함수와 직접 대응되는 것도 틀리지 않았다. 어쨌거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경로 적분과 분배함수의 대응을 생각해보자.

경로 적분을 보자. 시스템이 초기(t = 0)에 |q>라는 상태에 있으며 시간이 흐르면 시스템의 해밀토니안 H에 의해 상태가 변하여 시각 t에 exp(-iHt) |q>라는 상태에 도달한다. 그때 이 시스템이 <q'|에 있을 확률은 <q'| exp(-iHt) |q>인데 이를 간단히 K(q', t; q, 0)라고 하자. 이 K는 H로부터 직접 계산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이걸 q에서 q'으로 가는 모든 경로에 대한 적분으로 다시 써서 구할 수도 있는데 그게 바로 경로 적분이다.

통계물리의 분배함수는 보통 Z로 표현한다. Z = Σ exp(-βH) 이며 β = 1 / (kT)이다. k는 볼츠만 상수, T는 온도다. 여기서 Σ은 시스템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상태에 대한 합(또는 적분)이다. 위의 K의 정의와 Z를 비교해보면 이 둘이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it를 β로 바꿔주고, K를 모든 q = q'에 대해 더해주면 Z가 된다. 편의상 적분이나 합이나 모두 ∫로 쓰겠다.

∫dq K(q, -iβ; q, 0) = Z(β)

위 식을 그대로 풀어보자면, 상태공간의 모든 상태에 대해 그 상태가 H에 따라 변하는데 -iβ의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확률을 모든 상태에 대해 적분해주면 온도 T에서의 시스템의 분배함수가 된다.는 말이다. 일단 β는 실수이므로 -iβ는 허수인데 '허수 시간'이라는 개념이 당황스럽지만... 이걸 제외하면 그나마 그럴 듯 한가?;; 이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게 있다. 지난 여름 이탈리아 통계물리 학회에서 찍어온 사진을 보시라.

이 사진을 보면 Z가 원통 모양이며 그 원통의 둘레가 β가 된다. 온도가 0인 바닥상태(ground state)에서 Z의 둘레는 무한대로 발산하는데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거냐;; 온도가 무한대인 완전히 들뜬상태(excited state)에서 β = 0이므로 원통의 반지름은 0으로 수렴하고 그에 따라 각각의 상태 q(사진에서는 x)는 제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다. 움직일 시간이 없으니 움직일 수 없다. 그래서 또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거냐;;;;

위 사진에도 써 있고 그 글에도 인용한 글귀가 있는데 "d 차원의 양자역학은 d+1 차원의 통계역학과 같다"는 피셔 할아버지의 말이다. 일단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