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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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교보문고]

몇 달 전에 복잡계연구회 모임에서 연구실 동기가 발표를 하며 언급했던 책이다. 이름도 웬지 특이하고 무엇보다 복잡계, 창발이라는 주제와 연관되는 것 같아서 머리 한 구석에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에 샀고 조금씩 읽다가 오늘에서야 다 봤다.

글쓴이인 하워드 블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나 학자이면서 동시에 연예계에서 일도 하는 특이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글쓴이는 생물학, 진화론, 역사, 문화, 심리학 등 많은 영역의 많은 사례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그의 주장은 인간의 악한 속성은 단지 사회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진화의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었으며 다른 생명체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보편적 속성이라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초유기체, 사상, 서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간의 신체를 이루는 세포들 중 수많은 세포가 날마다 죽고 또 새롭게 태어나는 것처럼 인간사회라는 초유기체의 유지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특이한 것은 지능과 문화이며 생물학적 유전자와는 다른 문화적 유전자 즉 밈(meme)이 생겨났고 이 밈이 곧 사상이며 사상의 전파 과정에서도 수많은 인간의 죽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진화를 통해 인간은 다른 동물들처럼 서열 상승의 욕구가 있으며 그것은 결코 회피할 수 없는 본성이라고 한다. 저자가 들이대는 수많은 예들은 저자의 주장을 충분히 설득력있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다원주의와 민주주의를 통해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는데, 사실 이 내용은 책의 흐름에 따른 논리적 귀결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선언에 그치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진화의 결과인 인간의 잔혹함에 관한 수많은 예들을 기독교, 이슬람, 맑스주의, 공산주의로부터 가져오는데 내가 그러한 예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처지라 일단은 그런가보다할 수밖에 없지만 때로는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선한 의지에서 시작했으나 악해질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저자는 악한 의도였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슬람 근본주의와 테러를 비난하면서도 미국이 세계 곳곳에서 저지른 악행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모른척 하며, 저자의 선언(결론이라기보다)인 '다원주의, 민주주의'의 예로 미국이나 영국을 들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저자의 주장의 설득력을 갉아먹고 있는데 그럼에도 저자의 주장은 내가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고민했던 것들과 맞닿아 있어서 고민해볼만한 것이다. 진화의 원동력은 생존하려는 생명력이지만 그것은 곧 또다른 종/개체들에게는 폭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이러한 논의에 선과 악은 없다. 다만 살고자 발버둥치는 생명 본연의 모습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인간은 어떻게 '선'과 '악'을 발명하게 된 것일까. 밈이 생겨나면서부터인 것 같은데 그저 인간의 행위를 이러저러하게 잘라내어 선/악이라는 딱지를 붙여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폭력에 대한 반발심, 약자에 대한 연민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물론 이것도 진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할 수도 있고 초유기체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타적 인간'이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논의와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도 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자.

그런데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물음은, 왜 초유기체는 생존하려 하는가라는 물음이다. 저자는 유전자 환원주의에 반대하며 초유기체의 존속과 필요를 주장하는데 왜 그런가 하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그렇다보니 모호함은 사라지지 않고 관점은 바뀌었지만 더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인다.

이 책의 후속작이라고 하는 <집단 정신의 진화>도 읽어보고 싶어지는데 당분간은 힘들 것 같다. 어쨌든 즐거운 시간이었다.