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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mazon.com

이 주제는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 어제 연결망 연구로 유명한 바라바시(A.-L. Barabasi)가 1995년에 통계물리학의 대가인 스탠리(H. Eugene Stanley)와 함께 쓴 책 <Fractal concepts in surface growth>(표면 성장의 쪽거리 개념들)를 조금 봤다.

어떤 입자들이 하늘에서 중력에 이끌려 떨어져서 바닥에 쌓이는 걸 생각하자. 입자가 떨어지다가 어떤 입자들의 기둥이나 가지를 스치는 경우에는 더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그 기둥이나 가지에 붙어버릴 수 있다(overhang).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 구멍이 듬성듬성 뚫려 있는 입자들의 더미가 형성될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증착(deposition)'에 의한 표면 성장 현상을 통계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다.

위에 설명한 간단한 예를 비행증착(ballistic deposition; BD, 또는 탄도증착)이라 부른다. 이보다 더 단순한 경우는 입자가 기둥이나 가지에 붙지 않고 그냥 떨어지는 경우다. 아래쪽에 공간이 있으면 무조건 거기까지 떨어지므로 구멍이 생기지 않는다. 이걸 랜덤증착(random deposition; RD, 또는 마구잡이증착)이라 부른다. 입자들이 떨어진 자리에 붙어버릴 수도 있고 표면을 따라 주변의 더 낮은 위치로 움직일 수도 있다. 이건 확산하는 랜덤증착(RD with diffusion; 편의상 RDD라 부르자)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표면의 기울기가 특정한 값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만 증착이 되는(또는 입자가 증발하는) 현상도 생각해볼 수 있는데 이런 건 고체 위 고체(solid-on-solid; SOS) 모형으로 알려져 있다. 이 모형에서는 기둥이나 가지에 걸리는 경우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조건도 포함한다. SOS 중에서도 한 자리와 옆 자리의 높이의 차이가 0 또는 1로 제한되는 경우를 제한된 SOS(restricted SOS; RSOS) 모형이라 부르며 이 모형은 숭실대 물리학과 김진민 교수님에 의해 처음 연구되었다.

각 모형들은 띄엄띄엄 규칙(discrete rule)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연속적인 편미분방정식으로도 나타낼 수 있다. 시각 t에, 입자가 쌓이는 바닥의 각 위치 x에서 입자의 높이를 h(x,t)라고 하고 h에 관한 운동방정식을 쓸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형으로부터 알고 싶은 내용은 표면이 얼마나 거칠어질 것인가이다. 이 거친 정도를 시각 t에서 w(t)라고 하고 w(t)는 h(x,t)의 표준편차로 정의된다. w는 또한 시스템의 크기 L의 함수이기도 하다. 그래서 w(t,L)로 쓴다.

RD의 경우 시간이 흐를수록 평균높이는 일정한 속도로 증가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높이도 같은 속도로 높아진다고 하고 h를 기술하는 것이 편하다. h에 관한 운동방정식은 다음과 같다.

∂h(x,t) / ∂t = η(x,t)

우변의 η는 노이즈인데 평균이 0이고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상관(correlation)이 없다고 가정한다. 이걸 풀면 w(t) ~ t^(1/2)이고 시스템 크기와 상관이 없다.

RDD의 경우 표면에 떨어진 입자들이 확산하는데 높은 곳에 떨어지면 좀더 낮은 곳을 찾아가므로 표면이 매끈해진다. 이건 h를 x로 두 번 미분한 항을 넣어서 표현할 수 있다.

∂h(x,t) / ∂t = ν ∇^2 h(x,t) + η(x,t)

ν에 따라 표면이 매끈해지는지가 결정되므로 표면장력의 세기를 조절하는 변수로 볼 수 있다. 이 식을 에드워즈-윌킨슨 방정식(Edwards-Wilkinson equation; EW)이라 부른다.

처음에 입자가 하나도 없는 평평한 바닥에서 입자를 증착하기 시작하면 거칠기 w(t,L)가 점점 증가할 것이다. 시간에 따라 커지는데 그 정도를 w ~ t^β라고 하자. 표면장력에 의해 각 위치의 높이는 옆 위치의 높이와 상관을 갖게 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상관의 영향 범위가 커진다. 즉 상관길이가 길어지는데 무한정 길어질 수는 없고 시스템 크기 L에 의해 제약된다. 그래서 거칠기 역시 t가 커진다고 계속 커지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일정한 값으로 포화(saturation)된다. 그 값을 w_s라고 하면 w_s ~ L^α로 쓸 수 있다. 또한 w(t)가 t에 따라 증가하다가 포화되는 시점을 t_c라고 하면 t_c ~ L^z로 쓴다. 여기서 도입한 세 지수 α, β, z 사이에는 z = α / β라는 관계가 있다.

공간 차원이 d라면 EW에서 α, β, z를 눈금잡기 분석을 하여 구해낼 수 있다.

α = (2 - d) / 2, β = (2 - d) / 4, z = 2.

BD의 경우에는 표면이 위아래로만 성장하지 않고 옆으로도 성장한다. 앞서 말한대로 입자가 떨어지다가 기둥이나 가지에 붙어버리기 때문이다. 더 일반적으로 표면에 수직한 방향으로 표면이 성장하므로 이러한 효과는 h를 x로 한 번 미분한 것의 제곱을 넣어주면 된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

∂h(x,t) / ∂t = ν ∇^2 h(x,t) + λ/2 [∇h(x,t)]^2 + η(x,t)

표면 중 위로 튀어나온 봉우리 모양이 있다면 방금 넣은 항에 의해 봉우리 근처가 불룩해지는 효과가 생긴다. 이 방정식을 카다르-파리시-장 방정식(Kardar-Parisi-Zhang equation; KPZ)이라 한다. EW에서처럼 KPZ도 눈금잡기 분석을 할 수 있는데 EW에서처럼 나이브하게 접근하면 안되고 RG 계산을 해야 한단다. 왜냐하면 각 항들의 조절변수들(ν, λ, D; D는 η에 관련된 상수)이 얽혀 있기 때문이란다.

너무 길어졌는데 외부 구동과 담금질 노이즈가 있는 KPZ에서 나타나는 꽂음빼기 전이(depinning transition)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소개한다.

그리고 표면 성장 모형을 보면서 머리 한 구석에서는 이걸 경제 성장 모형으로 해석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에서 부(wealth)가 일정한 비율로 떨어지고(물론 노동에 의한 생산이겠지만) 그걸 바닥에서 받는 사람들이 부를 축적하는 거다. RD로 이를 모형화한다면 누가 부를 받든 서로 상관이 없으므로 빈부격차(즉 위에서 거칠기 w에 해당한다)는 무한히 커질 것이다.

RDD의 경우 부를 많이 가진 사람이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를 분배해줌으로써 w는 포화되는데 그 포화되는 정도는 시스템 크기(즉 그 나라의 경제규모 L)에 의존한다. 빈부격차가 일단 포화되면 더 이상 커지지 않는다. 작은 나라일수록 격차가 적어져서 상대적 빈곤감이 줄어든다.

BD의 경우 입자가 떨어지다 기둥이나 가지에 걸리는 건 이를테면 부자 옆에 사는 사람이 떡고물을 얻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래서 최고 부자의 재산은 더 늘어나지 않지만 측근들이 배를 불릴 수 있다. 하지만 BD에서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으므로 사실 측근들의 부유함은 거품인 경우가 많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언젠가는 거품이 빠지고 진짜 부자만 살아남게 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꽂음빼기 전이를 보면 또 재미있는 얘기들이 나올 것 같다.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