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다섯번째를 맞이한 통계물리 겨울학교를 다녀왔다. 부산대 박혁규 교수님은 4시간에 걸쳐 레일리-베나르 대류(Rayleigh-Benard convection; RBC)에 대해 강의해주셨다. 유체를 기술하는 일반적인 나비어-스톡스 방정식으로부터 혼돈이론과 나비 모양의 이상한 끌개로 유명한 로렌쯔 방정식을 유도하고 이로부터 조절변수(여기서는 유체가 담겨있는 용기의 윗면과 아랫면의 온도 차이)를 키우면서 열전도로만 열이 전달(아랫면으로부터 윗면으로)되다가 어느 순간 대류가 일어나기 시작하여 대류에 의한 열전달이 일어나다가 결국 난류로까지 이어지는 현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내가 학부졸업논문으로 썼...다기보다는 비선형동역학 책에서 베끼고 정리한 적이 있었고 GW-BASIC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도 돌려봤던 그 내용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강의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더 최근의 연구결과를 소개해주셨다. 위에서 말한 조절변수를 더 키우면 단순한 대류로부터 혼돈상태로 그리고 결국 약난류와 강난류 상태로 변한다. 그러다 결국 시스템은 노이즈를 보이는데 혼돈상태와 난류, 그리고 노이즈 상태를 어떻게 구분지을 것인가, 대류상태에서 혼돈상태로의 전이, 혼돈상태로부터 난류로의 전이의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하는 것들이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인 듯 하다.

일단 내 느낌은 시공간적 구조로 봤을 때 거시적인 패턴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 상태, 거시적인 패턴이 파괴되지만 미시적인 패턴은 남아있는 상태, 모든 패턴이 사라진 상태로 위의 세 상태를 구분지을 수 있지 않을까 이다. 자유도의 관점에서 보면 이미 혼돈상태부터 자유도는 무한한 것 같고 다만 '얼마나' 무한하냐로 위 세 상태가 나뉘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가톨릭대 박정만 교수님은 역시 4시간에 걸쳐 비평형 시스템을 기술하는 으뜸방정식을 경로적분꼴로 변형하여 해를 구하는 방법을 설명해주셨다. 간단한(?) 예로 DNA 서열로 정의된 생물종의 진화모형이 제시되었는데 적합도(fitness)의 크기와 돌연변이율의 비율을 조절함으로써 상전이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기본 개념과 흐름은 단순한 편이었지만 수식이 제일 복잡했고 많아서 처음에는 노트에 다 쓰면서 따라가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음미만 하는 시간을 즐겼다.

음미를 하다가 묻고 답한 내용들을 내맘대로 정리해보겠다. 비평형 시스템에서는 해밀토니안이 정의되지 않는데 으뜸방정식을 경로적분꼴로 바꿈으로써 유사작용(pseudo action)이 유도된다. 우선 양자역학의 경로적분에서 플랑크 상수가 0으로 가는 극한은 양자효과가 사라지는 '고전적 극한(classical limit)'을 뜻한다. 이번 시간에 배운 고전적인 비평형 시스템에서 나온 유사작용에서는 시스템 크기 N이 무한대로 가는 '열역학적 극한(thermodynamic limit)'이 고전적 극한에 대응될 수 있다.

고전적 극한은 양자현상의 근본적 불확실성이 무시될 수 있는 규모에서 시스템을 기술하겠다는 말인데 다시 말하면 '결정론적 극한(deterministic limit)'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애초에 으뜸방정식은 통계/확률적으로 시스템을 기술하는 것이므로 여기서도 1/N을 0으로 보내는 극한이 결정론적 극한이 될 수 있다. 이는 요동(fluctuation)의 크기가 1/N 수준이기 때문이다. 요동 즉 편차나 분산이 0이면 결정론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구체적인 모형에 따라 이런 논의가 성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카이스트 김판준, 안용열, 이상훈 박사과정 학생들의 발표도 재미있었다. 이들은 각각 열용량이 음인 경우(negative heat capacity), 복잡한 상호작용 구조 위에서 나타나는 전염병의 확산과 면역에 관한 내용, 스핀유리에 대해 발표해주셨다. 열용량이 음이라는 말은 어떤 시스템에 에너지를 가해주는데 온도가 낮아진다는 말이다. 발표자의 개념에 관한 설명을 간략히 재구성해보겠다. 시스템의 에너지는 운동에너지와 포텐셜에너지가 있는데 운동에너지가 온도를 결정한다. 이 시스템에 열에너지를 가해주면 포텐셜에너지가 늘어나지만 오히려 운동에너지는 줄어들 수 있다. 물론 열역학 법칙을 만족시키면서 이런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이걸 몸무게의 변화에 비추어 생각해보자. 사실 농담으로 꺼낸 얘기인데 오히려 이해하기 쉬운 예를 제시해줄 수도 있다. 이 예를 한 마디로 줄이면 '음의 몸무게용량(negative weight capacity)'이다. 즉, 밥을 먹으면 몸무게가 늘어야 하는데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을 가리킨다. 밥을 먹어서 총에너지가 커지는 건 맞는데 밥을 소화시킨다고 애를 써서 오히려 살이 빠지는 경우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말이 안되는 것 같다;;;;;) 역시 농담은 농담에서 끝내야...

전염병의 확산과 면역에 관한 발표에서는 전염병에 관한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이 흥미롭게 제시되었고 실제 항공망 데이터와 간단한 모형을 통해 SARS 피해 데이터를 재현해내는 연구 등이 소개되었다. (오늘따라 '되다'라는 말투가 만연'되고' 있다. 별로 좋은 말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리전이(glass transition; '상전이'가 아니라 '전이'다)와 스핀유리(spin glass)에 대한 발표도 흥미로웠다. 액체였던 유리의 온도를 낮추어 어는점보다 낮아지면 결정(crystal)이 되기보다는 비결정의 유리상태로 남아있는데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등에 관한 발표였다. (고등학교 화학 보충수업 때 이런 얘기를 처음 들었던 것 같은데 그때 유리는 '엄청나게 천천히 흐르는 액체'라는 걸 알았다.) 유리의 에너지 지형(landscape)은 복잡한 모양이고 온도를 낮출 때 어떤 상태가 될지는 이 시스템의 초기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결정상태로 끌려가는 초기조건의 영역에 비해 유리상태로 끌려가는 영역이 훨씬 넓기 때문이라는 것이 기본적인 설명방법이다.

이외에도 세종대 정형채 교수님은 국소적인 규칙에 의한 펜로즈 타일(Penrose tile)의 형성에 관한 연구를, 인하대 이재우 교수님은 생물의 공진화와 멸종에 관한 여러 모형들을, 서울시립대 노재동 교수님은 복잡연결망의 고리구조(loop structure)가 그 위의 임계현상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발표해주셨다. 글이 길어져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남는 시간에는 사람들과 훌라, 하트, 마이티, 늑대와 시민, 도둑잡기 등의 카드 게임과 마피아 게임 등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