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글에서는 제 생각도 정리할겸 주절주절 썼습니다. 이제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관계에 대해서도 주절거려보겠습니다.

우선 여러 용어들을 쓰다보니 혼란이 생길 수 있으므로 문제를 다음처럼 단순화해보겠습니다.

'결정되어 있느냐, 결정할 수 있느냐?'

전자는 수동태, 후자는 능동태입니다. 여러 가지의 대안이 있고 주체가 결정권을 갖는다면 주체가 어떤 대안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질 것이므로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는 입장과는 배치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에 대한 결정론자의 입장은 주체가 어떤 대안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겠죠.

다시 물리법칙을 끌어와야겠네요. 주체를 이루는 입자들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알고 그 입자들이 결정론적인 물리법칙을 따른다면 그 주체의 판단/선택/행동 모두 결정되어 있다는 것으로 결정론자의 입장은 지지됩니다. 어쨌거나 결정론을 한 번 전제로 깔기 시작하면 안되는 게 없죠;;; 점점 회의가 들기 시작합니다... 증명/반증이 모두 불가능한 전제이고, 생각해보면 애초에 불가지론에서 시작했으니 당해낼 재간이 없네요.

다만 이러한 결정론과 이를 뒷받침하는 자연법칙/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인간의 물질적 조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고(역사적으로 어땠는지는 아는 바가 없군요;;)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무언가가 더 '좋아질 수 있다'면 '좋게' 봐줄 수는 있겠군요. 하지만 인간의 물질적 조건에 대한 이해가 결정론에 근거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 역시 굳이 결정론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아닌 듯 해요.

어쨌거나 앨런님의 논의를 계속 따라가면, 세계는 결정되어 있지만 인간은 이를 인식할 수 없으므로 그런 한에서 '자유의지에 대한 환상은 유지될 수 있'고 '실제로 자유의지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얼핏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를 받아들여도 결정론이 유지된다는 얘기에 '은유'해보면, 국소적으로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할 수 있어도 전체적으로는 결정론적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좀 애매한 부분이 생기기는 하는데, 불확정성 원리와 혼돈이론을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미시세계의 불가피한 불확정성이 비선형적으로 증폭되어 결국 매우 다른 세계가 나타날 수도 있다.라는 논리를 펼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슈뢰딩거의 고양이 문제인데, 미시세계의 불확정성이 거시세계로 증폭되어 나타나는 시스템이 아닌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예전에 불확정성 원리가 자유의지의 근원이냐에 대한 논란도 있었던 것 같은데 신경세포 단위에서 양자현상이 의미있게 나타날 것 같지 않습니다.

다시 원래 논의로 돌아와서, '결정론적 물리법칙'에 근거해서 봤을 때, 자유의지는 착각/환상일 뿐이라는 앨런님의 주장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그 이전에 인간의 '마음'은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에 붙여진 이름일 뿐이라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시 우리가 그 모든 메커니즘을 완벽하게 알아내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인간이 실질적으로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앨런님과 저는 같은 불가지론, 결정론, 착각으로서의 자유의지라는데서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앨런님은 스스로 관념론자라고 하셨고 저는 잘 모르겠네요. 물리를 공부해서 그런가 관념론만으로는 세상을 이해하는데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안쓰던 머리를 쓰려니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