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이산화.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듯 하고, 다른 하나는 관계에 의한 자기 이해(?)라고 할까. 이산화(한글이래도 영어로 써야 할 듯;; discretization이다. 이산화탄소가 아니라)라는 건 사람의 복잡미묘한 마음이나 감정까지도 쪼개고 나누어 받아들이려는 태도. 그렇다고 내가 그런 걸 철저하게 하는 사람은 결코 아니고 그런 경향이 좀 있다는 건데 '복잡한 건 단순화'하려는 태도가 마음에 배인 듯.

사실 이산화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이해된 것으로부터 그 뒤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나 의도를 읽어내지 못하는 게 더 큰 문제일 듯 하다. 그리고 철저히 자기와 자신만의 세계를 통제하려는 욕망. 이건 어떻게 해야할까. '있는 그대로'는 없고 모든 것에는 원인이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야만 하고 그런 게 밝혀지지 않은 것들은 '믿기'보다 의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역시 철저한 건 아니다;;)

두번째. 나는 관계의 문제도 나 자신의 문제로 환원하려고 했다. 그런데 일단 문제를 그렇게 설정해버리면 내 안의 폐쇄회로, 즉 기존의 내 사고방식/내 논리에서 벗어난 해답을 구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신호가 기존의 회로 안에서 빙빙 돌기만 할 뿐 나아지지 못한다. 역시 <에반게리온>에서 신지는 자신의 폐쇄회로에 갇혀서 외부의 자극을 무시하거나 자기가 편한대로 생각해버리거나 회피하거나 할 뿐이었다.

애니의 결말에는 논리적인 비약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쨌거나 나에게는 단서를 준다. 왜 꼭 모든 걸 혼자서 생각하고 처리하려 하는가. 외부 세계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나를 지배하려는 세계에 대한 거부. 위선으로 가득찬 세계. 더러운 세계. 피해의식 또는 가해의식. 어쨌든 '나'를 규정하는 건 '나'가 아니라 나와 세계와의 관계를 통해서라는 건데... 사실 한편으로는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나'를 싫어했는지도, 그걸 거부했는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당하고 또 그래야만 내 존재가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가. 패배가 싫었고 그래서 질 것 같은 게임에는 참가하지 않거나 최대한 피한다. 그런데 왜 이겨야 하지? 열등감만큼이나 강하게 나를 움직이는 우월감. 내가 싫어하고 씻어버리고 싶은 내 안의 욕구... 생물학적 본능에 충실한 건가? 그래서 더욱 싫어지는 건가?

... 논리적 귀결은 자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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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나 걱정하실 분들께: 저 안죽어요-_-;;; 하여간 쓰다보니 뜬금없는 결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